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삶을 위해 짐을 비웁니다

출가 '후' 바자회 후기

by 김태라

작년, 차에서 살기로 결심하고 일 년 내내 짐 정리를 시도했지만 끝내 어떤 것도 버리지 못했다. 결국 이삿날이 되어서야 눈물을 머금고 쓰레기봉투를 채웠고, 그러고도 남은 물건들은 친척 집과 친구 집으로 흩어 보냈다. 그렇게 나의 짐들은 6개월이 넘도록 이산가족이 되어 살아왔다.

최근 들어 영화 편집이 유독 풀리지 않았다. 문득 그 짐들 때문에 내 인생의 하수구가 꽉 막혀서 그런 것 같다는 핑계가 떠올랐다. 어차피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붙들고 있느니 잠시 내려놓고 짐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처분할 짐이 워낙 많아 당근마켓에 하나씩 사진을 찍어 올리고 채팅을 주고받는 일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했다면 들인 돈을 회수하는 데는 좋았겠지만, 애정하던 물건들을 두고 가격을 흥정하는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마침 내가 내려가는 시골집에 오일장이 열리는 기간이라 장터 한 귀퉁이에서 바자회를 열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나오기 전에도 한 번 시도했던 이 바자회는 물건의 가격을 사는 사람이 직접 정하는 일종의 실험이었다. 이번에도 방식은 같았다. 디스플레이는 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은박 돗자리에 물건을 늘어두고, 빨래 건조대에 옷을 걸었다.

의외로 물건을 깔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이 이어졌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정해진 가격이 없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표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저렴하게 물건을 구할 기회라 여기며 닥치는 대로 쓸어 담는 이들도 있었다. 가격을 정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지만 나는 끝까지 구매자에게 그 결정을 맡겼다. 사실 속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중고 거래로 팔았다면 몇만 원은 받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칠 때마다 물건을 다시 거두어 가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경험을 타인과 나누고 싶다는 기획 의지를 지키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손에 물건을 한가득 안아 들고는 그저 천 원권 몇 장을 내밀며 자리를 뜨려는 이들을 볼 때는 솔직히 짜증이 치밀기도 했다. 나는 물건의 가격을 사는 이가 직접 결정하게 함으로써, 하나의 사물이 누군가의 삶에 들어갈 때 발생하는 '가치의 무게'를 함께 고민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고민의 흔적 없이 책정된 그 가벼운 가격들을 마주하자, 애초에 내가 설계한 기획의 본질이 너무나 쉽게 짓밟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물의 가치를 스스로 질문해 보길 바랐던 나의 실험은, 그저 '싸게 많이 얻었다'는 정복감 아래 무력해지는 것 같았다. 물건에 깃든 누군가의 시간이나 철학보다는 당장의 이득이 우선시 되는 광경을 보며, 자본의 논리를 벗어나 보려던 나의 시도가 얼마나 이상적이었는지 실감했다.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중 문득 그들 안에서 나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발견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필요치 않은 물건들을 무작정 장바구니에 담던 모습, 가격이 저렴하다는 핑계로 물건을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리며 하찮게 대했던 나의 지난날들이 그들의 손길 위에 겹쳐 보였다. 타인이 내 기획을 대하는 방식에 분노했지만, 정작 나 역시 물건을 '존재'가 아닌 '소유'의 도구로만 소비하며 그 본질을 훼손해 왔던 것이다. 그 순간들을 떠올리니 끊임없는 허기에 시달리던 '가오나시'의 형상이 뇌리를 스쳤다. 물건으로 공허함을 채우려 했던 나의 욕망도, 저렴한 가격에 매료되어 물건이 가진 고유한 서사를 놓치는 저들의 손길도 결국 다르지 않다.

저녁 6시가 넘어가자 장터의 다른 천막들이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매대에는 팔리지 않은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이 남겨진 것들을 다시 꾸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벌써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결국 나는 빈 박스 조각을 주워 큼지막하게 ‘FOR FREE, 공짜’라고 적어 넣었다. 그리고는 지나가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마음껏 가져가시라고 외쳤다. 다행히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고, 망설임 없이 각자에게 필요한 것들을 품에 안고 떠나갔다. 어떤 이들은 고맙다며 커피를 건네주기도 했고, 받지 않겠다는 내 손에 굳이 현금을 쥐여주는 이들도 있었다. 물건의 가치나 기획의 의도를 넘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온기가 전해졌다.

내 손을 떠난 물건들이 타인의 손에서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동안 내 주변을 유령처럼 떠돌던 짐들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이 비움 하나로 꽉 막혔던 영화 편집이 대번에 해결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마음만은 이전과 비할 바 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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