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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Jul 20. 2020

백석

또는 김연수

빨갛게 타오르는 노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기행은 어둠 속에서 벨라의 담배가 불꽃을 일으키던 것을 기억했다. 그리고 기행은 지난가을, 옥심과 함께 바라보던 불을 떠올렸다. 얼마 전까지 누군가 살았던 집으로 번지던 불, 문짝을 태우고 기둥을 태우고 지붕을 태우던 불. 그때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세계가 그렇게 불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바이러스와 병원균이 불타겠지만, 곧 그 불은 종파주의와 낡은 사상으로 옮겨붙을 것이고, 종내에는 서너 줄의 시구를 얻기 위해 공들여 문장을 고치는 시인이, 맥고모자를 쓰고 맥주를 마시고 짠물 냄새 나는 바닷가를 홀로 걸어가도 좋을 밤이, 높은 시름이 있고 높은 슬픔이 있는 외로운 사람을 위한 마음이 불타오를 것이다. 그렇게 한번 불타고 나면, 불타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그렇게 1958년 12월의 해가 저물었다.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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