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우연히 켠 TV에서 상해임시정부기념관 준공 기념식 중계가 있었다. 그런데 내 귀를 의심할 만한 일이 있었다. 축시 낭송 중에 돌연 “임시정부 만만세!”라고 외치는 것이었다. 만세건 천세건 ‘영원하라’는 축복의 말이니 그 뜻이야 어김없이 좋은 일이지만 임시정부가 영원하라니- 그렇다면 정작 정식 정부는 영원히 세우지 말라는 말인가? 그 의도를 바로 말한다면 ‘임시정부를 영원히 기억하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다니- 이는 한 사람의 사려 깊지 못한 탓이겠지만 그것이 전국에 중계방송될 때까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했고, 더구나 그 시가 기념관에 만세토록 남는다면 낯뜨거운 일이다.
그러고 보니 며칠 전 4.19 기념식에 불려진 기념가에는 “젊은 혼이 목숨 바쳐”란 가사가 들어있었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간단히 말해서 혼은 육체와 구별되는 정신, 얼이다. 목숨은 육체가 숨을 쉬는 생명이다. 그렇다면 이 문장은 ‘죽은 영혼이 산 생명을 바쳤다’는 해괴한 말이 아닌가? 단순한 형식문법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텍스트, 의미론으로는 명백한 오류의 문장이다. 어찌하여 이런 어지러운 말이 국가적인 기념가에 가사로 채택되고, 전국에 방송되었는가? 일개 작사자가는 그럴 수는 있더라도 그 과정에서 바로 잡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말인가? 이는 일개인의 실수로 그칠 일이 아니라 우리 국어 능력이 위협받을 사안이다.
불과 며칠 사이에 이런 어이없는 불상사가 연달아 일어났다면 내가 모르는 크고 작은 행사에 또 어떤 언어 불상사가 벌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내가 언론 옴부즈맨도 아니고, 우연히- 실로 우연히 내 눈에 띈 것이 이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얼마든지 이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참여하는 행사에도 이렇다면 비공식적으로 유통되는 언어는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다. 실제로 거리나 관공서에 나붙어 있는 각종 표지판, 안내문이나 문서에는 이러한 언어적 오류가 다반사이다. 그러니 개인적으로 소통되는 언어에는 오죽할까? 영어에서는 티끌만 한 오류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정작 자신들의 모국어에는 이렇게 무감각한 우리들의 의식구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계 최고의 문자와 해독률을 가지고 있고,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국어 시간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불상사가 도처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국어교육, 그중에서도 漢字교육의 부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최고의 한글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은 이제는 한자가 필요 없다는 자만심을 갖게 했다. 하기야 쉬운 한글을 놓아두고 그 어려운 한자를 배우고 싶을 리가 없다. 그러나 한자가 어렵다고 해서 아예 가르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매우 반문화적인 생각이다. 위대한 문화 문명은 각고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문화가 쉬운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면 정체나 퇴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아직도 우리가 쓰는 어휘의 다수는 한자 어휘인데 편리만을 좇다 보면 한자를 배우지 않을 것이고, 한자 어휘의 漢字를 모른다면 그 단어의 뜻을 온전히 소통할 수 없는 것이다. 흔히 ‘한자를 모르고서도 전후 문맥으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매우 편의적이고, 무책임한 말이다. 언어에는 언중의 혼이 들어가 있다고 전제하면 이렇게 혼란한 국어에는 역시 그런 우리의 어지러운 정신이 배어있다는 말이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임종을 지킨다’ '임종을 보다'라고 말하지만 臨終이란 말 자체가 ‘죽음을 지킨다’ 라는 말이므로 ‘임종을 하다’가 정확한 말이다. 그렇잖으면 ‘임종을 지키고 또 지키다’라는 말더듬이다. ‘신원을 풀다’라고 말하지만 ‘伸冤을 하다’가 정확한 말이다. 신원이란 ‘원한을 풀다’이기 때문에 이 말 역시 똑같은 오류이다. 이왕에 문제없이 소통되는 말을 가지고 괜히 까탈부린다고 하겠지만 길에 세워진 차에 ‘불법주차위반’이란 딱지가 붙어있어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아무래도 우리의 국어는 위험하다. 만약에 不法이란 말과 違反이란 단어를 정확히 알았다면 ‘규정에 어긋나는 주차행위를 어겼다’라고 써놓아도 태연할 수 있을까?
어느 학교의 100주년 기념비에 “모교여 영원하라!”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 말을 정확히 할 줄 알았다면 이런 불효를 저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님 백수 잔치에 “어머니시여!”라고 한껏 높여놓고 나서 금방 “영원하라!”라고 대놓고 호통친다면 성한 자식이 아니다. 당연히 빈말이라도 “어머니시여- 영원하소서!”라고 해야 올바른 우리 높임말이다. 한자가 싫으면 紀念碑라고 하지 말고 ‘새김돌’이라고 해야 한자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노력도 없이 막무가내 한자 가르치기를 포기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괜한 트집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런 일이 이 학교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남이 하는 무지한 짓을 그대로 따라 하다 보니 우리말이 이렇게 된 것이다.
이는 우리말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서 나온 결과이고, 결국 한자를 모르면 우리말도 정확하게 사용할 수 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엉터리 말을 틀린 줄도 모르고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법, 어법에 맞지 않아도 소통만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건 국어의 존엄함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그리하여 “임시정부가 영원하라”, “영혼이 목숨을 바쳤다”라는 황당한 망발을 저질러도 누구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것이다. 한글자랑만 할 게 아니라 한글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요, 임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