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홀, 소리를 만들고 음악을 완성하다.

by KIMTAE

‘도요타 야스히사'의 콘서트홀 x오케스트라’를 읽었습니다. 건설 엔지니어 겸 음악인으로서, 음악과 건축을 다루는 이 책은 읽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음향 설계, 공간과 클래식 음악, 공간에 따라 빚어내는 사운드 퀄리티 등 흥미로운 이야기를 즐겁게 읽었습니다.





1. 콘서트홀과 사운드의 관계

이 책은 일본의 저명한 음향설계사 도요타 야스히사와의 대담을 글로 엮은 것입니다. 도요타 야스히사는 일본 도쿄 산토리홀부터 미국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까지 국제적인 지명도 있는 콘서트홀의 음향을 설계한 사람이에요. 혹시나 해서 찾아보니 롯데콘서트홀의 음향설계사도 저자네요.


과거 무대가 앞에 있고 객석이 길게 있는 슈박스 형태에서 롯데콘서트홀처럼 무대를 객석이 둘러싸는 빈야드 타입 까지, 역사적으로 공연장의 평면이 변화해 온 과정과 그에 따른 음향적인 변화를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음향설계사가 가장 긴장하는 순간은 콘서트홀의 개관보다도 오케스트라가 처음 리허설 할 때 라고 합니다. 연주자들도 새로운 공간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죠. 처음엔 자신의 연주 소리가 안 들린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공간에 적응하고 나면 좋은 앙상블을 만들어 내는 경험을 들려줍니다. 공연장 무대의 단차에 따른 사운드의 차이, 연주자들이 원하는 거리감과 사운드가 좋은 밀집도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음향을 설계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려운, 디테일하고 인상적인 에피소드입니다.


클래식과 오케스트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오케스트라와 연주 실력에 대한 감상평, 지휘자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빚어내는 소리의 질적 차이 등 민감할 수 있는 이야기도 거침없이 다뤄요. 일본 클래식의 발전과 활성화를 위한 아이디어들도 다루는 것을 보면서, 음향설계 전문가 이전에 깊이 있는 음악 애호가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2. 음원과 공연장에서 들리는 사운드는 다릅니다.

개인적으로는 몇 년 전 음악을 시작하면서부터 의도적으로 공연장을 다니며 음악을 들었습니다.


음악과 사운드를 만들면서 느낀 것은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의 공간감은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점이에요. 좌우 및 중앙/사이드를 구분하는 패닝, 주파수별 위아래 음역대, 또는 가깝고 멀게 들리는 공간감은 음악가와 엔지니어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전에 작업한 오케스트라 곡 믹싱에서도 악기별 배치에 따른 패닝을 통해 공간감과 선명한 사운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듣는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악기 배치에 따른 패닝보다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 들립니다. 물론 배치에 따라 좌우, 원근의 감각이 있긴 하지만 음원처럼 선명하게 분리되진 않습니다. 악기의 배치에 따른 사운드의 패닝은 지휘지의 위치가 아니고는 듣기 어렵지 않을까요.


잘 믹스된 음원은 듣기 좋습니다. 사운드 엔지니어의 노고와 감각을 통해 완성되는 것으로, 이어폰을 통한 음악 청취가 일반화된 시대에 중요한 작업임에는 틀림없죠. 다만 그것은 실제 공연장에서의 사운드와는 다르다는 것을 공연장에서 들으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실제 공간에서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해졌고, 실제 공간에서 음악을 듣는 경험이 쌓이면 음악과 사운드를 만드는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백유진 - The Ocean (오케스트라 믹싱으로 참여한 곡입니다.)




3. 콘서트홀의 전제는 오케스트라

콘서트홀은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전제로 합니다. (물론 오페라 및 다른 가극의 형태도 있지만서도.) 오케스트라에 따라 무대의 규모가 정해지고, 그에 따라 객석의 규모도 정해집니다. 공간적으로도, 사운드 적으로도 그렇죠.


오케스트라는 통상 50명 전후, 많게는 100명이 넘어가는 규모입니다. 이 정도 인원이 설 수 있는 무대가 필요합니다. 사운드 측면에서도 많은 규모의 악기 사운드 명료하면서 잔향이 있는 사운드를 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거 슈박스에서 현재의 빈야드 형태의 공간으로 발전한 것은 규모와 사운드에 대한 요구사항을 맞추면서도 공간의 제약을 기술발전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 (출처 : 구글 이미지)


재즈의 경우와 비교해 보면 공간의 규모를 이해할 수 있어요. 재즈는 기본 편성이 트리오 혹은 쿼텟입니다. 피아노, 드럼, 베이스와 리드악기 혹은 보컬 등, 오케스트라에 비해 비교적 작은 규모이죠. 이 규모의 차이가 무대와 객석의 차이로 이어집니다. 오케스트라가 1-200석 공연장에 서는 것이 규모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듯, 재즈 트리오가 2000석 공연장에 있는 것은 편성에 비해 큰 공간으로 느껴집니다. (순수하게 규모에 따른 공간 측면에서의 의미입니다.) 현대 공연장은 규모와 공간의 한계를 이겨내기 위해 스피커와 마이크 등 시스템으로 이를 보완합니다.



4. 음향설계 과정과 건축가와의 작업

건축가 프랭크 게리와의 작업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어요. 빌바오 구겐하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프랭크 게리는 엄청난 음악 애호가였다고 합니다. 저자가 게리와 작업한 프로젝트 중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은 자유롭고 화려한 조형미로 유명하죠.


화려한 외관의 조형미에서 풍겨 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디즈니홀은 먼저 콘서트홀의 평면과 음향설계를 확정한 후 외관 설계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밝힙니다. 게리는 평면에 변화가 있으면 음향설계가 계속 달라질 수 있으니 먼저 내부 설계부터 확정하고 그 이후에 외장 설계를 했다고 합니다. 콘서트홀의 본질인 사운드에 우선순위를 둔 것은 그가 음악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LA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출처 : 위키피디아)


건설 엔지니어로서의 저의 역할은 주로 계약과 예산 분야로, 직접 설계를 하는 포지션은 아닙니다. 그렇더라도 대형 콘서트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저 같은 사람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음악과 건설, 공간을 이해하고 경험하는 사람이 흔치는 않겠죠. 이런 캐릭터로 프로젝트에 합류해 있다면 좀 더 그 공간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5.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들

저자는 어린 시절 클래식 공연을 들으며 그 사운드에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 아들에게 더 많은 공연과 사운드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것이 아들의 미래로 어떻게 영향을 줄지 모르지만, 어린 시절 경험하는 사운드와 공간은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핑계로 조만간 아들과 새로운 공연장을 가봐야겠어요.


국내에도 좋은 공연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궁금한 공연장 중 하나는 부천아트센터입니다. 클래식 전용 공연장인 이곳의 음향이 매우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어요. 어떤 공간일지, 그곳에서 울리는 사운드의 울림과 질은 어떤지 궁금하고, 올해 꼭 한번 가보고 싶어 집니다.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들려주는 공간에 매력을 느끼시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드립니다. 멋진 공연장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비밀을 조금 더 이해하실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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