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24.

세상이란 본래

by 김성수

乍 晴 乍 雨 사청사우 세상이란 본래

金時習(1435-1493)


乍晴還雨雨還晴◎ 맑았다 비 오고, 다시 맑았다-

天道猶然況世情◎ 하늘도 이럴진대 세상사이랴.

譽我便是還毁我 칭찬하다가 금세 헐뜯어대고,

逃名却自爲求名◎ 이름 감춘다 하고는 이름 구하네.

花開花謝春何管 꽃이 피건 지건 봄은 모르고

雲去雲來山不爭◎ 구름이 가건 오건 산이 알 바 아니다.

寄語世人須記認 세상 사람들에게 꼭 기억하라고 전하소.

取歡無處得平生◎ 평생 가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라고.


이해타산이나 권력에 따라 변덕스럽게 움직이는 세태를 비판하고, ‘세상이란 본래’ 그런 것이니 각박하고 험난한 세상을 벗어나 자연에 묻혀 사는 것만 못하다는 교훈이 담긴 시입니다.


乍사晴청還환雨우雨우還환晴청.

雨가 겹쳐있는데 뒤의 雨는 생략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러나 晴은 중복된 두 글자를 다 번역해야 합니다. 둘 사이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乍는 ‘금세’ ‘잠시’이지만 ‘다시’라고 옮기고, 나머지 의미는 어미로 처리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還도 중복된 글자이고 보면 詩語의 낭비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니 글자를 일일이 쫓아다니는 축자역으로서는 시가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重複字는 한시의 음수율과 음성률을 맞추기 위한 수단으로 가끔 있는 일이니 번역에서 과감하게 생략해야 좋습니다.


天천道도猶유然연況황世세情정.

天道는 하늘의 도리, 진리이지만 그냥 ‘하늘’이라고 풀이합니다. 世情은 世上事로 번역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況이 있으니 의문종결어미로 처리하고 ‘하물며’는 생략하는 것이 시를 간결하게 합니다. 猶然은 ‘이럴진대’라고 하고, 猶도 생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세상인심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譽예我아便변是시還환毁훼我아 逃도名명却각自자爲위求구名명.

我가 두 글자이지만 모두 생략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便是는 ‘곧’ ‘금세’로 옮기고, 環은 ‘도리어’이지만 생략하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譽와 毁는 의미의 대립으로 ‘칭찬하다가 금세 헐뜯어대고’로 풀이합니다. 다음 구와 함께 세상 사람들의 변덕스럽고, 위선적이고, 이중적인 세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逃命은 ‘이름을 감추다, 숨다’이고, 求名은 이와 반대로 ‘功名을 구하다’입니다. 却은 ‘오히려’이지만 自와 함께 생략하는 것이 시를 간결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 감춘다 하고는 이름 구하네.’라고 했습니다. 이 두 구는 원시가 對偶(대우)이므로 가급적 대구를 이루도록 번역해야 합니다.


花화開개花화謝사春춘何하管관 雲운去거雲운來래山산不부爭쟁.

여기에서도 대우를 갖추고 있어 이를 번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開는 꽃이 ‘피다’, 謝는 ‘시들다’로 의미의 대립을 이루고 있습니다. 雲去, 雲來도 ‘구름이 가거나 오거나’로 마찬가지입니다. 春何管은 ‘봄이 어찌 상관하리오?’입니다. 그런데 何管을 의문사로 옮기면 대구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봄은 모르고’라고 했습니다. 6구의 不爭도 본래 ‘다투지 않는다’이지만 앞 구와 짝을 유지하기 위하여 ‘알 바 아니다’라고 번역했습니다. 이러한 번역은 원시를 어기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절한 유사시어로써 오히려 원시의 의미에 가깝게 할 것입니다. 세상사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자연친화적인 사고와 무관심으로 극복한 장면으로 생각됩니다.


寄기語어世세人인須수記기認인

寄語는 ‘말 전하라’이고, 世人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記認은 ‘명심하라’로 풀이하고, 須는 ‘반드시’ ‘꼭’이라고 옮기면 좋을 것이고, 取는 생략합니다. 得은 평생에 연결하여 ‘평생 가는’으로 그 의미를 반영할 수 있습니다.


取취歡환無무處처得득平평生생,

歡은 어순을 바꾼 글자이므로 뒤로 돌려서 번역해야 합니다. 得을 ‘얻다’라고 하지 말고, ‘가능’의 뜻으로 풀이하는 것이 좋습니다. 無處는 ‘-곳이 없다.’. 이 두 구는 도치되었으므로 종결어미도 바꾸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꼭 기억하라고 전하소. 평생 가는 즐거움은 어디에도 없는 법이라고.’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인심은 변화난측하여 믿을 것이 못 되니 험난한 세상을 벗어나 언제나 변함없는 자연에 묻혀 사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입니다. 세상에 대한 경계와 깨우침의 의도를 전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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