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 木 은 休
나무만 보면 숲을 보지 못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조그만 동산이 앙증맞게 끼어들어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동산이라 불렀다. 작기는 하지만 거기에도 산에 있을 건 다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는 물론 온갖 새들이 다 살고 있었다. 큰 짐승은 없지만 다람쥐에서부터 꿩까지 거기에 집을 몰래 짓고 살았다. 나지막한 숲길에 오르면 사철 새소리가 시끄러울 정도로 요란했고, 봄에는 산벚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과 함께 밤, 도토리, 상수리가 지천으로 떨어졌다. 그 사이로 난 오솔길은 아파트 주변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위안거리요, 힐링의 공간이었다. 이런 걸 이른바 숲세권이라고 하는가 싶다.
그런데 그 옆에 새로운 아파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재앙은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아름드리 나무들이 무참히 잘려 나갔다. 시에서 동산 한 구퉁이에 놀이터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엔 난데없이 인부들이 달려들어 전기톱으로 여기저기에서 멀쩡한 아름드리 나무들을 베어내기 시작하였다. 숲 가꾸기 사업이라든가- 간벌을 해야 나무들이 건강하게 잘 자란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무 축에 들지도 못하는 옻나무, 두릅나무, 갈참나무 같은 잡목이나 넝쿨들은 남아나질 못하였다. 이런 법석이 일어나자 온 동산이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무자비한 전기톱 소리가 온 숲을 찢어놓았고, 그 바람에 그 많던 새들은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겉으로 보기엔 말끔해졌지만 새소리가 끊기고, 잡목이 없어진 숲은 삭막하여 정작 주민들에게는 휴식처의 상실이요, 환경파괴였다. 그런 소동이 난 지 일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다람쥐는 흔적도 없고, 그 많던 새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공무원들은 숲 가꾸기라 하지만 주민의 세금을 걷어서 하는 일이 정작 주민에게 해를 끼친다면 그른 市政이 틀림없다.
졸지에 썰렁과 적막에 빠져버린 동산에 오를 때마다 실망도 모자라 분노까지 느껴졌다. 처음엔 내가 유난스런 노염이 아닌가 했으나 동산에 자주 오는 다른 사람들도 공감하는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각이 잘못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달리 생각해 보기도 했다. 동산 옆에서 아파트를 새로 짓는다는데 우리가 상관할 바가 못 된다. 놀이터를 만드는 것도 어린이를 위하는 복지사업이라면 구태여 노인들이 탓할 바 아니다. 그러나 ‘숲 가꾸기 사업’이라면 할 말이 적지 않다. 숲의 주인인 나무를 건강하고, 쓸모 있게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쓸모 있는 나무만 남긴다고 해서 숲이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다. 숲에는 크고 건강한 나무도 있어야 하지만, 작고 못난 나무도 있어야 하고, 덤불도 있어야 하고, 칡넝쿨도, 침엽수도, 활엽수도, 상록수도, 낙엽수도 어루어져 있어야 건강한 숲이다. 그리고 숲에는 나무만 있는 게 아니다. 새들도, 짐승들도, 거기에 사람들도 어우러져 사는 것이 숲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은 숲의 주인은 주민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벌이는 간벌은 모든 생물들이 어우러져 사는 숲을 오로지 크고 굵은 나무만을 남긴 속 좁은 짓이다. 오로지 인간의 기준에 의해서 조화를 이루고 사는 생태계를 마구 파괴하는 것이다. 사람도 권력자, 부자, 잘난 사람만 산다면 사회는 어떻게 될까? 인간의 편의적인 생각과 이익에 눈이 어두워 인간과 더불어 살고 있는 환경을 생각하지 못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일이 지금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이나 나무만이 아니라 모든 자연 그대로가 보존되어야 건강한 숲과 지구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의술이 발달한 현대인이 건강하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장수하는 사람이 곧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철저한 위생에 보호받고 있는 어린애들은 병원 출입이 훨씬 많다. 병원과 약을 달고 사는 성인, 장수를 누리는 노인들이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육체적으로는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이전보다 건강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현대 의술은 인간에게 좋은 것만 남기고 해로운 것은 없애왔다. 첨단장비로 정확하게 환부를 잘라내고, 신약개발을 부지런히 하면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과연 그러한 수단으로 인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었지만 건강까지 보장할 수는 없다. 건강은 육체만 아니라 정신도 그래야 한다. 약과 의술로 해로운 병균을 없앤다고 하지만 이로운 균만으로는 건강할 수 없는 것이 인체의 이치이다. 화살에 붙어있는 깃은 화살의 추진력을 방해하지만 화살의 떨림을 방지하여 적중률을 높여준다. 생태와 환경은 인간과 적절한 밀당과 힐항을 통해서 생존을 보장해왔다. 인간의 지나친 인위적 간섭은 그런 자연의 조화와 섭리를 어기는 짓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믿음은 위험하다. 인간의 능력과 지혜를 과신하고, 능사로 여기는 것은 자칫 자멸을 초래할 수 있음을 지금도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동산 숲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서 무엇이 인간을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무를 잘라내서 남아있는 나무들은 건강하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숲은 오히려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인간은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자신을 감싸고 있는 자연환경을 거침없이 파괴한다. 끝 모를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인간은 행복해진 것이 아니라 자신마저도 살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 獨木不林(독목불림)-나무 한 그루로는 숲이 되지 못한다-라는 성어가 있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우러져야 숲이 된다. 그러나 나무만 남는다면 森(삼)-이 되어 사람과 어우러질 수 없게 된다. 사람과 나무가 어우러져야 休(휴)- 쉴 수 있다. 좀더 욕심을 낸다면 人과 林을 합해서 ‘힐링 힐’자를 만들고 싶다. 다람쥐도, 새도, 꿩도, 옻나무, 두릅나무, 칡넝쿨도 자취를 감춘 삭막한 숲길을 걸어야 한다면 사람들은 과연 건강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