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유감

골프를 치지 않는 이유.

by 김성수

내가 젊을 때만 해도 골프는 특별한 사람이나 즐기는 사치운동이었지만 지금은 웬만한 사람들도 따라할 수 있는 운동이 되었다. 거기에 끼지 못하면 무능력자이거나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었는데 나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나는 이제껏 그 흔한 스크린골프도 쳐 본 적이 없으니 이른바 필드에는 근처에도 못 가봤다. 캐디, 굿샷, 핸디, 라운드- 이런 생활어도 나한테는 다 낯선 외국어이다. 지금은 어차피 나이가 들고, 몸도 잘 듣지 않아서이지만 좋았던 시절에도 그랬다.


지금이야 골프 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내가 별난 사람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골프를 치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을 혐오하고, 경멸하다시피 했다. 내가 골프를 칠 능력이 안 되니 심통을 부려 본 것이 아니라 좁은 국토에 인구는 많고, 식량이 모자라서 절대농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명분이 분명했다.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 부족한 식량을 생산할 귀중한 농토를 빼앗고, 주변의 농지와 수자원마저 오염시키는 골프장은 반사회적이라고 단정하였다. 심지어는 각종 사회비리가 저질러지는 범죄의 현장이라는 혐의도 두었다.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호화장비를 하인 부리듯 들쳐메게 하고, 저 푸른 잔디밭을 거들먹거리는 행위는 매우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했었다. 중국에서는 골프를 '高爾夫(富)'라고 쓴다. Golf의 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것이기에 뜻하고는 상관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서도 그들의 골프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 高와 富, 夫는 다 높은 고관이나 부자들이라는 뜻이니 그런 특별한 사람들이나 하는 운동이란 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골프는 비윤리적인 행동이라고 단정했고, 형편이 달라진 지금도 여전히 골프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농지도 남아돌고, 경제 사정도 좋아져 골프가 더 이상 부도덕하거나 사치스러운 운동이 아니라지만 지금까지 외면했던 골프를 새삼스럽게 시작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직은 골프를 칠 형편이 안 되는 국민이 더 많을 텐데 내가 좀 여유가 있다고 해서 거기에 끼는 것은 낯이 간지럽고 어색한 일이다. 그리고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 골프는 나에게 맞는 운동도 아니다. 얼마 전에 죽은 흉악한 독재자는 90이 넘어서도 뻔뻔스럽게 골프를 즐겼다는 말을 들으니 옛날의 골프 혐오증이 다시 살아난다. 골프를 대중스포츠로 삼기에는 여전히 우리 국토는 좁고, 아직 우리 국민의 소득분배가 매우 불공정하다는 생각이다.


‘내 능력대로, 내 마음대로' 라는 이기적, 향락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사회가 된다. 그것을 민주사회의 당연한 자유요, 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것은 타락한 자본주의나 탐욕적인 사고일 것이다. 이웃과 사회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올바른 민주주의를 이룰 수 없다. 민주주의란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주인이 되어 행복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여유가 있다면, 설령 나도 좀 모자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 복지사회일 것이다. 더구나 사랑이나 자비, 박애를 부르짖는 종교인, 신앙인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땅이 넓고, 식량 걱정 없는 나라에서야 골프는 사치도, 반사회적인 행위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골프가 자기과시, 신분 상승의 수단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더 많은 국민을 위해서는 소수의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골프장 대신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운동장을 만들어야 민주사회라 할 것이다.


지금은 생활 도구가 되어버린 자가용 차도 우리 실정에 맞는 경차를 탄다면 교통난, 연료비, 공기 오염, 탄소 절감, 생활비 절감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경제 형편이나 생활 수준이 높아졌다고 호화승용차를 자기과시 수단으로 삼는 것은 치졸한 졸부 근성이 아닐까 싶다. 우리 형편에 구태여 연비가 높은 차를 몰고 다니는것은 사치이다. 우리는 좁은 국토면적에 대중교통망이 잘 되어있어 구태여 자가용차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경차를 우습게 보고, 큰 차에 자동변속기라야 하고, 호화 외제차를 몰아야 체면이 서는 것이 우리 사회풍조이다. 정년을 하고 나서 마지막 차라는 생각으로 큰맘 먹고 1600 기본형 승용차를 샀더니 마지막까지 그렇게 궁상맞게 살 필요가 있느냐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으니 필시 나를 유난스런 늙은이로 보는 것이다.


나로서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명품 열풍이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상품이 상대적으로 질이 좋을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질에 대한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서 명품이다. 분명한 것은 가격 대비 질량이 그만큼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보다는 그저 이름이 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 결과이다. 수억 원짜리 시계나 수만 원짜리 시계나 시간 재는 물건으로는 별 차이가 없다. 수만 원짜리 가방이 수천만 원짜리 가방보다 물건 담는 데에 무슨 불편이 있을까 싶다. ‘내 돈 내가 쓰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거리낌 없는 낯 두꺼운 부자들이야 상관할 바 아니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있는 집 반려동물만도 못한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속 좁은 생각으로는 명품은 터무니없는 허세이고, 바가지이고, 낭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드를 들고, 밤새 줄을 서가며 명품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면 참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에서 명품을 누려도 좋은 국민은 얼마나 될까? 1-2%를 제외하면 명품에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명품을 몸에 걸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사회라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골프, 호화 승용차, 명품의 유행을 정상적인 민주사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풍조를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민주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그런 것에 맹목적으로 매몰되기보다는 그 여유로 이웃을 배려한다면 우리 사회는 훨씬 건강하고, 행복한 민주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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