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보를 하다가 길바닥에 뱀허물이 길게 길을 막고 있어서 화들짝 놀랐다. 뱀은 제 모습 그대로 허물을 벗어 놓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징그럽다. 옆에 있던 아내가 뱀이란 말에 더 놀라 자빠지는 바람에 소름까지 끼쳤다. 뱀이 허물을 벗는 것은 몸집이 커져 껍질이 이를 감당하지 못해서이지만 노인네가 입던 옷을 벗어 버리는 것은 몸집이 줄어들어 헐렁거리기 때문이다. 허물이건 헐렁거리는 옷이건 그것으로 나의 허물까지 벗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말고는 처음 보는 뱀허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참 뱀도 많았다. 뱀이 무서워 산이고, 들이고 마음 놓고 다닐 수가 없었다. 무섭고 징그러운 뱀은 꿈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뱀이 어찌나 많은지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뱀꿈을 꾸면 재수가 좋다는 말도 있지만 그랬던 적은 없었던 같다. 사탄이 뱀의 모습을 하고 이브를 유혹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게 하는 그림성경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뱀만 아니었으면 사람은 아직도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교리 시간에 배웠으니 뱀이야말로 가증스러운 인류의 적이었다. 그래서 뱀을 만나면 두려운 마음을 억누르고 때려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악착같이 쫓아가서 죽이고서는 반드시 나뭇가지에 걸어놓았다. 땅에 그대로 놓으면 흙냄새를 맡고서 다시 살아나서는 밤에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 고추를 문다고 했다. 그래서 나뭇가지에 뱀의 사체가 뼈가 앙상한 채 걸려있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소문만 그런 것이 아니라 실제로 뱀에 물려 죽은 사람도 있었으니 더욱 무서운 뱀이었다. 뱀이 들쥐 등 해충들을 잡아 사람에게 이롭고 생태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다.
농촌을 떠나 살면서 뱀 허물을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은 시골에 가도 뱀을 그렇게 흔히 볼 수 없다. 오늘 아침에 본 것도 뱀 허물이 아니라 비닐로 만든 끈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차라리 그것이 진짜 뱀 허물이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만큼 뱀은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사탄보다 더 무서워진 인간이 득실대니 뱀이 맘 놓고 허물을 벗을 곳도 마땅치 않을 것이다. 뱀은 이미 농약이나 보신꾼들에게 철저히 복수를 당해 인간보다 훨씬 희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그러고 보면 어렸을 때 그렇게 흔하던 동물들을 보기 쉽지 않다. 시골에 가도 뱀에 쫓겨 도망다니던 그 흔하던 개구리도 보기 어렵다. 어쩌다 지렁이가 잘못 길바닥에 나왔다가는 개미의 집중공격을 받고 몸부림치다가 깡그리 물어뜯겨 순식간에 뱃속에 있던 모래 흔적만 남겼었는데 지금은 지렁이가 길바닥을 헤매고 다녀도 덤벼드는 개미도 보기 어렵다. 개미의 입이 높아진 것이 아니라 지렁이를 공격할 개미가 귀해진 것이다. 옛날에는 꽃이 있으면 당연히 벌이 엉겼는데 지금은 꽃만 외로운 모습이 흔하다. 그래서 농부들이 일삼아 꽃가루를 묻히고 다녀야 한다고 한다.
우리 주변에 귀해진 생물들을 일일이 다 들어 말할 수 없다. 맹수나 해충에 의해서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던 시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인간의 숫자가 늘어나고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단지 자신의 편리만을 위해서 자연생태계를 분별없이 파괴하고 있다. 자연을 인간에게 유리하고 편리하도록 개선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개선이 생태계를 어지럽히면 개선이 아니라 파괴이다. 개선까지는 인간의 지혜이지만 파괴는 인간의 자살행위이다. 신이 인간을 가장 나중에 만든 것은 인간이 살 수 있는 조건을 먼저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그런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자신의 생존조건을 스스로 파괴하는 짓이다.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과신하는 自暴(자포)이고, 자신을 포기하는 自棄(자기)이다.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결국 자포자기(自暴自棄)적 행위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세상을 채우고 번영시키라고 했지 자연을 파괴하라고 하지 않았다. 신의 천지창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점점 조여오는 자연의 숨 가쁜 경고를 무서워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것은 생물체들의 총체이고, 인간은 그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국제적으로 기후협약이나 탄소배출을 제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편리와 욕심에 눈이 어두워 대처가 어렵다. 당장 전기요금을 절약하기 위해서 화석연료나 핵발전을 고집하는 것은 소탐대실이다. 자연과의 공존도 허락하지 않는 인간이 인간과의 공존을 인정할 리 없다. 동식물은 인간의 노력으로 복원이 가능하지만 지구온난화나 해수의 팽창, 기후의 변화는 되돌리기가 어려운 재난이다. 그래도 다른 혹성으로 탈출하기보다는 자연과의 타협과 보호가 훨씬 쉬운 길이다. 막대한 예산으로 우주탐험이나 대체 행성을 찾는 수고보다는 우리의 자연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