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6

12.22

by Benjamin Coffee

에두름의 화신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직접적으로 감응하는 너의 감정은 피상적이고 얕다. 속 깊은 감정이 움직일 때는(그러니까 감정이 북받쳐오를 때는) 늘 뭔가 비뚤어진 상태이거나 무언가 다른 대상(일종의 매체라고도 할 수 있겠다)을 한 번 거친 다음에서다.


예를 들면 너는 어떤 슬픈 노래를 들을 때나 그 노래를 부르는 가수를 볼 때 대체로 무덤덤하다. 그러다가도 불현듯 주체 못 할 감정에 빠지기도 하는데, 그 노래를 듣거나 가수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슬픈 표정(눈물까지 흘리면 금상첨화)을 볼 때다.


너는 스스로를 시적인 인간이라고 내세우지만 사실은 시에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서너 줄 읽다가는 지루해 늘 책을 접는다. 지금까지 너의 뇌리에 남아있는 시구절들은 거의 모두 다른 텍스트에서 언급됐거나 누군가의 감상을 통해 접한 것들이다.


술 기운이 올라왔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때 너의 사고는 흐려지고 왜곡되지만 또 그 순간만큼 너의 감정에 깊이 빠져드는 시간이 없다. 오롯이 슬퍼하거나 온전히 기뻐하고.


근데 이건 너만의 얘기라기보단 감정, 특히 욕망 일반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라캉도 그랬잖나. 타자로서 욕망한다고.


물론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감정들도 있다. 특히 싫다, 는 기분이 그렇다. 이를테면 당직을 설 때라든지.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