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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Aug 08. 2024

댕댕이 이야기 6

댕댕이의 위장술

  우리 집 댕댕이는 치와와와 푸들의 교배종이다. 나는 삐쩍 마른 치와와를 좋아하지 않고, 눈이 멍청한 푸들도 별로이지만 치와와의 동그란 눈과 푸들의 곱슬 털을 교묘하게 합친 토이푸들은 꽤나 귀여운 모습이다. 사슴 눈을 달고, 털이 빠지지 않는 작은 장난감 댕댕이는 집안에서도 키우기 십상이다. 털을 깎아놓으면 도로 치와와라서 혐오스럽지만 털이 길수록 푸들을 닮아가 귀여워지기 시작한다. 털이 길어지면 치와와를 닮은 눈은 동그랗게 예뻐진다. 석 달에 한 번씩 치와와의 본색을 드러내지만 한 달만 지나면 푸들보다 예쁘니 이놈의 정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나는 아예 털을 깎지 말라고 하지만 아내는 털이 길어지면 얽힌다며 내 이발비보다 서너 배나 비싼 돈을 들여가며 볼품없는 치와와를 만들어 놓는다. 

  가만히 생각하면 이놈은 치와와도 아니고 푸들도 아니니 못생긴 것도, 잘생긴 것도 둘 다 진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둘 다 가짜인 셈이다. 원래 못생긴 놈이 털을 덮어서 사람 눈을 어지럽게 하니 이것은 위장술이요, 이것이 이놈의 생존전략이다. 그러나 스스로 그런 수단을 지어낸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게 꾸며댄 것이니 이 녀석의 교활한 위장술을 탓할 일이 아니다. 

  위장(僞裝)은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능력이다. 僞자는 사람(亻)이 하는 짓(爲)이다. 그러니 사람의 본질은 매사를 거짓으로 꾸미는 것이다. 假(가)도 역시 사람이 하는 짓이니 마찬가지이다. 假의 반대는 眞(진)인데 이는 사람이 아닌 신선을 나타낸 글자이다. 신선이 되어야 인간은 비로소 진실해질 수 있다는 말이라면 인간으로 살아서는 진실해질 수 없다는 말이 된다. 글자로 보아서도 어차피 인간은 거짓, 위장을 해야하는 운명인가 보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인간일수록 거짓과 위장이 뛰아나다는 말이 아닐까? 

  이게 맞다면 지혜가 많은 인간일수록 가장을 하고, 위선적일 것이다. 진실했던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위장은커녕 옷조차 입을 필요가 없었다. 지혜가 없었기에 가장, 위선이 필요 없었다. 그러나 지혜가 늘어날수록 위장이 필요해졌고, 상위층, 지배층일수록 가장을 해야 했다. 가장(假裝)은 구태여 지배층이 아니더라도 필연적인 인간의 행위였다. 옷으로는 모자라 가면을 쓰고, 또 가발을 썼다. 그래야 지배층으로서의 위엄이 선다고 믿었다. 지금은 그것으로도 모자라 얼굴까지 뜯어고치는 성형수술이 성행하고 있다. 그깢 댕댕이 정도의 가장술, 털깎기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경지가 되었다. 

  요즘 신세대들은 크고 작은 성형수술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제일의 성형대국이요, 성형병원은 국제적인 성업의(盛業醫)가 되었다. 위장술인 성형과에 밀려서 필수전문의가 고갈된다고 하니 정통의술이 사라질 형편이다. 연예인, 저명인사 중에는 가발을 쓴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하는 짓이니 구태여 탓할 바는 아닐 것이지만 위장술이 정당화된다거나 본 면목보다 더 중요해져서는 우리 사회는 진실해질 수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진실하지 않다는 것은 거짓과 불의가 정당화되는 세상이라는 말과 같다. 그러니 나라가 아무리 엉망진창이더라도 나만 괞찮으면 상관없다. 성형과 의사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의 눈을 아름답게 하는 성형수술과 가발은 우리 사회의 진실과 정의를 갉아먹는 바이러스이다. 

  殷(은)나라를 멸망시킨 달기(妲己)는 구미호(九尾狐)의 혼이 씌운 요부였다고 한다. 그러니 달기의 미모는 여우가 성형수술을 하고, 가발을 쓰고, 콘택렌즈를 뒤집어쓴 것이다. 주지육림(酒池肉林) 포락지형(炮烙之刑)으로 나라를 망친 역사가 옛날 중국에만 있을 리가 없다. 다행히 우리의 역사에는 그런 요망한 ‘왕의 여자’가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딱히 영부인이라 해서 성형, 가발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그것으로 미모의 가면을 쓰고, 깻잎 가발을 쓰고, 콘텍렌즈를 끼고 다니면서 국정을 어지럽힌다면 지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외국의 언론에까지 오르내린다면 국격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심지어는 여사가 권력의 실질적 일인자라는 말도 들리니 실로 나라의 장래가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처럼 가짜가 진짜를 가차없이 유린하는데도 용산에서는 끄떡도 하지 않으니 아내만 무섭고, 나라와 국민이 우습게 보이기 때문이다.  

  성형을 하고, 가발을 쓰고, 렌즈를 끼는 것은 시대적인 사회현상이지만 일국의 영부인이 각종 의혹으로 원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가장, 위장을 하고 국내는 물론 세계외교무대에까지 나대고 있으니 매우 염려스러운 일이다. 여자라고 못할 법은 없지만 이 여사는 과거의 경력이 도저히 그럴 수 있는 주제가 아니다. 대통령은 밤마다 술독에 빠져있다는 소문도 있고, 신성한 국회에서 여당의원을 모아놓고 권주가를 불렀다는 말도 있으니 肉林(육림)은 몰라도 酒池龍山(주지용산)은 틀림이 없는 듯하다. 자신들을 향한 특검법은 번번히 거부하면서 야당 대표와 부인의 10만 원 법인카드는 법정에서 몇 년에 걸쳐 재판을 이어가고 있으니 참으로 염치없고, 가혹한 炮烙(포락)의 형벌이 아닐 수 없다. 이래도 정상적인 상식과 공정의 사회인가? 중국 은나라를 망친 구미호 달기와 주(紂)왕을 다시 보는 것 같아서 소름끼치는 일이다. 그에 비하면 우리집 댕댕이의 위장술은 귀여운 재롱이라서 십 년이 넘었어도 여전히 귀엽다. 흔히 '개같은 x'이라고 욕을 해 대지만 실은 '개만도 못한 xx'이 허다하니 점점 더 열받는 立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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