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35
날이 저물 시간이 아님에도 하늘은 잿빛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습니다.
아마 눈이라도 오려나 봅니다.
원내가 어둑해서 인지 어르신들 방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습니다.
5호 방 목련꽃님이 방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어르신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그냥 그래요"
목련꽃님은 철쭉꽃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철쭉꽃님은 창가 쪽 가로로 누워계시는 와상 어르신입니다.
목련꽃님 침상은 철쭉꽃님 발끝 쪽 세로로 놓여 있습니다.
목련꽃님은 심한 침매를 앓고 계시는데 밤이면 배회를 많이 하십니다.
특히 철쭉꽃님 옆 창문을 자주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게 합니다.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지 않으면 한겨울엔 감기 걸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 창문을 열지 못하시게 하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습니다.
하지만 치매를 앓고 계셔도 창문 여는 방법을 쉽게 알아내십니다.
그렇다고 환기를 자주 시켜야 하는 요양원에서는 창문을 못 열게 고정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유난히 표정까지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대고 계십니다.
급기야 오늘낮에 목련꽃님과 철쭉꽃님 자리를 바꾸어 드렸다고 합니다
오늘 야간근무인 저는 다른 날보다 일찍 출근하여 주간근무자들과 수다 떨고 거실에 계시는 어르신들과 노래 부르며 시간을 보내다 근무시간이 되어 라운딩 하는 와 중에 목련꽃님을 보았습니다.
제가 5호 방에 가서 목련꽃님을 보았을 땐 철쭉꽃님이 창가 쪽에 누워계셨고 목련꽃님은 서성이고 계셨습니다.
인계시간에 두 어르신 자리 바꿔 드렸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상하다 싶어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우리들끼리 하는 말 중에 치매 환자는 100m를 10초 안에 뛸 수 있고 소 한 마리를 거뜬히 들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잠시잠깐 사이에 사건 사고가 발생할 수 있으니 주의하란 말입니다.
잠시 후 원장님께 전화 왔습니다.
cctv로 확인해 보니 목련꽃님이 철쭉꽃님을 번쩍 안아 원래 침상으로 옮겨 놓으셨다고 합니다.
자칫하다 목련꽃님이 철쭉꽃님 옮기시다 놓치기라도 하셨으면 정말 아찔한 사건입니다.
우리끼리 했던 말이 장난이 아니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