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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Sep 26.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3

달의 전설

18. 嫦娥  

        李商隱  813-858                  


雲母屛風燭影深◎       운모병풍에 황촛불 가물거리고

長河漸落曉星沈◎       은하수 기울어가고 샛별도 저무는데

嫦娥應悔偸靈藥           항아는 불사약 훔쳐 달아난 일 후회하느라

碧海靑天夜夜心◎       은하수 푸른 하늘에서 밤마다 잠 못 이루네.     

 

이 시는 7언절구로 항아의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여인의 고독을 읊은 시입니다. 이상은은 당나라 사람이지만 현대시적인 감각을 가진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설에 천하명궁인 羿(예)가 열 개의 해를 쏘아 재앙을 없앤 공으로 불사약을 받았는데 그의 아내 항아가 훔쳐 달로 달아나 혼자 신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바라던 대로 신선이 되었지만 달에서 고독에 밤마다 울다가 두꺼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달을 두꺼비 궁(蟾宮)이라고 합니다.

   또 달에서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옥토끼가 절구방아를 찧어 불사약을 만든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달을 玉兎라고도 하고, 해에는 금까마귀가 산다고 해서 金烏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兎走烏飛(토주오비-토끼가 달리고, 빠마귀가 날다)는 무상한 세월을 뜻합니다. 蟾宮折桂(섬궁절계)는 달에서 계수나무를 꺾어왔다는 말인데 이만큼이나 어려운 과거합격을 뜻합니다. 

  이 시는 규중에서 독수공방 하는 여인의 한을 달의 여신인 항아에 이입시킨 것입니다. 이 시가 단순히 달을 읊은 시에 그치지 않는 것은 고독한 여인이 독수공방 하는 장면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 여인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행위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상은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으나 정치적인 야심으로 당쟁에 가담하여 불우한 말년을 지냈습니다. 아마도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읊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선비들은 임금에게 총애를 잃은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읊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이토록 달에다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아왔는데 이제는 달에 드나드는 시대가 되었으니 우리는 꿈을 잃어버린 대신 현실을 얻은 셈입니다. 중국은 달 탐사에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달 탐사선의 이름이 바로 嫦娥입니다. 한시를 통해서나마 잃어버린 꿈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雲母屛風燭影深

雲母 보석의 일종. 屛風 병풍. 운모로 만든 병풍, 화려한 규중입니다. 燭影 촛불에 의하여 만들어진 그림자. 그림자는 고독한 여인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그림자는 생략하는 것이 우리 시에 좋을 거 같습니다. 深 깊다. 그림자가 짙어진다기보다는 밤이 깊어 촛불이 ‘가물거리다’로 옮기는 것이 더 좋아보입니다. 규중 여인의 고독한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長河漸落曉星沈

長河 은하수. 漸落 점차 기울다. 새벽을 말합니다. 曉星 효성, 샛별, 샛별. 沈 잠기다, 떨어지다, 여명에 별빛이 흐려지다. 여기에서는 '저물다'로 옮겼습니다. 밤을 꼬박 지새운 새벽입니다. 잠 못 이루는 여인의 고독을 밖으로 옮긴 장면입니다.  시의 구조상 다음 구와 연결이 되므로 종결어미가 아닌 연결어미로 처리했습니다.     


嫦娥應悔偸靈藥

嫦娥 항아, 남편의 불사약을 훔친 여자. 應 당연히, 틀림없이. 悔 후회하다. 偸 훔치다. 靈藥 불사약. 항아의 남편 羿(예)가 해를 쏘아 떨어트린 공로로 받은 불사약. 영약 하나를 먹으면 무병장수하고 둘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해서 항아는 남편 몫까지 훔쳐 달아나 신선이 된 것을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신선이 되어 고독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희로애락 하는 삶이 낫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것입니다.       


碧海靑天夜夜心

碧海 은하수. 靑天 푸른 하늘. 夜夜 밤마다. 心 고독에 잠 못 이루는 심정. 夜夜心을 ‘밤마다 잠 못 이루네’로 옮겼습니다. 항아의 행동으로 되어있지만 실은 시인의 심경입니다. 그리고 공간은 다르지만 의미상으로는  1행과 연결되어 수미상관(首尾相關)의 탄탄한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독수공방하는 여인의 고독을 밤하늘 야경으로 형상화하고, 거기에 다시 자신의 처지를 투영시킨 기교가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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