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마음이 아플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미군부대 근처에서 태어났다. 당시 버스 터미널 앞에 위치했던 어머니 가게에서 바지란히 기어다니던 나를 두고 몇몇 사람들이 혹시 저 아이는 혼혈아냐고 물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날때부터 눈이 움푹 패여서 쌍꺼풀이 진하긴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뭐 그게 그렇게 다르게 생겼다고 굳이 혼혈이냐는 소리까지 들었을까 싶긴하지만.
그 어린 시절에는 유독 친척집에 놀러가는 게 좋았다. 나보다 한층 웃자란 손윗 사촌들에게 매달려 노는 것도 재밌었고 나만 보면 예쁘다 귀엽다 해주시는 어른들도 좋았다. 해가 지날수록 친척 어른들은 여자아이들에게는 빈말일지언정 외모 칭찬을 많이 해주었는데, 친언니나 다른 여자 친척 형제들에게는 그저 예쁘다거나 잘 자랐다고 하시는 분들이 유독 나에게만은 어느 나라 사람같이 생겼다며 나를 가운데에 두고 세계지도를 펼치듯 나라를 찍으시는 것이었다. 얘는 어느 나라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냐며. 나는 가 본 적도 없는 나라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집으로 돌아와서는 그 나라가 등장하는 세계 동화 전집을 꺼내들고 입에 잘 배지 않는 외국 이름을 혀에 올려놓고 다시금 발음해보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그렇게 비행기 타는 걸 좋아했고, 20살이 되자마자 있는 돈 없는 돈 부모 돈을 털어 각종 이유를 대고 바지런히 공항을 나들었다.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20살이 되기 전까지 혼자 외국에 나가본 적도 없다고 하면 또 놀라곤 한다.
파악 가능한 조상 중에 바다 건너 온 분은 없고, 태어나서 일평생 한국에 기반을 두고 살아왔다. 유학은 커녕 영어는 수능을 보기 위해 공부한 게 전부다. 이렇게 토종 중에 토종으로 태어나고 자란데다 부모님이 출장같은 걸 다니는 직업도 아니 가지시고, 남들 다 있다는 미국 이모도 없는 팔자인데, 어찌된 일인지 아니면 생긴대로 사는 것인지 성인이 된 후로는 비행기 탈 일이 많았고, 국적기를 타면 영어로 서비스를 받거나 공항에서는 한국 여권이 맞냐며 재차 묻지를 않나, 서울 시내에서 물건을 사면 택스 리펀드를 하겠냐는 질문도 받는다. 한국인이란 게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회사 생활에서도, 외국 관련 업무가 많아서 그런지 옮기는 직장마다 나를 유학생 출신이거나 어릴 때 외국에서 살다온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두어번을 얘기할 때까지도 까묵한다.
그렇다한들, 김치가 3일이 지나도록 입에 들어가지 않으면 방바닥을 구르며 괴로워하고, 남들 다 즐거워한다는 외국 유랑은 일주일만 지나면 심드렁해져서는 방에 드러눕는다. 외국땅을 밟고도 관광이란 걸 아주 귀찮아하여 그 아름답다는 파리 땅을 대여섯번은 밟았음에도 이제껏 에펠탑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보지 못하였다. 보름을 두고 비행기를 타는 주제에 떡볶이는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먹어줘야 하니, 집 바로 앞에 위치한 떡볶이집 주인 아저씨는 떡진 머리에 짐가방 들고 나타나서는 떡볶이 1인분을 포장해가는 내 꼬라지를 한 두번 보신 게 아니다.
이 무슨 모순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다. 외국에 나가고 싶어 안달난 아이였지만 그래봤자 한국에서 평생 살아왔던 사람임은 숨길 수가 없다. 인천공항에 들어서서 일단 한글이 보이면 반갑고 떡볶이집이 바로 앞에 있는 한국 집이 좋고 엄마 아빠와는 번역기로 돌려도 해석이 안 될 엉망진창 구어체 한국어로 아무말이나 한다.
몇 개월 후 태어날 나의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언어가 각기 다른 나라의 여권을 여러 개 가지게 되며, 돌이 미처 되기 전에 여러 나라의 국경을 드나들게 된다. 아직 그 어미와 아비는 어느 나라에서 교육을 시킬 것인지조차 결정하지 못했다. 내 아이는 부모와 나누는 말과 조모조부와 나누는 말이 다를 것이며 친구와 나누는 말이 또 다를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만이 문제는 아니게 된다. 내가 겪지 못한 삶이 내 아이에게 주어질 것이고 내가 안락하게 느끼고 편안하게 지냈던 감각이 아이에게는 또 다를 것이다. 내가 공항버스에서 내려서 집 앞의 떡볶이집을 보며 느끼는 감정같은 것은 내 아이로선 모르는 영역이 될지도 모르고, 내 아이가 나에게 화를 낼 때 내게 능숙하지 않은 언어로 따질지도 모른다.
많은 것들이, 내가 절대 알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도 아닐 것이다. 바램이 있다면 자신이 어디 출신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보다는 내가 겪었던만큼 그저 재밌는 에피소드로 남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고 내가 김치와 떡볶이에 집착하는 것보다는 아무 음식이나 잘 먹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보다 더 재밌게 살았으면 좋겠다.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에서 자랐건간에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이 장점이 되길 바란다.
그저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할 때 마음이 아플 일만 없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