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화자 좋다!

우리 민요의 후렴구

by 김성수

우리 민요에는 후렴구가 많다. 고려속요에서부터 장(章)마다 반복되는 후렴구는 여음구(餘音句)라고도 한다. 여음구란 가락을 맞추기 위하려 덧붙이는 소리이므로 대부분 뜻이 없다. 그러나 우리의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의 후렴구는 단순히 소리나 고르는 여음구가 아니어서 그 뜻을 두고 이런저런 해석이 많다.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노래라서 그 기원이나 가사의 의미에 대해서 더욱 관심이 크다. 아리랑의 기원이 백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벌써 그 뜻이 분명치 않다면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아리랑’을 ‘마음이 아리고 아프다’라는 뜻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님이 아픈 마음을 품고 가슴 아프게 고개를 넘어간다.’라고 풀이하면 그 가락이 더 구슬퍼진다. ‘아라리가 났네’도 ‘마음에 병이 났네’라고 풀이하면 아리랑의 가락이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 같다. 사실이 이렇다면 여음구라 해서 무심히 넘길 일이 아닐 것 같다.


민속놀이인 ‘강강술래’도 단순한 여음구가 아니라 일정한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강강술래 놀이를 임진왜란과 충무공과 연결시켜 적의 침입에 대처하자는 전략적인 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한술 더 떠서 ‘강강술래’를 ‘羌羌水越來’라는 한자로 풀어서 ‘오랑캐가 물을 건너 쳐들어온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羌은 외적, 水는 바다, 越來는 넘어온다. 그럴듯한 말이지만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그런 어려운 가사를 붙였다는 주장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민요가 아니라 창작가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토속성이 강한 민요의 후렴구마저 한자로 풀이하는 자세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술래잡기 놀이’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 ‘어부가’라는 뱃놀이 민요의 후렴구에는 ‘至菊蔥至菊蔥於思臥 (지국청지국총어사와)’라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생각건대 ‘지국총’은 노를 젓는 의성어이고, ‘어사와’는 노 젓는 매김소리라면 의미가 없는 여음구가 틀림없을 것 같다. 그런데 한글을 두고 구태여 한자로 적은 이유는 아마도 한글 창제 이전에 있었던 흔적이 남아서였을 것 같다. 한자로 적혀있다고 해서 덮어놓고 그 뜻이 의미 있는 한자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데 민요 ‘도라지타령’의 후렴구 ‘지화자 좋다’의 ‘지화자’는 쉽사리 우리 고유어로 풀이하기 어렵다. 지화자를 의미가 없는 여음구로 간주하면 그만이겠지만 이어지는 ‘좋다’는 분명히 의미가 있는 실사이다. 이어지는 ‘네가 내 간장 스리살짝 다 녹인다’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지화자’가 단순한 여음구가 아니라 일정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화자’는 ‘도라지 타령’ 말고도 흥겨운 술자리나 축하잔치, 활쏘기 시합 등에서 두루 불려졌던 후렴구이다. 다른 민요와는 달리 식자층에서 즐겨 불려졌다면 ‘지화자’에는 그들의 특권의식이 배어있는 말이 아닐까?


사전에는 지화자가 ‘흥겨운 가락의 추임새’라고 나와 있다. 흥겨운 자리에서, 술자리에서, 활쏘기 시합에서 자주 쓰인다고 했다. 그리고 지화자라는 말 뒤에는 ‘좋-다’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통상 ‘지화자 좋다.’가 한 단어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기분이 더 좋다 보면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그 어원이 엉뚱하게 아프리카 르완다어라고 나와 있다. 그 르완다 말이 무엇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아프리카 말이 난데없이 옛날에 우리 언어에 들어왔을 리가 없다. 누가 아재개그로 웃자는 말을 인터넷에 올렸을 것 같지만 그대로 곧이들을 애들도 있을 것 같아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다. 전문가의 주장 중에는 중국어 기원설이 있었다. 계획(計劃)을 중국어로 발음하면 '지화'인데 거기에 '하자'라는 우리말이 붙어서라고 풀이했다. 개그 수준은 넘어섰지만 흥겨운 축하연에서 중국말로 새삼스럽게 '계획하자'라고 부담을 주면서 즐거워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잖아도 중국에서 ‘지화자’와 관련될 듯한 말이 있기는 하다. 宋 태조 조광윤이 대궐을 짓고 있었는데 건물 편액(扁額)에 之자가 끼어들어가 있었다. 태조가 之자가 왜 끼어들어갔느냐고 물으니 어조사, 즉 뜻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之는 乎, 者, 也 등과 함께 일정한 의미를 갖지 못하고, 다른 말에 붙어 의미를 분명히 해주는 한문 어조사이다. 우리 문법으로 말하면 보조사 정도이다. 千字文의 마지막 구가 이런 어조사이니 이는 책을 다 떼었다는 득의의 과시, 자랑일 수도 있는 말이다. 문장에 별 관심이 없는 무장 출신인 조광윤으로서 그런 말이 반가울 리 없다. 그래서 왜 쓸데없이 그런 글자가 들어갔느냐고 핀잔을 준 것이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런 것은 문사들의 허세요, 사족에 불과했던 것이다. 황제가 그랬으니 그 후로는 잘난 척하거나 현학적인 자세를 일컬어 ‘之乎者也 지호자야’라고 했다는 것이 중국의 고사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중국의 식자층에서 즐겨 쓰는 말이었을 것이고, 우리의 선비들도 이런 말들에 대해서 민감했을 것이다. 지금 영어가 우리 언어에 침투하여 식자층의 현학적인 관용어구로 흔히 사용되는 이치와 같다. 처음에는 ‘지호자야’를 정확하게 발음했겠지만 이것이 나중에 일반적인 언중에 퍼져서는 유행어가 되어 구어로 빠르게 발음하다 보면 원래의 한자를 무시하고 ‘지화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용도도 처음에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원의대로 – 잘난 척, 아는 척하는 상대를 조롱하거나 핀잔하는 뜻으로 통용되다가 이 말이 시인묵객이나 가객, 기녀들이 찬사나 여흥을 돋우는 행위로 ‘지화자’를 불렀을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것이 나중에 과거에 급제 축하연이나 활쏘기 시합, 각종 연회 잔치에서 기생들에 의하여 연창되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이것이 민요에 끼어들어가 의미를 모르는 후렴구가 되지 않았을까라고 추정한다면 어떨까 싶다.


우리말을 한자로 어원을 풀이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랑, 검정, 나박김치, 느끼하다처럼 우리 고유어로 알고 있는 말 중에는 알고 보면 한자 어원이 적잖다. 사실이 이렇다면 감정적인 자존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 영향을 많이 준 이웃 언어에서 탐색하는 방식을 덮어놓고 탓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어원 연구는 경우에 따라서는 다분히 추측이요, 가상적 재구(再構)여서 생각보다 허점이 많은 학문이다. 어차피 아리랑의 해석도 완벽한 해석이 아니라면 지화자의 해석도 다양한 방식으로 탐구해봄 직하다. 비록 이것도 또 하나의 억측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어원과 상관없이 우리 사회에서 ‘지화자 좋다!’를 자주 부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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