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사람으로서 요즈음 교육대란을 지켜보는 입장이 참담합니다. 선생님들이 기막힌 일을 당하고, 거리에 나와 생존권을 부르짖어서야 겨우 사회에서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응도 일시적인 소동으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입니다. 오늘의 교단붕괴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에서 나온 것이고, 국가의 백년대계가 그런 미봉책으로 해결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개념 없는 당국과 도덕불감증에 걸린 사회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비상한 각오로 무너진 교권을 다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교권이 우리 사회의 화두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행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본질에 닿지 못하다 싶습니다. 이른바 교권은 권리와 권위를 아울러 하는 말입니다. 권리는 사람이 누리는 물리적인 이익이요, 권위는 인격적인 존엄일 것입니다. 또한 권리는 사회적 제도에 의해서 지켜지는 것이요, 권위는 스스로 지켜내는 것이라는 점에서도 같지 않습니다. 교사의 교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너진 나라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교사의 권리와 권위를 세워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무너진 교권확립을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제도나 법령마련에 급급해하는 데 그치는 것 같아 유감스럽습니다. 교사의 권리에만 집착하면 필연적으로 학습자의 권리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교사에 편향적인 대책이라면 학부모나 사회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고, 교사로서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일부 법령의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벌써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짐작컨대 이러한 대책도 한때의 임시방편에 그칠 공산이 크고, 언제 사회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바뀔지 모르는 일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으로는 무엇보다도 교사 권위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전통적인 교권은 물리적인 법령이 아니라 학생을 압도하는 교사의 존엄과 권위에 있었습니다. 과거의 권위적인 교육이 부작용도 적지 않았지만 오늘날 같은 교육대란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민주주의 교육이라 해서 교사의 권위를 퇴출시킨 결과가 지금의 교단붕괴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요? 이른바 사제동행(師弟同行)이라는 구호 아래 교사와 학생이 같이 행동하면 교사의 권위는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무릇 권위란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상대방을 능가할 수 있어야 서는 법입니다. 지금처럼 선생님이 학생의 평가를 받는다든지, 애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은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리는 일입니다.
본질적으로 교사는 학생과 어울리되 그들과 같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른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자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和는 수단이요, 不同은 본질입니다. 교사와 학생은 행동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인격이나 정신세계에서는 절대 동등할 수 없는 것이 사제(師弟) - 스승과 제자의 관계입니다. 교직은 노동직이 아니라 전문직이라는 긍지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의사가 권위가 없다면 환자의 병을 치료할 수 없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환자가 의사에게 처방과 치료를 간섭하고 구속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학부모와 사회의 탓으로만 돌릴 수 있겠습니까?
교사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매사에 학생들의 수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사도 평범한 생활인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권위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학생들과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서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많지만 그렇게 된다면 교사는 몰라도 스승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모범이 될 수 없다면 모범인 척이라도 해야 할 것입니다. 설령 그것이 위선이라 해도 그것을 ‘선의의 위선’으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직자, 교육자의 슬픈 운명일지도 모릅니다. 요즈음 젊은 교사들은 권위와 위선을 거부하는 일이 많지만 그로 인해 오늘날의 사태를 자초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편견인지 모르지만 솔직하게 살고 싶고, 위선이 싫다면 교직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자는 후진을 양성한다는 자존심으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심은 권위를 유지시키는 심리적인 바탕입니다. 학부모한테 시달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교사들은 실추된 권위와 자존심을 감당할 수 없어서였을 것입니다. 만약에 교사를 직업으로만 생각했다면 살아서 학부모의 부당한 간섭과 횡포에 당당하게 맞서 싸웠을 것입니다. 그런 투철한 명예의식이 있어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었습니다. 희생된 교사를 진정으로 추모하고, 기리는 도리는 형식적인 권리를 요구하기보다는 실추된 교사의 자존심과 권위를 회복하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다른 이익집단과 다른 師道의 자존심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교사들을 불러 수당 인상을 약속하는 것은 치졸한 매표행위요, 교권과 자존심에 대한 모독입니다.
직업으로서의 교사보다는 스승으로 불릴 수 있어야 참 교권이 설 수 있습니다. 그것을 사회에 요구할 수는 있어도 교사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실현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교권회복은 비단 교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위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참된 스승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글이 지나치게 권위적이어서 죄송합니다만 원래 교육은 권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