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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TAE Sep 13. 2021

마감력

글도 음악도 마감이 있어야 완성할 수 있다.

지난번 글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은 출판사 리뷰에 응모하는 목적으로 쓴 글이어서 마감이 정해져 있는 글이었다. 최근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초안이 잘 잡히지 않았는데 기차를 탈 기회가 있어서 그때 쓰기로 맘먹었고, 다행히 기차를 타자마자 집중이 잘 되어서 한 번에 글의 초안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기차와 글쓰기는 잘 어울린다.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여정, 너무 과도하지 않은 적당한 진동과 노트북을 올려놓을 수 있는 접이식 좌판까지, 글쓰기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인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매주 2회씩 올릴 때는 매주 마감이 있었다. 월, 목을 포스팅 날로 잡고 미리 글을 썼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 정한 마감이 있어서 글을 꾸준히 쓸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스스로 정해놓은 마감일자 혹은 요일이 흐릿해져서인지 일주일에 글 한 편을 올리기에도 버거운 느낌이다.


최근 읽은 <히사이시 조의 음악일기>에 "마감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대부분의 음악에는 마감이 있고 여러 일정상 이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마감이 있어야 음악을 완성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마감 전에 미련 없이 딱 자르고 완성하는 작가는 없다며 마감이 되어 진지하게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마감력”이라 부른다고 한다.


작품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는다. 영화음악이건 콘서트 악보 건 마찬가지다. 작곡가는 언제 한 작품을 끝내는 걸까? 어디서 완성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을까? 내 경우는 확실하다. 녹음이나 콘서트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 즉 마감이 있으면 그때까지 완성한다. 납득이 가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그때까지는 매듭을 짓는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또 다음 기회(마감)에 다시 도전한다. 이걸 반대로 말하면, 마감이 없는 곡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는다.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면 매달 마감을 한다. 도급 기성, 외주/용역/자재/장비 기성의 마감도 있고, 각종 본사 보고 등의 루틴 한 업무 마감이 매달 돌아온다. 좀 더 큰 프로젝트 단위로 보면 인허가 취득이 중요한 마감이다. 착공 시 착공허가를 받는 것이나 준공 시 사용승인을 득하는 것이다. 특히 사용승인은 정말 중요한 마감 일정이다. 대부분 계약상 취득해야 하는 D-Day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정을 맞추는 것은 단순히 공사를 마치는 것 그 이상의 의미와 영향이 있다.


최근 발주처의 요청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의 인허가를 완료했다. 미리 3개월 전 계획을 짜서 가장 중요한 요인을 파악하고 이를 집중해서 챙겼다. 필요한 용역의 발주도 내고, 계속 진행상황을 점검해가며 필요한 신고 서류 및 첨부 자료를 준비했다. 결과적으로 취득해야 하는 날짜보다 일주일 먼저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마감이 그렇게 일정대로 진행된다면 참 좋겠지만, 그렇진 않다. 사회 초년생 때는 준공일에 지연된 경우도 있었다. 첫 현장이었는데, 하루 지연이 되었다. 당시 공사팀에 소속되어 준공 직전 불철주야로 일하며 공사를 했는데 하루 늦었다는 얘기를 듣고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아내는 내가 집에 와서 울었다고 얘기하던데.. 그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진짜로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마감은 미리 준비해서 마감해야 하는 일의 큰 덩어리를 만들어놓고, 마지막까지 Final Touch로 완성도를 높여가는 것이다. 글도, 일도, 음악도 끝까지 계속 손대면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순발력이 좋은 편은 아니어서 미리 생각하고 작업을 해 놓아야 변수가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마무리를 할 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push 하면 마지막 10%를 끌어올릴 수 있는 것 같다.


이 전의 글과 함께 올린 음악은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라는 소설을 모티브로 만든 음악이었다. 최근 음악을 스터디하는 모임에 참여를 시작했는데 8월의 과제가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그에 대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었다. 마침 <완전한 행복>의 출판사인 은행나무에서 리뷰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게시되었다. 소설에 대한 리뷰가 꼭 글이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니, 감상을 음악으로 만들고 이를 제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제출하는 일정과 스터디의 마감일자가 우연히도 같았다. 소설의 트레일러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고 마감일 전에 글과 음악을 완료할 수 있었다.


마감에 대한 압박은 많은 스트레스를 선사하지만, 또한 마감이 있기에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다. 그동안 만들어보지 않았던 방식, 즉 음악과 글을 한 세트로 만드는 방식을 처음 도전해보았고, 특히나 노래가 아닌 트레일러 같은 영상음악으로 만들어보는 것도 새로웠다. 그 과정에서 많이 공부하면서 나름 재밌게 작업했고 스스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이렇게 조금씩 마감력이 더 생기고 커지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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