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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phael Sep 12. 2020

취미마저 강요되는 사회


아마존에는 사내 임직원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인트라넷이 있는데 그 구성이 흥미롭습니다. 우선 본인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나오며, 그 사진은 본인이 직접 올리는 사진으로 대체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아마존에 입사한 날짜와 근속 일수, 그동안 근무했던 부서와 함께 일했던 매니저의 이력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그 외의 구성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면, 개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커뮤니티를 개설하거나 가입할 수 있고, 그렇게 가입한 커뮤니티의 목록 역시 확인할 수가 있어서 임직원의 정보를 보는 것이 마치 페이스북의 프로필을 살피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즉, 본인의 관심분야, 예컨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요가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커뮤니티, 혹은 회계사 자격증 커뮤니티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 심지어 학교 동문 모임 커뮤니티도 있어서 임직원의 학력을 스스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동문 커뮤니티의 경우 가입 요청을 보내면 요청에 대해 별도의 확인 과정을 거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그 프로필 화면에서 필자가 맘에 들었던 부분은 본인이 직접 “업무 외에 자신을 표현하세요”라는 자기소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본인이 직접 자기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인데, 다양한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다 보니 참으로 다양한 문화가 있구나라는 게 새삼 느껴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저는 제 파트너와 각 4살, 6살 된 파트너의 딸, 아들, 그리고 5살 된 제 딸과 다 같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말을 아이들과 함께 보내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유럽의 경우 혼인상태에 있어서 결혼 관계가 아닌 Civil Partnership이라는 관계가 있습니다. 약혼 수준의 단계에 있을 때 하는 경우도 있고,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파트너 관계로 계속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혹은 동거를 하며 몇 년 살다가 파트너십 신청하는 경우도 있고, 그 경우는 개인마다 다양합니다. 일반적으로, 주변의 친구, 동료들을 보자면 연애를 하면서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관계를 가지면 자연스럽게 동거를 시작하곤 합니다. 해당 사실을 모두에게 공유하고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의아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동거를 하지 않고 결혼을 바로 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것 같습니다.



프로필 자기소개의 또 다른 예들을 보자면 이렇습니다.

“저는 3D프린터로 직접 디자인하고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나, 3D 프린터를 저의 두 번째 취미인 보드게임과 드론(Drone)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할 때는 더욱 신이 납니다.”

“안녕! 아마존에서 너희들과 함께 일하게 되어서 기뻐! 최근에 나는 요리 실력을 늘리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내 둘째 딸한테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기회가 된다면 너희들도 맛보게 해주고 싶어!”

“안녕하세요! 회사 밖에서는 아마 저를 뜨거운 욕조에서 주로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온천이면 더 좋겠고요). 울창한 숲길을 걷는 하이킹을 자주 하고, 스윙부터 삼바까지 춤추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사람과 직접 만나서 든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든 누군가의 경험을 듣는 걸 좋아해요. 언젠가는 트리 하우스를 지어서 산속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살고 싶어요!”

이처럼 각 개인마다 관심사와 인생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공통적인 부분은 개인 시간을 정말 오롯이 ‘개인’을 위해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본인이 관심 있어 하고 열정 있는 분야에 시간을 투자하고 그 과정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낍니다.



이렇듯 본인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공유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문득 얼마 전 필자의 한국에 있는 동료들과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물론 지금은 그 분위기와 트렌드가 많이 변하고 있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하더라도 필자 나이대의 주된 이야기 관심사는 골프였습니다. 예컨대, 기왕 할 거면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팀장이 자꾸 시작하라고 압력을 주는 데 집에서 가족들 눈치가 보여서 시작하기가 힘들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경제적으로 부담이 너무 된다, 이제 막 둘째가 태어났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가 힘들다 등의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능동적인 즐거움이 아닌 해야만 하는 숙제를 언제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와 같은 수동적인 측면이 더 강했습니다.


대부분 골프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는 팀장이나 동료의 권유, 주변에서 다들 하는 데 나만 안 하면 그 관계에서 도태되는 것 같은 불안감, 다들 재밌다니까 나도 재밌겠지 하는 아무런 고민 없는 결정 등 회사 내에서의 필요성과 연관된 이유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미 골프를 치고 있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한 명이라도 더 참여할 멤버가 늘어나는 것이 좋으니 참여를 권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골프는 유럽에서는 매우 비인기 취미생활입니다. 주변에서 골프를 하는 동료, 친구를 찾기도 힘들뿐더러 주말에 같이 하자고 제안하기도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여가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기도 할뿐더러 주말의 취미 활동마저도 회사와 연관된, 혹은 회사 생활을 위해 결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사 첫날, 매니저에게 근무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 유럽의 워라밸 인식을 잘 알고 있던 터라, 한국식 근무 형태로 매니저를 괴롭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매니저의 근무시간을 알아서 불편하지 않게 보고를 하고 싶다고 하니, 매니저는 “난 보통 평일 9~6시가 내 근무시간이고, 평일 6시 이후와 주말에는 연락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혹여 내가 메일을 보내더라도 그건 네가 당장 메일을 확인해서 답장을 달라는 의도도 아니고, 네가 바로 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네가 답장을 보내더라도 난 확인하지 않을 테니 그럴 필요 없다"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매니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원들은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금요일 오후 3시 이후에는 가급적 미팅도 잘 잡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말에 인접 국가인 집으로 돌아가는 직원들도 많을뿐더러, 주말을 친구나 가족과 보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유치원 때는 미술학원, 태권도, 초등학교 때는 수학학원, 영어학원을 다니고, 중학교 때는 종합반 학원을 다니고, 고등학교 입시 과외를 받고, 대학교 입학 이후에는 취업 준비를 위해 자격증, 어학점수 등의 스펙을 쌓고, 마침 내 회사를 입사한 이후에는 업무의 연장으로 혹은 보다 빠른 승진을 위해서 골프를 배우는 일련의 과정이 마치 이미 짜인 대한민국의 “Extra Activity”의 커리큘럼 표본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202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골프라는 운동이 직장인들 사이에서 대유행을 해서 모든 직장인들이 주말마다 다시 모여서 골프를 했었대, 정말 이상한 일이지?”라면서 지금 우리의 시대를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작 본인이 좋아하고, 열정을 가질 분야가 무엇인지도 채 모르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조금은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원글: https://blog.naver.com/kimstar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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