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시선으로 엄마 바라보기

엄마에 대한 단상 1

by 벌판에 서서

사람은 자기 보고 싶은 대로 본다. 자기 자신은 그렇게 왜곡되게 보는 줄 모른다.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그것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한다.

난 상당히 왜곡된 시선으로 나의 부모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렸을 때 겪었던 부모와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그것이 나를 사로잡는다. 기억들은 나의 고집스런 생각과 편협한 시각으로 본 것들일 것이다. 내가 겪은 지난 시간들(나의 성장기)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나에게 기억된 부분은 그 시절 전부에 비해 지극히 작은 한 단편일 것이다. 기억하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삶의 아주 조그만 단편이다. 그 아주 조그만 단편적인 기억에서 얻어진 것으로 그때 상황을 판단하고 거기에 나의 상상력을 더하면서 내 편견을 확장해왔을 것이다.


누구나 그럴 것이고 당연히 그런 기억과 편견의 절차를 밟아 살게 되겠지만 어렸을 적 겪은 그 단편적 경험으로 내린 판단을 바꾸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그 단편들 몇 개가 조합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단편이 쌓여 간다면 그것들에서 온 판단은 거의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단편들의 모음은 다분히 내 첫 판단들에서 취사 선택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당시 내 시야(어린아이의 좁은 시야)에서 본 주변 상황이 그런 것일 뿐인데 그것으로 전체를 파악했다고 판단하게 되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판단이 그렇게 왜곡되었고 내 시각으로 비뚤어진 것이 나의 기억에 저장되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수십 년간 지속적이지 않다. 그러나 평생을 같은 생활권에서 같이 사는 식구들에 대한 왜곡은 꽤 오랫동안 쌓여 온 것이고, 특히 부모에 대한 것은 더더욱 그러하다. 부모에 대해서 나의 시각으로 내려진 판단이 바뀌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이 바뀌려면 그만큼의 긴 시간 동안의 나를 깨는 고통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 고통의 조각들이 나를 쳐, 반복적으로 강타해 왔을 때 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나에게 새겨진(내 스스로 새긴 것일 테지만) 부모상이란 내 몸의 일부처럼 내 정신의 일부가 되어 평생을 함께 살아가게 되니만치 나의 왜곡된 시선이 지독히도 나를 공격하고 괴롭히고 불행하게 한다.

나의 다분히 왜곡되었을 부모에 대한 내 판단들과는 별개로 부모가 가지고 있는 삶의 모습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아무리 넓은 시선으로 본다고 해도 그것을 제대로 보기는 어려운 것,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왜곡된 시선을 걷어 내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수련해 간다면, 부모로부터 조금 떨어진 시선으로 계속 보고자 노력하며, 그 시선의 조각들을 모아 간다면 그런 노력의 과정에서 의문이 솟아난다. 나의 왜곡된 시선 속에 그려진 내 부모의 부정적 모습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된다. 단편적 기억 속에 떠오른 내 부모의 이해 안 되는 미성숙하거나 무신경했던 것에 대한 질문이다. ‘그때, 왜? 왜? 왜? 나한테 그러셨지?’라는 원망 섞인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곡된 시선을 걷어 낸다고 해도 그 부정적 질문에서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고 또 더 질문들이 더 강화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원망 섞인 질문을 계속, 계속 던지다 보니 또, 그 가운데에서 나오는 답들을 건지게 된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나의 어린 시절이라는 시간과 좀 떨어져 관찰한 결과로부터 오는 판단들. 그런 부정적 질문에 대해서 ‘그때는 이런 건 아니었을까?’하는 나름대로 부모에 대한 이해를 조금씩 하게 된다.


정말 그로테스크하게 생각했던 괴물 같은 부모의 모습들에 대하여, 한 어린아이의 왜곡된 시선으로 어린 마음에 과장되게 두려워했고, 두려움과 절망을 가지고 그 세상 전체를 해석하고 판단하고 그 판단을 고이 간직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의구심은 부모에 대한 긍정적 모습들을 끌고 와 내 앞에 놓아주었다. 내가 은연중에 봐 왔고 나 자신 흠뻑 그 혜택 속에서 안온하게 성장하였으나 그동안 내 기억 저편에 존재하여 그것이 있다는 것을 전혀 감지도 못한 채 살아왔던 모습들 말이다. 내 부모의 그로테스크한 괴물 같은 모습은 어린 내가 고집스레 보고자 한 것일 뿐이다. 그것으로 판단했던 것을 움켜쥐고 또렷이 기억하며 선명하고도 크게 보고 내가 받아들였었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러한 인식이 있게 되고서는 한동안 부모님의 긍정적 모습들만 간직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부모님이 내 옆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 못내 애절하게 슬펐다. 곧 그런 시간도 끝나고 한편으로 그러한 긍정적인 모습 또한 전부는 아닐 것이라는 추측이 솟아오른다.

‘내 부모님의 실제 모습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천착. 한계를 가진 내 눈과 판단으로는 결코 그 실재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다가가려 하는 몸짓만으로도, 그러한 시도만으로도 그만큼씩 나는 괴물 같은 허상에 사로잡혀 그 괴물에 내 영혼이 튀겨지는 것에서 조금씩이나마 자유롭게 되었다.

나에게 남겨진 부모님의 유산들을 조금씩 발견할 때마다 그것이 내 인생에 주어진 엄청난 값진 보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 자신이 정신적으로 무척 부자가 됨을 느낀다. 그만큼 나는 자신감이 생기고 지금까지 가지지 못한 당당함을 갖춘다. 그것은 부모님이 물려 준 것 중 아주 작디작은 것이지만 내 속에서는 이 세상 어떤 보물보다 값지고 큰 것이다.

내 옆에서 부모님이 묵묵히 살아내신 값진 인생은 나에게 길잡이 같은 존재로 나를 둘러싸고 보호하고 지켜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만큼 난 자신 있고 당당하며 행복하다. 나에게서 그분들의 삶을 발견하고 환한 따뜻한 빛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