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을 행동 개입에 활용하는 방법
사람들이 왜 어떤 선택을 하고, 왜 어떤 행동을 자제하는지를 설명하려면 그들의 ‘선호’나 ‘합리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세계에서 우리는 주어진 선택지의 구조와 맥락,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번 강의에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적 규범을 이용한 행동 개입, 즉 넛지(nudge)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다. 넛지는 사람들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바람직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다. 이 개입이 성공하려면,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 이상으로 사람들의 기대와 심리를 정확히 읽어야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영국 세무당국(HMRC)의 실험이다. 세금을 미납한 사람들에게 납부를 독촉할 때, 단순한 안내 문구보다 “당신의 지역 내 90%의 사람들이 이미 세금을 냈습니다”라는 문장을 포함시키면 납부율이 크게 올라갔다. 이 사례는 ‘대다수는 이미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는 사회적 규범의 힘이 개인의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이 메시지가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니라, ‘경험적 기대’를 구체적인 데이터로 전달한 점이다. 사람들은 “나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보다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넛지 설계에서 이런 사회적 규범은 특히 ‘무관심하거나 우선순위가 낮은’ 행동을 유도할 때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연금 가입이나 기부, 장기기증 등록과 같은 영역에서는 사람들의 의도는 긍정적이지만,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규범적 메시지를 통해 행동을 ‘기본값(default)’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이 유효하다. 한 연구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기부를 마쳤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이메일을 보냈을 때, 기부율이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규범 기반 넛지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메시지를 받는 사람이 그 정보를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느끼거나, 오히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안 한다면 나도 안 해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이를 부정적 사회규범 메시지의 위험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국립공원에서 “많은 방문객들이 돌을 가져가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라고 알렸더니,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돌을 가져갔다는 사례가 있다. 메시지를 설계할 때는 ‘지금 잘못된 행동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강의에서는 행동 개입이 규범 자체를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다뤘다. 한 번의 메시지나 개입으로는 규범 자체를 바꾸기 어렵지만, 반복적이고 일관된 신호가 누적될 경우, 장기적으로 사회적 기대를 변화시킬 수 있다. 앞서 다뤘던 흡연, 재활용, 장기기증 등에서 나타났듯이, 일정 수준 이상의 행동 변화가 쌓이면 그 변화가 새로운 규범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즉, 넛지는 규범을 활용하는 동시에 규범을 재구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번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점은, 넛지가 단지 사람들을 “속여서” 행동을 바꾸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행동을 이끄는 숨은 기대와 규범을 존중하면서, 그 기대가 작동할 수 있는 맥락을 정교하게 설계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준다. 행동과학은 이처럼 사람들의 복잡한 심리와 사회적 상호작용을 정밀하게 읽어내는 도구이고, 넛지는 그 통찰을 실제 정책과 조직 운영에 연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