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의거가

시월의 마지막 밤에

by 김성수

哈 爾 濱 歌 합이빈가 安重根(1879-1910)


장부가 세상에 났으니 큰 뜻을 품을지어다.

丈장夫부處처世세兮혜蓄축志지當당奇기◎

시대가 영웅을 낳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들도다.

時시造조英영雄웅兮혜英영雄웅造조時시◎

북풍은 차갑게 불어와도 내 피는 끓어넘치도다.

北북風풍其기冷냉兮혜我아血혈則즉熱열◎

끓어오르는 의기로 쥐 같은 왜적을 도륙하리라.

慷강慨개一일去거兮혜心심屠도鼠서賊적◎

모든 동포여! 우리의 본분을 잊지말라!

凡범我아同동胞포兮혜毋무忘망功공業업◎

만세! 만세! 대한독립 만세!

萬만歲세萬만歲세兮혜大대韓한獨독立립◎


지난 10월 26일은 安重根 義士의 하얼빈 의거일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또오를 저격하기 전에 지은 시일 것입니다. 형식은 일반 한시와는 다른 초사(楚辭)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끓어오르는 독립에의 열망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는 충동에 움직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세계평화를 위해서 영혼과 신명을 다 바친 志士로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10월이 다 가기 전에-

수사적인 기교 없이 직설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번역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조사와 어미를 적절히 활용하여 화자의 비분강개하는 詩境을 최대한 가깝게 옮기는 일이 중요합니다. 특히 ‘영웅이 시대를 만들도다’에서 비운의 역사를 온몸으로 감당해내려는, 다른 애국시와는 또 다른 웅혼하고 비장한 우국충정을 느끼게 합니다. 이 시의 특징은 매구마다 兮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글자는 原詩에서 감탄사의 기능을 합니다. 당연히 우리 시에서도 그렇게 옮겨야 하지만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것을 뒤로 옮겨 감탄종결사로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시로 詩境을 더 살릴 수 있게 합니다.


丈장夫부處처世세兮혜蓄축志지當당奇기◎

兮는 감탄종결사로 –이여!에 해당합니다. 兮가 句中에 들어 있지만 우리시로 번역할 때에는 맨 뒤로 옮기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蓄志는 뜻을 품다. 當奇는 마땅히 기걸차야- 이를 직역하기보다는 ‘큰 뜻을 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時시造조英영雄웅兮혜英영雄웅造조時시◎

時는 시대. 造英雄은 영웅을 만들다. 英雄造時는 영웅이 시대를 만들다. 여기의 兮는 뒷구와 의미의 구별이 크므로 문장을 끊되 의문종결사로 처리하는 것이 시의를 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직역하기보다는 앞 구의 일반적인 사리를 부정하고, 뒷구의 결연한 의지를 드러낼 수 있도록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번역해야 좋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도다! 영웅이 시대를 만든다’와 비교해 보세요.

北북風풍其기冷냉兮혜我아血혈則즉熱열◎

北風은 안 의사가 의거를 일으켰던 하얼빈에 불던 차가운 바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의사의 나라사랑은 피를 끓게 하였음을 전달해야 합니다. 이 애국충절을 살리기 위해서 ‘북풍은 차갑게 불어와도’라고 옮겼습니다. 兮는 뒤로 돌려서 ‘넘치도다’라고 옮겼습니다.

慷강慨개一일去거兮혜心심屠도鼠서賊적◎

慷慨는 나라를 사랑하는 의로운 기개. 一去는 의거에 결연히 나서다. 兮는 뒤로 돌려 옮겼습니다. 心은 굳은 결의. 屠는 죽이다. 鼠賊 쥐같은 도적, 이토오히로부미. 의거의 목적을 분명히 밝힌 장면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자객 형가는 목숨을 걸고 진시황을 척살하기 위해서 떠나면서 “壯士一去兮不復還-장사가 한번 떠나매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로다”라고 노래한 역수가의 장면이 연상됩니다.

凡범我아同동胞포兮혜毋무忘망功공業업◎

凡은 모든. 동포에게 호소하는 장면이므로 兮로써 감탄종결사로 삼았습니다. 毋忘은 잊지말라. 功業은 본분이라고 옮겼습니다.

萬만歲세萬만歲세兮혜大대韓한獨독立립◎

만세 만세! 대한독립만세!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습니다.


중국에는 戰國시대의 荊軻가 지었다는 유명한 易水歌가 있습니다. 짤막하여 소개합니다.

바람이 소슬하니 역수도 차갑고, 風蕭蕭兮易水寒

장부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으리라. 壯士一去兮不復還

형가는 일개 자객으로서 義를 위하여 身命을 바친다는 결연한 의지를 노래한 것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이지만 哈爾濱歌에 비하면 일개 협사의 小義에 그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의리를 지킨 하나의 美談이라면 이는 비장한 충절義擧歌라서 작품의 폭과 깊이를 같이 논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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