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 교육 2

by 김성수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자식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을 것 같다. 다른 대상이야 이성적이고, 이해타산이 있을 수 있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무조건이다. 자식 사랑이야 원래 큰 것이었지만 근래 출산기피 현상이 점점 심해져서 한 자녀가 많다 보니 자식은 자신보다 더 귀한 존재가 되었다. ‘무조건’은 이성적인 판단이 없으니 맹목적일 수 있다. 내 자식을 무조건 ‘최고’로 키우겠다는 생각은 당연한 자식사랑일 것 같지만 내 자식이 최고가 되려면 남의 자식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니 이기적인 욕심이 깔려있다. 더구나 최고의 내 자식을 만들기 위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떻게 해서든지’라는 생각은 상식이나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자식사랑이기에 앞서 분별없는 부모의 과욕이요, 자식을 통한 대리만족일 수도 있다. 이런 이기적인 탐욕과 맹목적인 자식사랑을 당연시 하는 것에서 우리 교육의 비극은 시작되고 있다.


오늘날의 자식은 '어린 왕'이다. 철이 없다보니 제멋대로 왕이고, 애들 하고 싶은 대로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요즈음 철없는 부모들이다. 제멋대로라면 남에 대한 배려는 있을 수 없고, 자연히 이기주의, 개인주의에 젖을 수밖에 없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는 예절도, 봉사도, 희생도, 절약도, 절제도, 고마워 할 줄도 모른다. 형편이 어떻든 내 자식만큼은 최고로 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분별없는 욕심이다. 그것이 꼭 필요해서라기보다는 남들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그렇게 따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으니 우리의 자식사랑은 맹목적이다.


왕으로, 모자람 없이, 안 되는 일이 없이, 나밖에 모르는 아이는 당연히 사회에 적응해 나갈 수가 없다. 공중도덕도, 겸손도, 사양도, 양보도 할 줄 모르는 아이는 사회의 부적응아, 무능자, 정신적 허약자가 되기 쉽다. 사회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제 구실을 할 수 없는 미숙아가 되기 십상이다. 어려서 막무가내 살려 준 기(氣)가 사회에 나가서는 독선과 주눅과 부적응의 원인이 된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는 현명하지 못하다. 학교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군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는 부모책임이 크다.


젊었을 때의 만족과 행복이 반드시 좋은 것만도 아닐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만족하고 행복했다면 나이가 들수록 그 만족과 행복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사람의 욕심은 만족과 행복을 오래 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렸을 때 만족과 행복을 누리기보다는 성장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그것을 만들도록 길러주는 것이 더 큰 자식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그 만족과 행복은 젊었을 때 적었을수록 나이 들어서 더 커지는 법이다. 지나친 ‘부모 Chance’는 자칫 ‘부모 Trap’이 되기 십상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금수저는 오히려 화근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맹자는 배불리 먹고, 풍족하게 살면 짐승이 되기 쉽다고 했다. 금수저, 부모찬스 시대에 철없는 소리라고 비웃을 사람이 많겠지만 어렸을 때 아쉬움 모르고 제멋대로 철없이 성장하면 예의염치를 알기 어렵다. 요즈음은 금수저가 출세하기 좋은 사회구조이지만 ‘출세’와 ‘사람 되는 것’하고 전혀 다른 것이다. ‘되지 못한 사람’이 출세한다면 부모한테도 좋을 것 없고, 당연히 사회는 불행해진다. 우리 속담에도 '가난 속에 효자 난다'라고 했고, 숙수지환(菽水之歡)은 ‘콩물 마시던 행복’이란 말이다. 콩물이란 맛있는 두유가 아니라 어렸을 때 부모 잘못 만나 콩비지로 배를 채우던 행복이다. 아쉬움 없이 자란 자식은 부모 고마운 걸 모르는 법이다.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고 대드는 자식에게 부모의 무능을 자책할 것이 아니라 그렇게 철없이 키운 자신을 통탄해야 옳다. ‘나쁜 자식’에 앞서 ‘어리석은 부모’였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인기 드라마 '스카이캣슬'이 어찌 남 일인가? 어렵게 살았던 자식은 효도를 하지만 풍족하게 자랐던 자식은 효도는커녕 패륜도 서슴지 않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무서워 해야 한다.


자식을 입신양명하여 출세시키는 것이 부모의 도리요, 보람으로 여겼던 생각은 옳지 않을 것 같다. 자식을 출세시켜 놓고 남에게 자랑을 하는 즐거움도 적지 않겠지만 정작 혼자서는 속이 쓰린 부모가 많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부모가 원하는 틀에 자식을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해 주고, 부모가 아니라 자식이 행복하게 살게 해 주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어 자식들은 이미 부모의 생각과 가치관이 달라졌음을 알아야 한다. 신세대들은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희생했던 것처럼 부모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내 인생은 내가 산다’는 것이 요즈음 젊은이들의 인생관이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고, 부모도 자신의 인생이 있으므로 성인이 된 자식까지 책임질 의무도 없는 것이다. 이제 늙기까지 부모와 같이 살고 싶은 자식은 없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쳐야 할까? 그래봐야 애물단지 캥거루 새끼만 넘쳐난다.


학생을 가르치기는커녕 교사가 폭행당하는 사건이 한 해 1200건이 넘고, 민원에 의하여 교사가 교장에게 호출당하고, 교육청에 소환당하고, 법정에서 재판받는 일이 잦으며, 학부모 등쌀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하고, 거리에 나가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형편이라면 이땅에 교육은 막장에 다다른 것이다. 학교와 교사를 우습게 알면서 자식에게 존중받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부모이다. 선생님을 존중하지 않는 아이는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려면 구태여 시답잖은 학교와 같잖은 교사에 자식을 맡기지 말고, 잘난 부모가 스스로 가정에서 어린 왕의 장래를 책임질 일이다.








댓글 쓰기 허용afliean


이전 07화 *밥상머리 교육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