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하다고 느끼고 있음을 알아차림
#1. 자기수용
대학생인 나는 학기 중에 식사를 최소화하는 편이다. 아침 식사는, 스물셋 인생 평생을 그래왔듯이 집밥을 먹는다. 점심 식사는 오후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 견과류로 가볍게 해결하고, 저녁 식사는 저녁 루틴을 위해서 양을 적게 하거나 거른다. 음식을 멀리하고 속을 비우면 당면한 과제에의 집중도가 확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학기가 진행되는 3개월 동안 내 머리속은 공부하는 내용, 읽고 있는 책, 해야 할 과제로 가득하다. 살짝 예민하고 기민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그동안 비축해놓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식곤증으로 불만스러울 일도 없고 맛있는 음식에 대한 탐욕으로 게을러질 일도 없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나를 알뜰살뜰히 소진시키고 종강을 맞이한다.
이제 내 안의 밧줄을 툭 놓는다. 내일에 대한 부담이 없다. 나에게 보상을 주는 것처럼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퍼질대로 퍼진다. 스무살 무렵엔 이런 상태가 너무 두려웠다. 내가 변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이것은 파동처럼 반복되는 인생의 사이클인 것이다. 이제는 내 몸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이러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아주 드물어졌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곧 자기절제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추가하고 싶다. 자기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자기 수용을 적절히 할 줄 아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져야 한다. 강한 힘으로 밀어 붙이는 것만큼이나 오래 가는 것도 중요하니 말이다.
#2. 추락욕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보면 '추락욕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기본값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욕구, 어떤 궤도에 오르려고 하는 나를 다시 망치고 싶어 하는 욕구이다. 나의 경우는 식단을 조절하는 것에서 '추락욕구'를 느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단 음식을 좋아했다. 앉은 자리에서 귤 한 박스를 다 까먹는가 하면, 마이쮸 한 통을 순식간에 까먹는 것이 일상이었다. 스무살 무렵 내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더 달달한 음식을 가까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의식적으로 식단을 조절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이 되면 '추락욕구'가 발동한다. 의식적으로 에너지를 들여야 하는 건강한 식단을 유지하다가도, 에너지가 필요 없을 만큼 고착된 과거의 식습관으로 돌아간다. 그럴 때마다 음식은 나에게 에너지원이 아니라 쾌락의 수단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도 식탁을 떠나지 않고 다른 먹을거리를 찾는다. 위가 이미 가득 찬 것을 느끼면서도 미각이 주는 즐거움만을 느끼기 위해서 음식을 또 먹는다. 꾸역꾸역 먹는다. 나에게 해로운 행동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멈추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다.
예전에는 '내가 이렇게 망가지는 걸까' 라고 생각했다. 어제처럼 식습관을 지키지 못한 오늘에 집착했다. 가장 치명적이었던 것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를 살았던 것인데, 많이 먹은 다음날 나는 전날을 청산하기 위해서 살았다.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는 식으로 말이다.
최근의 나는 내가 뭔가를 하려고 하기보단 우선 느껴지는 감각에 더 주의를 기울인다. 배가 불러서 위가 아픈 감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계속 입에 넣고 싶은 기분, 권태로움, 얼굴에 살이 찌는 게 보이는 것에서 느껴지는 불쾌감.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행복함, 다음에 뭘 먹을까 고민할 때의 설레임.
#3. 알아차림
나는 여전히 추락욕구를 느낀다. 식단을 조절하다가 한번씩 미끄러지고 무너진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불안하지 않다. 오히려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는 영원한 상태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몸의 흐름에 거역하지 않고 순응하면서 지금의 상태를 온전히 느끼는 것에 충실한다. 많이 안 먹히는 때가 있으면 많이 먹히는 때가 있는 법이다. 많이 먹을 때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고, 많이 먹지 않을 때의 감각을 온전히 느끼자.
식단을 조절할 때의 나도 행복하다. '나'를 정말 사랑하는 느낌, 건강해지는 느낌, 마음도 산뜻해지는 느낌이 꽤나 좋다. 하지만 음식을 마음껏 먹을 때의 나 역시 행복하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미소를 짓는다. 맛있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낀다.
자기수용을 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상태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음식이 마구 먹고 싶은 나를 수용하고, 음식을 꾸역꾸역 먹는 나를 수용하자. 그럴 수도 있는 거다. 그냥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고 그 다음 내가 무엇이 하고 싶어지는지에 주목하자. 영원한 것은 없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다. 지금 양의 상태라면 다음은 음의 상태일 것이다.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주자. '안 되는' 것은 없다. 내가 알아차리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