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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라 Jun 27. 2024

[초단편소설] 환생

<문학나무> 2024년 봄호 수록작

환생


김태라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라훌라가 싯다르타에게 말했다. 커다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싯다르타는 가슴이 아려왔다.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랑이 솟구쳤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오늘 아침 싯다르타는 나무 밑에서 설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십여 년 전 보리수나무 아래서 각성한 뒤, 사람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세상은 그를 붓다라고 불렀지만 싯다르타는 그 이름을 한사코 사양했다. 사람들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깨달음은 어딘가 떳떳지 못한 구석이 있었다.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은 집착과 욕망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버리지 못해 고통과 죽음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돌고 도는 생사의 수레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작은 것에 대한 애착을 버려야 합니다.”

  설법이 끝나자 한 청년이 싯다르타에게 다가왔다. 그와 눈이 마주친 싯다르타는 가슴이 크게 뛰었다. 처음 본 청년이지만 그가 누구인지 대번에 알아챘다. 청년은 싯다르타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아버지.”

  싯다르타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버지라는 한마디에 무채색의 세상이 천연색으로 돋아났다. 아들, 이십 년 전 그가 버렸던 그 아기가 성인으로 자라나 있었다. 싯다르타의 젊은 시절을 보는 듯 아들은 아버지와 똑 닮아 있었다. 아들은 자기 이름이 ‘라훌라’라고 했다. 라훌라는 ‘장애, 족쇄’라는 뜻이었다. 싯다르타는 기억했다. 출가를 결심한 뒤 아들이 태어나자 “라훌라!” 하고 외쳤던 것을.

  싯다르타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마음속에서 불같은 부정(父情)과 애착이 일어났다. 그는 이런 감정이 깨달음의 장애이며 발목을 잡는 족쇄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싱싱한 피의 부름이었다. 생전 처음 맛보는 원초적 에너지였다. 아들이 나타나면서, 허공처럼 텅 비었던 싯다르타의 내면이 황금들판처럼 넘쳐흘렀다. 호수처럼 고요했던 마음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어째서 자신을 버렸느냐 물은 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싯다르타는 아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다.

  “첫째, 언제든 빵을 먹을 수 있도록 생활에 여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둘째, 아버지가 세상의 존경을 받는 붓다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교단을 세워 아버지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고 싶습니다.”

  싯다르타의 능력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껏 그가 꺼려왔던 일들이지만 그보다는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 컸다. 또한 아들을 버린 일에 대한 자책감을 이렇게나마 씻고 싶었다. 그렇게 싯다르타는 붓다라는 칭호를 받아들이고 단체를 만들어 세상의 박수갈채 속에서 삼십 년을 살았다. 아들이 있어 행복하고 풍족한 삶이었다. 싯다르타는 천상천하의 모든 것을 이룬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죽음이 찾아왔을 때, 싯다르타는 가슴 깊은 곳에서 큰 슬픔을 느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 모두를 얻지 못했다는 것을. 이번 생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전 생애가 무효가 됐다는 것을. 그래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중년 아들이 지켜보는 침상에서 노인 싯다르타는 눈물을 흘렸다. 라훌라도 눈물을 훔치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

  싯다르타는 말없이 눈을 감았다. 그리고 지상을 떠나면서 굳게 다짐했다. 다음 생엔 결코 아버지가 되지 않으리라. 인간을 아버지로 두지도 않으리라. 다시는 혈연의 사슬에 엮이지 않으리라.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 지난 생이 그의 마지막 삶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상의 계약을 파기한 대가로 그는 오백 년이 지나서야 몸을 입고 지상에 내려올 수 있었다. 염원했던 대로, 빛의 씨앗에 담겨 아버지 없이 태어났다. 결심했던 대로, 누군가의 아버지가 되지도 않았다. 그는 하늘을 ‘아버지’라 부르며 어려서부터 천상의 임무 수행에 매진했다. 그리고 전생에 출가했던 그 나이에, 수행차 머물렀던 광야에서 라훌라를 다시 만났다.

  라훌라는 전생에서 그랬듯 그에게 세 가지 제안을 했다. 달콤하고 근사한 얘기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유혹에 넘어갈 그가 아니었다.

  “라후(Rahu)!”*

  그가 대갈하자 라훌라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이렇게 간단한 것이었다니. 그의 눈앞에 전생의 일들이 꿈속 장면처럼 흘러갔다. 그는 싯다르타 시절의 자신이 어린애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어리석었던 자신에게 기회가 다시 주어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어렵게 얻은 삶인 만큼 이번 생엔 실수 없이 미션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래도 전생에 해놓은 공부가 있어 가르침을 전하기가 쉬웠다.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는 것”이란 말은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으로 바꿔 설교했다.

  그는 하루속히 지상에서의 과제를 끝마치고 싶었다. 일을 제때 끝내기 위해, 배신의 역할을 맡은 제자에게 “네 할 일을 어서 하라”고 재촉하기도 했다. 광야 이후 라훌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족쇄 풀린 일생은 일사천리로 흘러갔다. 전생에 보리수나무 아래서 성과가 있었듯, 이번 생에도 그의 성취는 나무와 함께 이루어졌다. 그는 나무 십자가에 매달려 이렇게 말했다.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

  전생에 들었던 말이었다. 그의 가슴에 못처럼 박혀 있던 이 말을 토해내는 데 5세기가 걸렸다.



* 악마의 이름. ‘버리다, 무효로 하다’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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