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엄마에 대한 두 가지 생각

엄마에 대한 단상 2

by 벌판에 서서

‘엄마’라는 말을 떠올리면 말이 주는 푸근함과 안온함, 그리움, 팔을 벌려 안기는 그런 느낌들이 몰려오고 눈가가 젖으며 마음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는 그런 존재가 떠오른다. 우주의 구원자이며 저 자신은 희생자인 어떤 존재를 생각한다.

또 다른 ‘엄마’에 대한 상은 내가 겪었던 엄마이다. 내 엄마의 무심함에 대한 기억들이 나를 흔들어 댄다. 나 혼자 겪었던, 어둠 속에서 넘어지고 채이며 걸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를 건사하지 못한, 그런 능력을 가지지 못한 엄마를 원망하고 천시하는 마음이 솟는다. 엄마에 대한 화가 솟으면 나는 그것을 몰아내지 못하고 나를 사로잡게 하고 만다.

그러다가 내 어린시절이 그렇게 어둠 속에만 있지 않았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엄마와 얽혀있던 단편적인 내 경험들을 계속 떠올리며 돌려본다. 어떤 것은 너무 상반된 위치에 있다. 여러 가지 경험들은 마치 파편들처럼 이어지지 않고 각자 떠돈다. 꽤 많은 파편들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그 파편들을 이어 붙이면 기괴한 형태가 되어 버리고 그 이어 붙인 것으로는 어떤 것으로도 엄마를 단정할 수 없다. 물론 엄마라는 존재만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라도 수백 수천 가지 면모를 내재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그래도 ‘엄마’라는, 그 중 ‘나의 엄마’에 대한 어떤 판단이나 이해를 하려고 시도하는 이 글에서는 그 파편들의 일부를 이어 단편적으로라도 엄마의 상을 만들어 볼 수밖에 없다.

나의 엄마도 많은 부분 ‘엄마’라는 개념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가지 엄마는 공통의 의미가 존재한다. 그런데, 분명히 그중에서 나의 엄마가 가지는 고유의 개성적인 삶의 모습이 존재하고 난 그것을 선명히 느낀다. 그러나 그것을 ‘이런 것이다.’하고 표현하기에는 무척 어려움이 있다. 선명하기는 하되 그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다. 말로 표현되기에는 어려운 어떤 무형의 것이나 또 그것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엄마에 대한 파편 중 엄마의 모습이 진솔하게 들어있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 파편이 그러할 것이라는 판단은 오로지 나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그 파편에 대한 해석 또한 지극히 나의 시각으로 왜곡될 수 있는 단편적이고 편향된, 자기중심적인 것이다.

실제 있었던 그 기억의 파편이라고 해도 내가 바라는 어머니상과 섞이고 변주될 것이다. 또한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저 우주의 어머니상과도 섞여 변주되고 발전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어머니에 대한 이 글은 나의 어머니 그 자체를 드러내기에는 한없이 편협하고 왜곡된 것일 것이나, 그 아주 일부분조차도 이 세상에 설명하여 내보일 사람은 오직 나 하나뿐이라는 것과 분명히,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표현할 길은 없지만) 내 어머니의 혼을 묘사하고 표현하여 드러내 보여야겠다는 말할 수 없는 충동 속에서(그것이 잘될지는 모르지만) 시작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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