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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36

꽃 심는 사람, 훔치는 사람.

by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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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꽃섬이다. 사철을 가리지 않고 곳곳에 꽃이 피어있다. 겨울에도 밭에는 완두꽃이 피어있고, 길가에는 동백, 은목서가 피어있고, 길가에 심어놓은 꽃까지 말하면 그야말로 철없는 꽃섬이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유채꽃에서 시작하여 매화, 벗꽃, 복숭아꽃, 살구꽃, 목련에 이르면 말할 것도 없다. 제주에는 야생수선화도 많다. 秋史가 수선화를 즐겨 그린 이유이다. 이어서 개울가에는 유난히 키가 큰 창포꽃이 소담하게 피고, 귤밭에는 귤꽃마저 피기 시작하면 꽃 천지다. 제주사람들의 꽃사랑은 유별나다. 정원은 말할 것도 없고, 밭 한 귀퉁이에도 꽃이 심어져 있다. 제주신화에는 유난히 꽃이 많이 등장한다. 따뜻한 날씨에 꽃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길이 꽃길은 아니다. 길가에는 칡덩굴, 잡초가 우거진 곳도 있고, 짜투리 빈터도 섞여있다. 봄이 오는 산책길에서 어떤 노인 한 분이 조그만 빈터에서 열심히 땅을 일구고 있었다. 옆에서 잠깐 구경하다가 무엇할 거냐고 물으니 튤립을 심을거라고 한다. 아직 서귀포에서 튤립꽃을 보지못해서 종자를 어디에서 구하느냐고 했더니 네델란드에서 수입한 거라고 한다. 비싼 종자값은 어디에서 나느냐고 했더니 자비라고 한다. 더욱 궁금해서 시청에서 알고 있는 일이냐고 했더니 그건 상관없는 일이란다. 그러니 더욱 존경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세상에는 돈을 들여서 길가에 비싼 꽃밭을 만드는 사람도 있구나. 고향이 제주냐고 물으니 서울에서 이사온 지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제주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니 좋기는 한데 텃세가 좀 심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끔은 꽃을 캐가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즐겨 꽃밭을 일구니 보통 사람하고는 많이 다른 분이다. 꽃에 대해서 조예가 있으시냐고 했더니 과거에 이런 일을 하다가 정년을 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낯선 이곳에 와서 돈들 들여가며 재능봉사활동을 하는 분이었다.


나도 정년을 하고나서 무언가 사회에 보탬이 될 일을 하고 싶었다. 우선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일부터 시작한다고 집게를 사들고서 자랑삼아 말을 했더니 그런 일을 하면 청소부, 공공근로자가 할 일을 없어질 거라는 말에 그만둔 적이 있었다. 또 재능기부를 한답시고 동호인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하여 중단되었다. 그 뒤로 놀기에 바빠서 봉사활동을 잊고 있다가 지금은 건강이 여의치 않아 그런 일은 생각지도 못할 형편이다. 그런 판에 이 분을 보니 부끄럽고, 부럽기도 했다. 나는 사회봉사를 너무 크게 생각하다 보니 작은 봉사도 못하게 되었다. 남을 위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청소년들이 희망과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찌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내 의지대로 하려하지 말고, 주님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먼저 생각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에게 어떤 답변이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님’을 ‘사회’ 로 바꾸면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필요한 일을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기주의, 개인주의가 정당한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건 인간의 본능일지언정 본분은 아닐 것이다. 본능대로 산다면 짐승이지 이성적인 인간일 수 없다. 꽃을 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훔쳐가는 사람도 있다.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신의 권력을 위해 나라를 파멸로 몰고가는 정치인도 있다. 그리고 그것을 자유라고 강변하기도 하고, 그런 정치인을 지지하고 맹종하는 사람들도 있다. 양심과 이성이 메마른 사회이다. 태극기, 성조기를 들고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존재일지 사뭇 궁금하다. 아직은 그런 사람들이 소수라서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오죽하면 그 노인은 꽃을 심어놓고 자그만 팻말에 이렇게 써놓았다. ‘같이 꽃을 보아요.’ 지금 우리 국민에게는 이런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같이 행복하게 살아요.'


우리는 지금 온통 분열의 사회가 되었다. 정치인들의 저열한 술책에 국민들이 속아넘어간 것이다. 이제 제발 국민들이 이성을 찾아 망국적 파벌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남북분단에, 좌우갈등에, 보혁대립에, 지역, 남녀노소, 노사, 빈부갈등에 대한민국이 소한열국(小韓裂國)이 되어버렸다. 묵묵히 꽃길을 만들고, 사회의 행복을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도 있는데 꽃을 훔쳐가고, 이기주의를 자유라고 하고, 독재를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사회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서귀포에서 꽃길을 가꾸는 꽃길 전도사의 이름을 알리고 싶지만 본인이 원치않아 밝히지 못해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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