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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l 05. 2021

2인분만 먹으면 안되겠니

요리해 주는 건 고마운데


H(남편) 나보다 요리 감각이 뛰어나다. 꿀조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 뿐 아니라 황금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다가도 어딘가 부족한 맛을 채울 소스를 예리하게 찾아낸다. 어쩐지 깊은 맛이 나는 닭칼국수는 치킨스톡이 비결이었고, 브랜드 카레 음식점 못지 않은 카레에는 버터를 한 숟갈 넣었으며,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무생채에는 시판 멜젓 한 스푼이 들어갔다.

 


이 또한 취향이니라


취향존중 시대다.

특히나 결혼생활에 있어서는 서로만 바라보고 살 수 없기에 취미나 취향으로 만드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며 함께와 따로 시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한다. (그런 이유로 집현전도 탄생한 것이다.)



탄소년단을 덕질하듯 그는 백종원을 덕질한다. 5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백종원 유튜브 <백종원의 요리비책>  '팀원' (구독자 애칭) 그는 잠들기 전까지 유튜브를 시청하며 알같은 팁을 전수받는다. 

어느 날, 더본 코리아 쇼핑몰에서 내가 선물해 준 N페이 2만원으로 양념장, 된장 그리고 햄을 구입했다. 택배가 온 날에는 어찌나 즐거워라 하던지 택배상자가 오자마자 냉큼 뜯어서 볶음고추장을 새끼 손가락으로 콕 찍어 맛 본다.



불어나는 내 살은 어쩔건데

남편은 요리하는 섹시한 남... 까지는 아니고 '요리해줘서 고마운 남편'이다. 요고남은 늘 무심한듯 대충 계량하지만 간이 센 듯 하면서도 맛깔스러운 음식을 완성한다. 문제는 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수를 해 먹을 때다.


면을 얼만큼 넣어야 2인분이 되는지 몰라서 대충 500원 동전 크기만큼 투하한다. 요리에 대한 자신감일까. 손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 찾아보면 될 것을 대충 이정도면 맞겠거니 해 버린다. 막상 삶아 보면 최소 3인분 이상 나오는 국수 양에 기겁을 하고야 만다.


순창에 사고모가 직접 담아 보내준 고추장은 태양 빛을 듬뿍 받은 고추로 만들어서 시판 고추장보다 확실히 맵다. 시뻘건 고추장을 한 술 푹 퍼내고 다진 마늘도 넉넉히 넣어 불닭 볶음면 양념장 못지 않게 매운 양념장을 탄생시킨다. 4명은 먹어도 될 넉넉한 양의 칼국수면과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새빨간 양념장의 조합으로 투머치 칼국수를 완성한다.




먹는 것은 순식간 이어도 한 그릇을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정성을 쏟았는지 알기에 한 젓가락이라도 더 후루룩 짭짭 해줘야 하는데 불어나는 내 살들은 어쩔거냐는 말인가. 내적갈등이 상당하다.

'보랏빛 가스불 앞에서 땀 뻘뻘 흘리며 멸치 육수를 만든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폭풍흡입 해야 하는데....'

'1키로 찌는 건 보장된 맛인데 이걸 한 젓가락 더 먹어 말아?'


데면데면한 옆집 부부를 초대하고픈 심정으로 칼국수를 소분해 먹는다. 꼭 1인분만 먹겠다는 마음으로... 그러나 환경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으로 부부는 기어이 칼국수를 전멸시킨다.





영양가 있으면서도 간소하게 먹고 싶은데 남편의 요리는 정 반대 향한다. 그 덕분에 결혼 하고 5키로가 쪘다. 계절이 바뀌면서 여름옷들을 꺼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잘 입었던 파란색 H라인 스커트 입어봤다. 전에는 은근히 드러나던 배라인이 이제는 토실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배에 힘줘 보지만 어림없다. 마음 아프지만 좋은 주인에게 가기를 바라며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다.



돈 쓰고 배 나오는 순환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 원인을 정확히 알고 있으며 다시 돌아갈 방법 역시 알고 있다. 요리에 진심인 남편에게 고맙지만 지금까지 산 날보다 앞으로 함께 살아가야 할 날이 많으므로 우리 조금만 소식하면 안 될까...?건강과 몸매를 지키며 9988 234* 무병장수 하기를 꿈꾼다.


'오늘 저녁은 내가 할게. 묵은지 닭볶음탕 콜?'



* 9988 234 : 99세까지 88하게 2일만 아프고 3일만에 죽(死,4)는다.


내일은 위즈덤 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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