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5

12.9

by Benjamin Coffee

반복을 싫어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변화를 두려워한다. 못지 않게? 그보단 반복되는 상황의 따분함보다 변화에 대한 불안이 늘 앞선다고 하는 게 솔직하겠다.


너는 얼마 전에 집 1층 카페에서 반복되는 상황에 대해 썼다. 너는 나름의 변주를 통해 그 지겨움에 대처하고 있다고 적으며 짐짓 너를 이해한 척 했다. 그래서 내가 홍상수의 영화적 화법에 호응하는 것인가, 하는 쓸데없는 상념도 하고. 늘 그렇듯.


근데 오늘 카페에 내려오면서 문득 너는 이런 생각을 한다.


가 어떤 상황에 대해 이리저리 다양한 변화를 꾀하는 건 맞지. 근데 그건 늘 스스로 정한 어떤 틀 안에서만이야.


예를 들면 너는 1층 카페에서 어떻게 하면 블랙그라운드 원두로 만든 레귤러 사이즈의 아메리카노를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느냐만 고민한다. 순서를 바꾸고 쉼표를 마침표로, 또는 마침표를 쉼표로 바꾼다.


너는 단 한 번도(사실 한 번 정도는 있었는데 아메리카노를 라떼로 바꾼 적이 있다.) 이 세 가지 '내용'을 건드릴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특히 원두는 늘 블랙그라운드다. 별 이유도 없는데. 다른 종류의 이름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여기서도 너의 특성이 잘 묻어난다. 형식에 집착하고 내용은 아랑곳 않는. 단어보다는 그 단어가 쓰이는 방식에 대해,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표현하는 형태에 대해. 누군가 '껍데기는 가라'고 한다면 너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무의식중에는 이런 작용도 있는 것 같다. 늘 반복해서 같은 것을 주문해온 사람이 다른 것을 주문했을 때 종업원이 당황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웬 미친 생각이냐 할 수 있지만 소심이 병인 너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너의 어떤 행위로 인해 상대방이 일말의 영향(변화)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정확히는 두려움.


책임회피적인 너의 고질적 성향 바탕에는 이런 결핍이 있다. 잘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