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휘일기

여백[餘白]

3.28

by Benjamin Coffee

[여백]


[명사]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

; 여백을 남기다




도장을 갖고도 거대하고도 육중한 한 시절의 어디에다

도장을 찍어야 할지 모르는 나는

온통 여백뿐인 청춘이었다


여백이 무겁더라도 휘청거리지 말고

여백이라도 붙들고 믿고 수고할 것을


여백에라도 도장을 찍어놓을 것을


- 이병률, <미신> 중




나에 대한 모든 것이 '오점'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전전긍긍에만 몰두해 있을 때.


나를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 것들이 도대체 뭔지 찾다찾다 포기할 때쯤 아, 그건 나를 채운 것이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구나, 그러니까 나는 '되어가는' 중이 아니라 '되지 못한' 것이었구나, 는 사실을 통각할 때.


여백과 공백은 전혀 다른 개념이란 걸 잘 알지만, 나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그 둘이 같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상처[傷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