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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Mar 20. 2024

의검외전(醫檢外傳)

이권카르텔과 권력카르텔의 고래싸움에 국민은 등 터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인재들이 모여드는 곳이 의대, 법대이다. 의대를 나오면 고수입과 평생직장이 보장되는 의사가 되고, 법대 출신 중에서도 가장 똑똑한 사람이 천하제일검 검사가 된다. 그러니 너도나도 기를 쓰고 의대, 법대를 입에 달고 산다.    

 

  의사와 검사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의사, 검사가 되면 본인은 물론 가문, 모교, 지역의 영광이다. 둘째. 이들은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들로서 내신과 수능 특등급 수재들이다. 셋째.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들이다. 넷째. 그들은 안하무인의 우월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오로지 의사, 검사가 되기 위한 공부밖에 몰랐으니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는 철두철미 개인주의, 이기주의, 우월의식자들이다. 차이점이라면 의사는 흰 가운을 입고 사람을 살려내려 하는 반면, 검사는 검은 법복을 입고 사람을 잡아넣으려 한다.

 

 이 중에 첫째, 둘째는 직무를 수행하는데 도움은 될지언정 필수요건은 아니다. 그런 우월의식은 그들을 독선과 아집에 빠트릴 수 있다. 예컨대 명석한 두뇌는 의술에 도움은 될지언정 본질인 仁術과는 별 상관이 없다. 법조문을 통달한 암기력은 사람을 구속시키는 재능이지만 인권에는 독이 된다. 이들은 명석한 두뇌와 암기력으로 부와 권력을 틀어쥐고, 그것을 엘리트의 당연한 권리로 자부한다.  

 

 요즈음 온통 나라가 의료대란으로 위급환자들이 갈 데가 없고, 머리 좋은 의사들은 공공의 적이 되고 있다. 파업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라 하더라도 히포크라테스를 자처하던 의사가 그래서는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전문직은 당연히 일반 노동자와 같을 수 없다. 그들이 어떠한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파업은 이권 챙기기를 벗어날 수 없다. 인명을 손에 쥔 사람들이 천사의 옷을 입고서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이권을 탐한다면 용납할 수 없는 위선이요, 폭력, 추태이다.

 

  그런데 의사들의 파업을 야기한 정부의 핵심 세력은 의사보다 더 막강한 칼을 쥐고 있는 검찰공화국의 검사들이다. 대표검사 대통령은 걸핏하면 이권카르텔 척결을 외치지만 세상에 검찰카르텔보다 더 강력한 이권집단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켜내기 위해서 파업이 아닌 파정(罷政)을 하고 있다. 의사파업은 직무방기에 그치지만 정치검사의 파정은 나라를 위험하게 하므로 그 파급력이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의사, 검사들은 우월의식과 엘리트 의식에 차있을 뿐 본연의 임무인 국민의 생명과 권익, 나라의 장래는 안중에도 없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출세를 위해서 살아왔으니 사람에 대한 배려와 사회윤리같은 것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다. 특권의식으로 가득찬 사람들이 약자를 배려할 리 없고, 국민을 존중하고 무서워할 리 없다. 그들은 태생적으로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와 행복만이 중요할 뿐, 환자와 국민들은 돈벌이의 대상이요, 수준 미달의 무지렁이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우월하니 당연히 강력한 힘과 위엄으로 국민에 군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어온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금 우리 사회를 전횡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의료대란은 의사와 검사들의 카르텔 충돌이다. 의사들은 불과 이십여 전에 벌어졌던 의사과잉 사태로 전전긍긍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할 터이다.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시도를 번번이 꺾어온 기개가 등등하다. 코로나 퇴치에 헌신하고, 의사가 귀해져서 이제 좀 권세를 누려볼까 했는데 난데없이 가당찮은 정치검사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빼앗으려 하고 있으니 절대 굴복할 수 없는 일이다. 허접한 양심, 인술 따위는 찾을 겨를이 없는 것이다.  


  정치검사들은 역대 정권들이 해내지 못한 의사 증원이야말로 오만한 의사들의 카르텔을 꺾어 失政을 만회하고,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비책이다. 설마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태껏 가만있다가 갑자기 선거를 앞두고 의료계의 반발과 요구를 묵살한 채 협상, 타협의 과정도 없이 막무가내 밀어붙이는 행태를 보아도 이들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다. 합리적인 절차를 밟아 의사들이 순순히 복종하면 선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므로 의사들의 반발이 셀수록 효과가 좋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의사들을 자극하여 부도덕과 반발을 유도한다. 순진한 의사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그들만의 노하우다. 국민의 지탄을 받는 의사들을 일거에 제압하면 유권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낼 수 있고, 동시에 불안한 정권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 이들 하는 짓이 칼로 자식을 두 동강이 내어 차지하겠다는 가짜엄마와 무엇이 다른가? 정말 그들 말대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이런 패악을 저지를 리 없다.   


  그러나 이 싸움이 쉽게 결판이 날 것 같지 않다. 이 나라의 가장 우수한 집단들이라고 자부하는 세력들의 고래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에는 의사의 白衣가 검사의 黑衣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흰옷은 쉽게 때가 타고,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어려운 법이다. 의사는 다수이지만 어리석게도 국민을 인질로 삼고 있고, 검사는 소수이지만 국민을 우군으로 삼고 있으니 의사가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그러나 설령 검사들이 이기더라도 결국은 상처뿐인 승리일 것이다. 동기가 불순했고, 그 방식이 무지무모하기 때문에 그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누가 이기건 그 사이에서 등이 터지는 건 힘없는 국민일 뿐이어서 슬픈 일이다.

 

  국가의 발전을 이끌어야 할 최고수준의 인재집단이 국민과 국가를 팽개치고 싸우고 있으니 우리는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러한 현실은 타락한 사회윤리와 교육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설사 머리는 덜 좋더라도 따뜻한 인간애가 필요한 직종이 의사요, 검사들이건만 그들에겐 탐욕적인 우월의식만 넘쳐난다. 정작 고급두뇌가 필요한 연구개발 분야는 의대에 빼앗기고, 명석한 인재가 필요한 인문학과 외교분야는 법대에 빼앗기고 있으니 심각한 국가인력의 구조적인 결함이다. 뛰어난 인재들이 돈벌이에나 몰두하고, 권력이나 쫓아다닌다면 참으로 국가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묵묵히 생명을 구하는 제생(濟生)을 신조로 삼고 있는 소수의 의사와 세상의 정의를 세우려는 제세(濟世)를 목표로 아는 양심법관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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