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백년대계이다.
내 경험으로 말하면 교육대학, 사범대학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선량한 편이다. 애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개 순수하고 선량한 마음의 소유자이고, 그런 사람이 교직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경력교사 자격연수반 교사들은 사범대학 학생들보다 어딘가 덜 순수하다는 느낌을 준다. 교사 경력을 쌓았으니 선생님으로 더 적화되어야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한 면들이 자주 보인다. 학년이 높을수록 덜 순수하다면 머리가 큰 애들을 다루다 보니 자연히 애들의 수준에 맞추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이 나이가 어릴수록 순수한 것을 보면 성선설(性善說)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특수교사 연수반에 들어가보면 감탄할 정도여서 심지어 사범대학 학생들보다 더 순수하고 선량하다. 불우한 조건을 갖고 있는 특수한 애들을 가르치려면 이처럼 특별한 심성과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수교사들의 의무가 아니라 타고난 심성과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특수교사와 초등교사들은 교육자로서 더 존경을 더 받아야 옳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이다. 교사로서 더 존중받아야 할 초등교사와 특수교사들이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유달리 잦다. 요즈음 희생당하고 있는 교사들이 대부분 이런 선생님들이다. 그러니 그보다 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유치원, 유아원 교사들은 더 할 것이다. 오죽하면 선생님의 가슴이 크다고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만약 교사가 아니었다면 이 부모는 처벌되었을 것이니 교사는 보통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지 않는가?
사실 학교에서 민원이 발생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 자녀들이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정상적으로 가정교육을 잘 받아 적응하는 아이들은 대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자기 자식의 문제를 모른다면 무지한 부모이고, 자식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책임의식은커녕 선생님을 괴롭히는 것은 파렴치한 횡포이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무리한 민원을 일으킬 게 아니라 오히려 문제아를 가르치는 선생님을 찾아서 협력과 호소를 해야 옳다. 옛날에는 학교 가는 아이에게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 가르쳤고,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 나면 집에 가서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말해 봐야 오죽하면 선생님이 그랬을까라고 또 혼이 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하고는 세상이 많이 달라졌지만 자식의 문제는 우선 자식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정상적인 부모일 것이다. 철부지 금쪽이 말만 믿고서 선생님에게 책임을 돌리는 짓은 자식을 위해서도 옳지않다. 그런 애들이 선생님의 말을 들을 리 없고, 선생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애초부터 학교에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 더구나 장애아를 맡겼다면 당연히 선생님에게 기본적으로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있어야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일부의 학부모들은 자신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선생님에게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으니 양심이 없는 짓이다. 불만이 있으면 주저없이 민원을 일으켜 선생님을 곤경에 빠트리고, 심지어 협박, 보복까지도 서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은 장애아의 부모들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심리적으로 장애부모가 되어가는 경우가 많다. 긴 병에 효자 없듯이 장애아에게 시달리다 보면 부모도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어찌 보면 장애아의 부모도 사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처지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애아동에만 매몰되어 교사나 학부모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니 문제가 크다.
교권침해가 가장 심각하게 벌어지는 곳이 초등학교와 특수학급이다. 나이가 어릴수록 교육의 중요성이 크다. 이 시기에 대부분 인성이 형성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가정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여 가정교육을 맡을 어른은 없고, 맞벌이 부모는 아이를 탁아소, 유치원, 초등학교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교사는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가장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거꾸로 가장 만만한 학부모의 분풀이감이 되고있는 기막힌 현실이다. 내 자식을 위한답시고 교사를 함부로 대하면 결국 자식을 희생시키는 어리석은 짓임을 알아야 한다. 선생님을 우습게 아는자식은 부모마저도 존중하지 않는다. 옛날에 선생님을 존중했던 부모는 결국 자식을 위한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요즘 젊은 학부모들은 비교적 자유로운 교육을 받은 세대에 속한다. 선생님을 존경할 줄도, 무서운 줄도 모르는 애들이 부모가 되었으니 오늘날의 사태는 돌발현상이 아니다. 만약 지금의 금쪽이들이 부모가 되는 시대가 되면 어찌 될 것인지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일이다. 이런 현실을 생각지 못하고 내세우는 정부의 모든 대책은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隔靴搔癢(격화소양)이란 말처럼 ‘구두 신고 발바닥을 긁는다’고 발바닥이 시원할 리가 없다. 교단붕괴를 막으려면 먼저 교사에게 교권을 돌려주어야 한다. 세계적 관심사인 우리의 인구절벽을 막으려면 교육을 바로 세워 잃어버린 도덕윤리를 회복시켜야 한다. 만연한 천박한 물신주의, 개인주의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모든 노력이 공념불이다. 지금의 위정자들에게 이런 기대를 한다면 딱한 국민이다. 권력에 눈이 먼 정치꾼들이나 자리보전에 눈치만 보는 당국에게 기대할 게 아니라 국민이 스스로 각성하여 저들을 깨우치는 수밖에 없다. 작금의 사태를 교훈삼아 우리에게 민주시민의식과 도덕윤리 회복 없이는 국난극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