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하지만 정작 우리 현실을 생각하면 그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경제는 선진국이라고 하지만 선진국이 우리를 보는 시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최고의 교육열과 선진국 못지않은 교육기반 시설을 갖추고도 '경제동물'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기피시설인 원자력발전과 살상무기를 들고 대통령이 공공연히 세일즈 외교를 벌이는 나라를 곱게 보아 줄 것 같지 않다. 선진국들은 이런 장사를 감추면서 한다. 야만스럽게 때문이다. 요즈음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태를 보면 부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막장에 닥친 기분이다. G7, NAtO에 초청받고 경제대국, 기술강국에 자부심을 갖는 것도 좋지만 인구절벽이 눈앞이고, 극단의 국민분열과 국기문란과 계엄령이 횡행하고, 교단이 한꺼번에 무너지는데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참으로 걱정이다. 경제는 한 정권의 노력으로 개선될 수 있지만 교육은 한 세대로도 회복될 수 없으니 '문제는 교육'이라는 각성이 필요하다.
모두가 교육의 성패를 학교교육으로 돌리지만 학교교육 이전에 당연히 가정교육이 먼저 이루어진다. 유대인의 교육성공은 가정에서 이루어졌던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은 학교교육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옛날에는 버릇없는 애들을 꾸짖을 때 '가정교육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그것은 부모를 탓하는 말이었다. 밥상머리 교육이란 어른이 집안에서 자식을 가르치는 가정교육을 말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집안에 어른은 없고 철부지 부모들이 즐비하다. 교육의 시작인 가정교육은 뒷전에 두고, 학교교육에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학교교육을 가장 불신하는 것이 가정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학부모이다. 이는 논리적으로는 엄청난 이율배반이요, 교육적으로는 크게 어리석은 짓이다. 자식의 출세에만 눈이 어두워 정작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간, 인격에는 별 관심이 없는 부모들이 많다. 자식이 인격을 갖추지 못하고, 사회화되지 못하면 생존력이 떨어진다는 당연한 사실을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교육은 가정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가정교육은 당연히 사회에 맞추어져야 한다. 그러나 가정에서는 사회화 교육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학교교육에 의탁하는 것이고, 그래서 국가에서는 학교교육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권리가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민주주의를 강조하더라도 원천적으로 의무가 권리에 우선하는 것이 사회의 원리요, 도리임을 알아야 한다. 가정교육은 기본적으로 학교교육을 준비해야 하고, 전문교육기관인 학교교육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데 근래에 학부모의 학력이 높아지고, 공교육의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학교교육이 신뢰를 받지 못하고, 심지어 학교교육을 포기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다 보니 우리의 후예들은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정상적인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조국 사태’나 드라마 '글로리'는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모두들 거기에 분노하지만 그런 찬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치고 그러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들이 그런 비리와 악행에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짓이 늘 있는 관례일 뿐이고, 문제가 된 것은 지독히도 운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것도 능력이라고 말하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경쟁에 눈이 먼 부모와 아이들로 넘쳐나고, 그 경쟁심은 양심과 인륜도덕을 어지럽게 하고, 필경 부모마저 우습게 알고, 폭행 살해하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물신주의, 향락주의에 젖어있는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 우리의 뒤를 이을 미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험하게 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일부의 학부모와 아이들은 이미 괴물이 되어있다.
학교에서 사회화 교육을 충실히 하지 않는 것도 문제이지만 사회화 교육을 시킬 수 없는 현실이 더 문제이다. 가정에서는 사회화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학교에서 시도하는 교육을 쉽사리 인정하지도 않는다. 지금 우리 가정에서 원하는 학교교육이란 '인간의 사회화'가 아니라 '개인화, 이기화된 출세주의자'들인 것 같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학부모의 요구가 국가 사회에서 요구하는 힘보다 더 커졌다. 그래서 국가의 교육과정보다 가정의 요구가 더 중요해졌으며, 교사는 부모의 하수인이 되었고, 학부모는 찐갑이 되었다. 학부모의 권위가 교사보다 더 세다면 학교교육이 정상일 수 없는 일이고, 아예 학교가 존재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사교육이 공교육을 능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막대한 교육예산의 낭비요, 가정의 입장에서 보면 엄청난 교육비와 교육세를 부담하면서도 자식의 사회화 교육에 성공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의 공교육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학교교육은 불신을 받을 수밖에 없고, 국가와 사회와 가정의 장래는 염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오늘날 우리 청소년 학생들을 보면 옛날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놀라게 된다. 사회의 변화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도 많겠지만 우려스러운 점 또한 적지 않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고, 공공질서를 모르고, 청소는커녕 쓰레기를 멋대로 버리고, 선생님을 거침없이 폭행을 휘두르는 애들이 부모를 공경할 리 없다. 제 자식만 귀한 부모의 과잉보호를 받으며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눌린 아이들이 정상적으로 사회에 적응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위험해진다. 교육이 오로지 출세주의, 황금만능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방편이 되어서는 우리의 미래는 행복해질 수 없다. 기성세대의 각성이 먼저이겠지만 신세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은 우리가 당면한 어떤 문제보다도 크다. 지금 우리가 처한 인구절벽도 사실 교육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므로 그 해결책도 모두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상식을 정부는 잊은 듯하고, 국민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하기야 이는 교육의 주체인 국가나 사회의 요구이지 교육의 대상인 국민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개인의 이익을 바라는 입장에서는 사회의 공익을 추구하는 학교교육과 상충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의 주체마저 교육의 본질을 모르고 있으니 그 대상인 국민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개인의 요구대로 국가의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그 사회는 정상적으로 유지될 수 없다. 지금 우리의 교육은 이런 본질적인 모순과 상충에 빠져 있다. 무엇보다 교육은 가정의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되고, 자식에 대한 책임은 학교의 교사보다 가정의 부모에 먼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