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어휘일기

생[生]

3.8

by Benjamin Coffee

[명사]

1. =삶(사는 일).

;에 대한 회의


2. 불교 십이 연기의 하나. 세상에 태어나는 일을 이른다.


3. [북한어] (부사적으로 쓰여) 전혀 또는 생판.

; 알지도 못하는 사람




아버지 후배였던 혼혈 아저씨가 영사주임으로 있던 극장. 세일극장에 가면 멋진 이 있었다. 어른들은 오징어에 소주를 마시고 난 영사실 책상에 걸터앉아 영화를 봤다. 은하철도처럼 환하게 어둠을 가르고 달려가 내 에 꽂혔던 필름. 난 두 평짜리 영사실에서 한 줄기 계시를 받고 있었다. 그런 날이면 빨간 방울 모자를 쓴 여주인공과 계단이 예쁜 도서관엘 가기도 했고, 윈체스터 장총에 애팔루사를 타고 황야를 달리기도 했다.


필름 한 칸 한 칸에 담겨 있던 빗살무늬토기의 기억. 토기를 뒤집으면 쏟아지던 눈물들. 어느 날은 영웅이 되고 싶었고, 어느 날은 자멸하고 싶게 했던 날들. 문틈으로 들어온 빛이 세상을 빗살무늬처럼 가늘게 찢어놓은 곳. 낡은 자전거 바퀴 같은 영사기가 힘겹게 세월을 돌리던 곳.


난 수유리 세일 극장에서 을 포기했다.


- 허연, <세일 극장>




느즈막이 멋진 을 보았고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꽂혀있었지만, 그렇다고 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나는 비겁이라고 표현하지만, 누군가는 현실이라고도 한다.


그 무엇이든 내가 꿈꾸었던 모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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