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로 내몰린 선생님 5

선생님에게 권위를 돌려주자.

by 김성수


요즈음 우리사회는 교육 때문에 난리라서 그야말로 교육대란(敎育大亂)이 벌어지고 있다. 국가의 백년대계가 난리라면 인구절벽과 함께 민족적인 위기임에 틀림없다. 모두들 교권이 무너졌음을 탄식하고 있지만 정작 교권(敎權)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는 듯하여 다시 한번 짚어보아야 할 것 같다. 무릇 개념이 잘못 인식되면 만사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이라서 모든 수고가 별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교권이란 교육의 권리, 또는 교육의 권위를 말한다. 우선 교육의 권리란 ‘교사가 간섭을 받지 않고 소신껏 학생을 가르칠 권리’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는 이상일 뿐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교육은 나라에서 제시한 교육과정을 따라야 하고, 장학진의 감독을 받아야 하고, 학부모의 요구와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소신껏 가르칠 교사의 권리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현실이 이렇다면 아무리 교권확립을 부르짖더라도 지금의 교육대란을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교권에 대한 전문가, 정책입안자들이나 교사들의 요구도 대개 이러한 범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학생의 인권이나 학습권에 치우쳐 있는 현행 제도를 덜어내서 교사의 교육권에 보태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균형이란 상호소통을 통한 절충이겠는데 적당히 맞추어진 절충협상은 기껏 임시방편을 넘기 어려워 백년대계가 될 수 없다. 오늘날의 교육대란은 이런 고식지계로 수습될 정도로 가볍지 않다.


대란의 근본적 원인은 교권이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권위(權威)란 말에 대해서 막연한 거부감을 갖기 쉬운데 일방적인 권력이나 과장된 위세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權의 본래 뜻이 ‘공정과 균형을 맞추는 저울추’라면 이는 모든 질서를 이루는 기준이다. 威도 억압이 아닌 학생을 감복시킬 수 있는 위엄이라면 교사의 권위는 교육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권위는 권리처럼 명문화되어 있는 법령이 아니라 교사가 스스로 갖추고 있는 무형의 자산이다. 교사에게 이런 권위가 없다면 아무리 학습권을 제한하고, 아동교육법을 완화시키고, 학생인권조례를 개정한다고 해도 지금의 혼란이 수습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고민이 기껏 교사의 권리에서 맴돌고 있으니 그 한계가 크다.


교사의 권위가 선다면 모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교육법과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옛날에 오히려 교육이 살아있었기에 오늘날의 번영이 있을 수 있었다. 각종 법령과 교육이론과 교육설비가 잘 갖추어진 지금 교육이 성공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교육적 여건이 열악했던 옛날에는 성공적이었던 우리의 교육이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실패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옛날에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것- 그것은 ‘교사의 권위’였다. 그러므로 문제는 교육권이 아니라 교사의 권위에 달려있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지금과 같이 피상적인 교육권 개념으로는 서지 않을 것이다. 권위는 법령이나 일시적인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부단한 노력으로 서서히 형성되는 덕목이다. 그것은 교사의 노력으로만 세워지는 것도 아니고, 법령과 제도로 되는 것도 아니다. 교사의 노력과 정책의 뒷받침이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보수나 법령 제도도 중요하지만 교사의 사회적 지위를 높여주는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교사는 부귀가 아니라 명예와 권위의식으로 사는 스승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사도 정부의 지원만 기다리지 말고, 권위를 갖추어 학생에게 존경받을 수 있도록 스스로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학생을 압도할 수 있는 인격과 교과에 대한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거리에서 교사의 생존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선생님들을 보면 애처롭지만 일시적인 동정으로 선생님의 권위를 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 지금 교장, 교감, 원로 중에는 과거 학생을 함부로 대하고, 촌지를 받았던 일도 있었음을 반성해야 한다. 지금의 교권추락은 일정부분 교사들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교사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거나 엄포를 놓을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교사의 권위를 지켜주는 데 힘써야 유능한 교육자가 다투어 교육의 현장에 달려나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같아서야 우수한 교사지망생을 기대하기 난망이다.


우리 사회의 병폐 중의 하나는 현상에 휘둘려 본질을 잘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구절벽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윤리회복이 본질적 해결책이라고 믿는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이 돈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주의, 편의주의, 향락주의에 빠져있기 때문임을 알아야 한다. 교권추락은 교육의 권리가 문제가 아니라 교사의 권위추락이 그 핵심이다. 교권은 제도적인 현상이요, 권위는 윤리적인 본질이다. 윤리회복, 권위란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본질이 잘못되면 현상은 그야말로 허상일 뿐이다. 이것이 어찌 교육에 한정되는 문제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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