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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jamin Coffee Sep 11. 2019

New York 5

13.8

드디어 타임스퀘어 입성. 브로드웨이와 5번가가 만나는 지점을 찾아갔는데, 그전부터 거리는 화려하고 거대한 간판과 스크린들로 즐비했다. 물론 사람도 득실득실. 이때부터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웬만한 비에는 우산을 펴지 않던 미국인들도 여기 타임스퀘어에 도착할 때 즈음 뿌리는 소나기성 빗줄기를 가만히 맞고만 있진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카페베네에 들려 잠시 숨을 골랐다. 비를 대피하려는 듯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있었다.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와이파이만 잠시 했다. 뉴욕 카페베네의 모델은 한예슬이었다. 미국에서도 통하려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꽤나 사람이 많았다.


어떤 아저씨가 내게 몇 시냐고 물었다. 뉴욕에 와서 최초로 외국인이 먼저 내게 말을 건넸다. 아마 내가 차고 잇던 손목시계를 본 모양인데 난처하게도 한국시간으로 맞춰져 있었다. 기다리라고 한 뒤 (그땐 약간 당황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웨이러세컨'이라 했는지 '잠시만요'라고 했는지 긴가민가하다) 폰을 꺼내 시간을 알려줬다. 고맙다, 더라. 유어웰컴, 해주니 어느새 비가 그쳐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날 타임스퀘어에서 날씨는 온종일 이따위였어서 건물을 수 없이 들락날락거렸다. 중간에 엠앤엠(m&m) 월드도 들렸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고 볼 것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기념품 좀 살라고 했더니만  도저히 살 게 없었다. L은 초록색 티셔츠를 살까 하다 사이즈가 없어서 못 샀다. 다시 거리로 나왔다.


타임스퀘어의 진풍경은 저녁에나 볼 수 있을 듯. 현란한 네온사인들을 보기에는 사위가 너무 밝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현란함과 압도적으로 커다란 간판들에 놀랄 수 밖엔 없다.





다음 행선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ESB)으로 가는 길에 리바이스 가게가 보였다. 하도 미국에서는 싸다느니, 중저가 브랜드라느니 해서 꼭 한 벌 장만해야겠거니 하던 차였다.  L도 마침 옷 사려 했다고 해서 들어갔다. 내부는 여느 한국 상점과 다를 거 없다. 서양 기준 체형이라 내 사이즈에 맞는 옷이 있을까 했는데 웬일로 딱 내 사이즈에 맞는 바지가 있었다. 물론 젤 짧은 거 긴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가격대도 정말 70달러 내외여서 싼 편이었다. 몇 벌 입어보고는 그냥 사버렸다. 그래도 어차피 사려고 했던 거라 후회하거나 그러진 않는다.


리바이스를 나와 ESB에 가려는데 좀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두리번거리다 막상 눈에 띈 ESB에 L은 "저게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나. 왜 이렇게 작냐"며 킹콩 타령을 해댔다. 근데 정말 뉴욕의 랜드마크라고 하기엔, 물론 다른 거 다 제하고 외관만 봤을 때는 다소 아쉽다.


입구를 찾아 배회하는 중 어떤 흑인이 우리를 보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뭐시기 하며 고함을 쳤다. 유니폼 조끼와 손에 카드 리더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꼭 입장권을 파는 사람 같았다. 얘기를 대충 듣고 있자니 가이드 투어를 해준다는 내용이었다. 30 몇 달러를 불렀다. 입장료보다 훨씬 비싼 값이다. 생각 좀 해보겠다, 면서 뒤돌아갔다. 답답한 L이 관람료가 오른 거 아니냐고 묻는다. 나 없으면 된통 바가지 쓸 것 같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따라가니 입구가 나왔다. 짐 검사와 티켓팅을 한 뒤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갔다. 예상외로 외부 관람이 가능해서(남산 타워를 생각하고 있던 거 같다) 밖으로 나가려는데 아뿔싸, 비바람이 내리치는 게 아닌가. 마침 허리에 둘러매고 있던 바람막이를 입고 나갔다. 뉴욕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ESB is New York'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맨해튼뿐만 아니라 뉴저지, 퀸즈, 브루클린, 브롱스 등 다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날씨가 이 모양이라 시야가 탁 트이진 않았지만.


당초 계획은 ESB에서 야경 관람을 하는 거였다. 사람이 붐빌 걸 염려해 해가 지기 전에 미리 올라가 기다리자는 작전이었다. 그런데 해는 질 기미가 없고 비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점점 사람들 모이고. 이렇게 높은 데서 오랜 기간 있으려니 다소 불안하고. 한국 시간으로 새벽 6시 즈음됐을 시간이라 깜빡 앉으면 잠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피곤했기에 야경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집으로 돌아가자, 고 합의를 봤다.


이렇게 욕 야경은 저 멀리.





집 가는 도중 여러 관광지들을 지나쳤지만, 워낙 피로하던 터라 슉슉 지나쳤다. 그래도 플랫아이언은 들렀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역을 찾는데도 계속 헤맸다. 망할 나침반이 오락가락했다. 기준이 사라진 듯. 우왕좌왕. 다른 기준점을 찾아봤는데(예컨대 차량 통행 방향 따위) 그마저도 한결같지 않다. 어쩔 수 없이 그때그때 위치를 보고 가늠해야 할 듯. 겨우 지하철을 찾아내려 갔는데, 지하철이 오기 전 그 사이에 잠깐 졸았다. 순간 섬뜩해 정신을 차렸다. 하마터면 신세에도 없는 지하철 노숙을 할 뻔했다.


지하철에서 L이 마치 밤 새 술 마시고 다음 날 첫차 타고 집에 가는 기분, 이라고 말할 때 격한 동의를 보이고 싶었지만, 그것마저 온 영혼을 짓누르는 듯 한 피로 앞에서 그만두었다.


이날은 8시에 바로 곯아떨어졌다. 집에 오자마자. 씻기도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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