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22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by 김성수

山 民 金昌協(1651-1708)

말에서 내려 주인을 찾으니, 下馬問人居

아낙네가 나와서 맞는다. 婦女出門看◎

길손은 처마 밑에 앉고, 坐客茅屋下

주인은 밥상을 차려낸다. 爲客具飯餐◎

남편은 어디 갔느냐 물으니, 丈夫亦何在

아침에 쟁기 메고 산에 갔다네. 扶犂朝上山◎

비탈밭은 갈기도 어려워, 山田苦難耕

저물도록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日晩猶未還◎

사방을 둘러봐도 이웃 하나 없고, 四顧絶無隣

닭이랑 개만 산비탈에 흩어져 있다. 鷄犬依層巒◎

산중에는 호랑이도 많아서 中林多猛虎

나물뜯기마저 무섭다네. 採藿不盈盤◎

혼자 무엇이 좋아서 哀此獨何好

깊은 산 속에서 사느냐 하니 崎嶇山谷間◎

저 산 아래가 좋은 줄 알지만 樂哉彼平土

원님 무서워 살지 못한다네. 欲往畏縣官◎


이 시는 한시 중에서도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서사적 古詩입니다. 이러한 고시는 시의 형식미보다는 담고 있는 내용에 중점을 두고 번역해야 합니다. 압운은 하였으되 對偶의 구조미라든지, 平仄律에서 한결 자유롭고, 절묘한 수사기교보다는 사실을 전달하기에 충실합니다. 이 작품은 학정(虐政)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참상을 서사적으로 고발하기 위한 것이니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교묘한 표현 없이 화자가 보고 들은 사건을 사건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이런 사실적인 사회 고발시가 있었다는 것은 대행한 일이지만 우리는 이런 한시를 잘 알지 못합니다.


下하馬마問문人인居거 婦부女녀出출門문看간.

下馬는 下가 동사이니 ‘말에서 내려.’ 問人居에서 ‘居’는 번역할 필요 없는 虛字입니다. ‘주인을 찾으니’로 충분합니다. 出은 나와서. 부녀는 아낙네. 看은 ‘보다’가 아니라 ‘맞는다’라고 옮겨야 합니다.


坐좌客객茅모屋옥下하 爲위客객具구飯반餐찬.

坐客은 어순을 바꾼 것이므로 客坐로 글자를 바꿔 ‘길손이 앉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詩意에 맞습니다. 茅屋은 띠집, 屋下는 ‘처마 아래’입니다. 爲客은 ‘손을 위하여’이지만 앞 客과 중복이 되므로 ‘주인은’이라고 옮겨야 시의에 더 좋습니다. 具는 ‘차린다’. 飯餐은 ‘밥상’으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丈장夫부亦역何하在재 扶부犁리朝조上상山산.

丈夫는 남편. ‘亦’은 번역하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何在는 어디에 있나? ‘扶’는 등에 ‘메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犂는 쟁기나 따비이고, 朝은 아침, ‘上’은 산에 ‘오르다’라는 동사인데 주인에게 들은 이야기를 옮겨놓은 내용이기 때문에 간접 인용의 종결어미로 처리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끝까지 들은 이야기를 옮긴 것이므로 압운한 곳은 모두 간접 인용의 종결어미로 옮겨야 합니다.


山산田전苦고難난耕경 日일晩만猶유未미還환.

苦難耕은 ‘밭 갈기가 어렵다’. 山田은 ‘비탈밭’으로 하는 것이 더 좋고, 日晩은 ‘저물도록’, 猶未還은 들은 이야기를 인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猶) 돌아오지 않았다고’라고 해야 합니다. ‘비탈밭은 갈기도 어려워, 저물도록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四사顧고絶절無무隣린 鷄계犬견依의層층巒만.

四顧는 ‘사방을 둘러보아도’, 無隣은 ‘이웃이 없다’입니다. 絶은 ‘끊어지다’보다는 ‘절대로’ ‘하나도’라는 부사로 바꾸어 옮깁니다. ‘依’도 ‘의지하다’라고 하기보다는 여기저기에 ‘흩어져’라고 바꾸는 것이 좋습니다. ‘層巒’도 직역보다는 ‘산비탈’정도로 대체하는 것이 좋습니다. 닭, 개가 산비탈에 흩어져 있는 장면은 전원적인 모습이 아니라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배경설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中중林림多다猛맹虎호 採채藿곽不불盈영盤반.

‘中林’은 어순을 바꾼 것이니 ‘숲속’으로 바꾸어 옮겨야 합니다. 맹호는 무서운 호랑이. 不盈盤은 ‘바구니를 채울 수 없다’는 뜻이지만 그 이유는 호랑이가 무서워서 나물뜯기마저도 마음놓고 할 수 없다는 시의를 살려야 합니다. 採藿은 ‘나물(藿)뜯기(採)’입니다.


哀애此차獨독何하好호 崎기嶇구山산谷곡間간.

‘哀’는 ‘슬프다’이지만 이를 그대로 옮기지 않더라도 충분히 슬픈 장면이므로 생략해도 좋겠습니다. 이하 부분은 시인이 여주인에게 묻는 말인데 거기에 해당하는 글자가 없으므로 대화를 나타낼 수 있는 시어의 보완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는 ‘묻다’의 의미를 갖는 시어를 보완하되, 종결어미 대신에 연결어미로 대체해서 對話임을 간접적으로 옮겼습니다. 獨何好는 ‘홀로 무엇이 좋아서’입니다. 崎嶇는 ‘험악한’ ‘깊은’으로 풀이하고, 谷間은 ‘산 속’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구를 순서대로 번역하면 자연스럽지 못하므로 다음과 같이 도치된 문장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혼자 깊은 산 속이 무엇이 좋아서 사느냐 하니’


樂낙哉재彼피平평土토 欲욕往왕畏외縣현官관.

전체가 여인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나 앞서와 같이 들은 말을 간접 인용하는 형식으로 옮겨야 합니다. 간접 인용이므로 ‘樂哉’와 같은 감탄종결사는 앞의 ‘哀’와 같이 생략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樂도 유사자로 보아 ‘좋다’정도로 하고 哉를 생략한 대신 ‘알지만’이라는 어미로 보완하면 그 詩境까지 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句는 어순을 조정하여 시의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원시로는 시의를 충분히 전달하기에 부족하므로 ‘감히’라는 수식어로 폭정에 대한 두려움을 옮길 수 있습니다. 彼平土와 欲往을 묶어 ‘저 평지가 좋은 줄 알지만’이라고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평지가 좋은 줄 알지만 원님 무서워 감히 가지 못한다네.’라고 하였습니다. 가장 믿고 의지해야 할 원님이 오히려 백성들을 못살게 하는 원흉이라고 규정하여 이 사회의 부조리와 비리의 현실을 고발한 시입니다. <論語>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苛政孟於虎)'라는 말이 생각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이라고 제목을 붙여 보았습니다. 왕권 봉건체체에서 이렇게 신랄하고 건강한 사회고발시가 있다는 것은 우리 漢詩문학의 자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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