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을수록 영화를 자주 보자.
언제부터인가 나는 영화 보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에는 도둑 극장도 불사했었지만 철이 들어서는 책을 보는 것이 영화 보는 것보다 훨씬 고등적인 문화습득이라는 합리적인 명분에서였다. 그래서 영화 보기를 즐기는 사람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특별한 목적이 아니라면 돈을 들여가며 영화관에 가서 몇 시간을 죽치고 있다는 것은 시간의 낭비라고 단정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화관에 간 적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TV를 바보상자라고 규정하고서 TV 시청이나 영화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얕잡아 보기 일쑤였다. 좀 특별하기를 원했던지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다.
정년을 하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시간 보내기가 그리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궁여지책으로 집에서 만만한 TV 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속극과 공짜 영화가 숱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대부분 장편이라서 영화 한 편 다 보려면 수십 시간이 걸리고, 오랫동안 볼 체력도 안 되니 며칠을 두고 나누어 보아야 한다. 아무리 시간이 남는다 해도 며칠 동안 거기에 빠져 살아도 되는지는 아직도 회의적이다.
영화를 보더라도 거기에서 재미를 느끼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고전극이나 정통 영화들은 별 문제가 없으나 외국영화나 심리추리물, 청춘연애, 범죄수사극, 판타지- 이런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벌써 귀가 어두워서인지 작은 소리로 하는 대사는 잘 안 들릴 때가 많다. 그래서 소리를 키울라치면 옆에서 시끄럽다고 구시렁댄다. 아직은 내 청력을 의심해 본 적이 별로 없지만 영화 볼 때만큼은 귀가 벌써 어두워졌다는 생각에 기가 죽는다. 요즘 영화는 왜 그리 목소리가 작고, 말을 자주 끊어대고, 생략, 암시, 상징적인 대사가 많은지 모르겠다. 난해한 소설처럼 나같이 수준 낮은 시청자와의 의사전달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하다. 젊은이들한테는 괜찮은지 모르지만 늙은이들한테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에서 대사 몇 개를 놓치면 유추력이 부족해서 맥락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소리가 작지 않더라도 여전히 난해한 대사와 생소한 단어가 자주 나오면 제대로 이해가 될 리 없다. 장면을 보아도 인물의 행동이나 암시적 배경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배경이나 배우의 섬세한 동작을 이해하지 못하면 당연히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니 ‘영화 난독증’이라고나 할까?
잘 생각해보면 영화 난독증은 단어나 음량, 장면의 문제보다는 젊은이들의 세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내는 비교적 영화에 대한 감각이 좋아서 곧잘 나의 궁금증을 옆에서 풀어준다. 아내는 나보다 몇 살 아래니까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직업상 근엄을 유지하고, 수범이 필요했던 나는 같은 나이보다 더 꼰대였던 것 같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나는 훨씬 전부터 신세대와 단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요즈음의 영화가 쉽게 이해될 리 없다.
세대 간의 갈등의 문제에서 신세대가 옳은가, 구세대가 옳은가는 생각만큼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닐 것 같다. 모든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진다. 누가 옳고 그르건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단절되었다면 불행한 일이다. 벌어진 세대 간의 거리를 좁히려면 서로가 양보해야 할 것인데 역사는 과거지향이 아니라 미래지향이어야 옳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구세대가 신세대에 맞추며 살아야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처럼 구세대의 경험과 권위만 내세우다 보면 사회는 발전보다는 정체가 많을 것이고, 사회적인 걸림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구세대의 뜻대로 결말이 난 이번 대선 결과를 보면 젊은이들이 노인들을 어떻게 바라볼지 도무지 가시방석이다. '꼰대들 때문에 도무지 되는 일이 없어-'라는 비아냥이 뒤통수를 근지럽게 한다. 어른 노릇은커녕 역사의 걸림돌, 장애물을 면치 못한다면 무슨 염치로 백 년 장수를 구가할 수 있을까? 젊었을 때 기성세대를 어떻게 생각했었는가를 생각하면 오늘날의 내 처지를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으련만 틈만 나면 '즐거운 노년'에만 탐닉하고,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덮어놓고 말세타령만 해대기 바쁘니 낯이 뜨겁다.
나의 청력이 아직 정상이라 해도, 영화를 가까이하여 대사나 장면에 익숙해지더라도 나의 영화 해독력은 쉽게 개선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요즘 영화는 기본적으로 소통성보다는 작품 예술성을 중시하고, 생소하거나 수용하기 어려운 신세대의 가치관과 주제의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옛날의 영화처럼 뻔한 줄거리나 판박인 주제의식이 아니다. 관객을 위하여 구체적이고, 친절한 장면이나 대사도 제공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영화감상력이 둔하지 않다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노인들은 대개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니 '영화 난독증'이 문제가 아니라 '세대단절'이 더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런 형편에 영화마저 보지 않는다면 세대단절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틈나는 대로 영화 감상을 즐기자. 어차피 남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돋보기를 달래가며 책을 보는 수고보다는 영화를 자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영화는 이제 더 이상 과소평가하거나 경멸할 대상이 아닌 것 같다. 모자라는 감상력이지만 젊은이들을 이해하고 세대단절을 줄이기 위해서 영화를 더 가까이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고리타분한 사극물이나 정통영화보다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고르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는 방법일 것이다. 영화를 자주 접하다 보면 젊은이들의 사고와 가치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도 무섭고, 바깥출입도 그리 만만치 않다면 집에서 편히 누워 지긋이 여유 있게 영화를 즐기는 것이 그나마 세대단절을 줄이고, 꼰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