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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타 Oct 04. 2021

도대체 이게 왜 반칙이지?

오프사이드란 무엇인가

우리에겐 너무 어려웠던 오프사이드


“반칙, 반칙!”

“뭐가 반칙이란 말인데?”

“방금 그거 반칙이야. 업사이드!” 

“업사이드?”


동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추억의 탱탱볼을 이용해 2대2로 축구를 하던 어느 날, 갑자기 한 친구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분명히 골키퍼 앞에서 멀쩡하게 발로 공을 찼는데 반칙이란다. 말도 안되는 황당한 논리에 어안이 벙벙해 있던 나머지 친구들에게 뭔가 새로운 지식을 알려주는 것마냥 구구절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요약해 보면 공격수가 슛을 하기 전 골키퍼 앞에서 혼자 공을 잡고 있으면 반칙이라고 한다. 나도 분명 어디선가 주워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그 정도 설명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세상에 그런 규칙이 어딨어?”

“야, 니네들 어제 ‘쥐라기 월드컵’도 못봤냐?”


‘쥐라기 월드컵’이란 90년대 초반 방영된 만화 영화로 ‘축구왕 슛돌이’와 함께 대한민국 어린이들에게 엄청난 축구 열풍을 일으킨 인기 만화였다. 인간과 동물 그리고 공룡들이 함께 콜라보를 이루어 아빠를 용으로 만들어 버린 ‘레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축구를 하는 ‘돌발이’의 이야기를 그린 이 만화 덕분에 학교에서 축구를 할 때마다 많은 어린이들은 ‘돌발이 슛!’을 외치며 힘차게 슛을 날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무튼 나 또한 이 만화를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보았기에 어제 분명히 이와 같은 장면이 나온 것이 기억이 났다. 하지만 정확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나에게는 처음 들어보는, 너무 어려운 규칙이었고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 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화 영화를 보다가 이 장면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나중에 다시보기를 할 수 있었던 시절도 아니었고, 인터넷 검색을 해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냥 모르는 채로 넘어 가버렸다.


어제의 기억을 가만히 되살려 보면 쥐라기 월드컵의 주인공인 돌발이의 회심의 슛을 상대팀이었던 레오는 그저 웃으면서 바라보며 전혀 막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팀의 골망을 흔들었던 돌발이와 친구들은 환호하였으나 잠시 후 심판은 반칙으로 인한 노골을 선언하였다. 심판의 반칙 선언에 모두가 황당해 하며 만화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돌발이의 아버지는 저것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 수 있는 아주 고난이도의 전술이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업사이드라는 거야.”

“그럼 내 앞에 우리 편이 꼭 한 명 더 있을 때 슛을 해야 하는거야?”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지금 생각하면 완전 엉터리 해석이 아닌가? 사실 우리는 당시 쥐라기 월드컵에서 등장한 업사이드에 대하여 제대로 이해 하지는 못했다. 정확한 명칭이 ‘업사이드’가 아니라 ‘오프사이드’ 것부터 당연히 알지 못했으며, 어떤 상황에서 반칙을 선언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분명히 공격수가 골대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는 것은 안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쥐라기 월드컵에서 레오가 사용한 이 ‘오프사이드 전술’은 학교 내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운동장에서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억울하게 애매한 실점을 하는 경우에 그냥 오프사이드라고 소리치며 우기는 현상이 종종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방금 오프사이드, 오프사이드!”

“무슨 소리야! 내 앞에 수비수 하나 있었는데.”

“그 애는 우리 반 아닌데? 그리고 너 아까부터 계속 골대 앞에 혼자 서 있었잖아.”

“그냥 서있는 것도 안되냐?”


우선 오프사이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친구들이 몇 명 되지 않았고 운동장에 있는 골대 2개 사이에는 흙먼지와 함께 우리 공이 어느 것인지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수십 개의 공이 날아 다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아수라장인 운동장에서 정확한 오프사이드 판정을 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렇게 오프사이드로 인한 혼란이 가중되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골대 앞에 혼자 서있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지만 그 논란은 학년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도 매번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막걸리와 딸기, 그리고 설탕


쥐라기 월드컵으로 인하여 오프사이드의 존재를 알게되고부터 1년 후, 오프사이드에 대한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 집에 놀러갔던 어느 날이었다. 딸기 농사를 지으셨던 할아버지의 집에는 언제나 딸기가 가득했고 당시 할아버지께서는 항상 딸기에 설탕을 한가득 찍어 드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단순히 찍어 드시는 수준을 넘어 딸기의 붉은 부분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설탕에 딸기를 거의 담가 드셨다. 그래서 그 설탕에 파묻힌 딸기를 받아먹던 나도 어린 시절 항상 단 음식을 좋아했고 할아버지의 방에는 언제나 설탕 그릇이 놓여 있었다.


“달다~. 딸기 달다~.”


이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할아버지 방에는 딸기와 설탕, 그리고 막걸리가 놓여 있었다. 평소 할아버지 집은 가족들끼리 정답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기애애하게 TV를 보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워낙 무뚝뚝하신 분들이셨기에 아무 말없이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막걸리를, 나는 설탕에 파묻힌 딸기를 먹으며 TV를 보았다. 무심결에 채널을 돌리시던 할아버지의 시선은 대한민국과 일본의 축구 경기에서 멈추었다. 방 안에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목소리, 그리고 심판의 휘슬 소리만 흘러나오던 그때 할아버지께서 아버지에게 물으셨다.


“저것이 와 반칙이고?”

“오프사이드 같은데요?”

“그기 뭐신데?”


물론 나도 저 장면이 왜 오프사이드인지 몰랐다. 당시에는 축구가 대중화되어 있지도 않았고 TV 중계 기술이 발달되기도 전이었기에 지금처럼 공격수에게 패스하기 전 상황을 360도 카메라가 회전하며 비추어 주고 가상의 오프라인 라인을 그어주며 판독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저 공격수가 너무 앞으로 나와 있었구나 하는 생각으로 넘어가다 심판의 반칙 선언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도대체 저것이 왜 반칙인지 궁금증이 생기신 것이다.


“공격수가 골키퍼 바로 앞에 서있으면 반칙입니더.”

“아, 글나?”


오프사이드에 대한 아버지의 간단 명료한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다시 축구를 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대한민국이 1대1 찬스를 맞이했으나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궁금증이 다시 이어졌다.


“그라모 점마도 골키퍼 앞에 있었는데 반칙 아이가?”


분명히 공격수가 골키퍼 바로 앞에 있으면 반칙이라고 했는데 방금 1대1 찬스에서 공격수가 골키퍼 바로 앞에 있었지만 반칙이 선언되지 않았던 상황이 궁금하셨던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설명대로라면 분명히 방금처럼 공격수랑 골키퍼만 있으면 반칙이 되어야 맞지 않은가?

할아버지의 질문을 들은 아버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한자리에 모으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아버지 앞에 막걸리 잔 2개와 설탕 그릇, 그리고 내가 먹던 딸기를 놓고 진지하게 배열을 하셨다. 설탕 그릇과 막걸리 잔을 일직선으로 놓고 조금 뒷부분에 또 다른 막걸리 잔을 두고 그 안에 딸기를 하나 넣으셨다.


“여기 있는 딸기를 저 앞에 있는 그릇으로 패스를 하려고 할 때 딸기가 출발하기 전에 설탕 그릇보다 막걸리 잔이 앞에 있으면 그게 반칙이고, 설탕 그릇 뒤에 있으모 딸기를 저기로 패스해도 상관없습니더.”

“그기 뭔 말이고?”


너무 어려웠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발로 공을 차고 골대에 넣으면 점수가 올라가는 누구나 따라하기 쉬운 운동이 축구 아니었는가? 손으로 공을 만지거나 상대방을 때리거나 괴롭히면 반칙이라는 것쯤은 쉽게 이해가 되지만 아버지가 설명해 주시는 오프사이드라는 룰은 칠순을 갓 넘으신 할아버지와 쥐라기 월드컵으로 축구를 배웠던 내가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던 것이다.


“왜 막걸리 잔이 설탕 그릇보다 앞에서 받으면 안 된단 말이고?”

“뭐 대충 그런 것이 있는데 사실은 저도 자세히는 모르것네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할아버지 앞에서 아버지는 자세히 모르겠다는 무미건조한 말을 남긴 채 급하게 설명을 마무리를 지으시고 다시 막걸리 잔과 설탕 그릇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셨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나는 알 수 있었다. 당시 할아버지와 나는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의 설명은 몹시 정확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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