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고기를 구해서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다. 동생에게 만원을 주고서 양상추 한 통만 사 오라니까 'ㅇㅇ ㅇㅋ'라고 대답하고선,내 머리통만 한 양배추 한 통을 사들고 나타났다. "양상추랑 양배추가 다른 거야? 먹으면 똑같은 야채지 뭐.."라고 말하는 동생 때문에 그날은 오랜만에 어이가 조금 없었다.
2. 요즘은 아침 6시마다 커피를 내려서 버스를 타러 가는 중에 마신다. 아침에 간 원두는 뭔가 저녁의 원두보다 신선한 느낌이라 좋다. 아님 말고.
3. 예전에 SNS에서 자기를 화나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광석처럼 하나의 표본으로 생각한고 넘긴다는 글을 읽었었다. '아.. 저런 표본도 있구나..' 하면서 넘어간다고. 그때는 '오... 멋진 생각이야' 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날 화나게 만드는 사람을 마주하니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아니 그 표본이 저를 빡치게 한다니까요??
4. 깻잎의 하루 권장량은 180장이란다. 필요 없지만, 알아두어야 할 지식을 얻은 기분. 혹시라도 권장량을 넘기지 않게 조심해야지..
좋은 정보를 알려주셔서 고맙다고요? 별 말씀을요...
5. 난 종종 유튜브에서 수화하는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수화는 어쩐지 평화를 사랑하고 소음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종이 사용하는 언어란 느낌이 들어 신비롭고 멋지다고 생각한다.
6. 과거의 병 때문에 치아가 많이 약해졌다. 최근에 썩어서 부러진 이의 신경치료를 받고서 날 아끼는 사람에게 "이거 봐 적당한 가격에 잘 받은 것 같아."라고 웃으며 말했는데 얼굴은 웃고 있지만, 약간 외면하는 낌새를 눈치채고 아차 싶었다. 나는 너무 철없이 그리고 배려 없이 좋아하는 티를 낸 건 아닐까? 좋아하는 표현에도 배려가 필요하는 것을 배웠다.
6.5 꿈속의 그늘진 표정의 나와 그 그늘에서 쉬고 싶다던 너. 잠에서 깨고난 뒤 컴컴한 방안에 혼자 있는 기분이 울적...
7. 남자의 젖꼭지는 왜 있는 걸까?라는 질문을 읽은 이후로 며칠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게이를 위한 신의 배려'라는 댓글이 가장 그럴듯했는데, 결국 알아보니 대충 젖꼭지가 생성되고 성별이 결정되기 때문에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남아있는 것이라는 내용.. 정답을 알아버리니 뭔가 재미가 없다. 신의 배려라고 생각했을 때가 뭔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었는데..
멈춰주세요.. 뽀이...
8. 난 놀렸을 때 리액션이 크고 풍부한 사람을 너무나도 좋아하는데 회사의 강대리님이 딱 그런 사람이다. 참고로 나는 대충 군대에서 암에 걸려 치료를 받다가 얼굴이 망가졌다고 한 명에게만 말한 상태였다. 그리고 어느 날 옆자리 강대리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태균 씨... 회사에서 태균 씨가 군대에서 폭탄이 터져서 얼굴이 다쳤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네... 폭탄 해체작업을 하다가 터졌는데 동료를 감싸다가 얼굴을 다친 거예요."
"세상에... 태균 씨 너무 용기 있고 멋있어요.."
어쩌다가 소문이 그렇게 퍼졌는지 어처구니가 없지만, 어쩐지 암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멋있어서 그냥 그렇다고 해버렸다. 당연히 안 믿을 줄 알았는데 덥석 믿어버려서 너무 호감이 가버린 강대리님.. 언제 진실을 말해야 하나..
9. 쓰다 보니 생각나는 강대리님 에피소드 하나 더. 오전에 캔커피를 사면서 잔돈을 남기기 싫어 한 캔을 더 뽑았다. 두 캔을 마시고 싶지 않아 포스트잇에 하트를 그려 붙여 강대리님 책상에 두었다. 그 날 오후 강대리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태균 씨 혹시 오늘 내 자리에 누구 왔었어?"
"글쎄요... 왜요?"
강대리님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의자를 내쪽으로 바짝 붙인 채로 속삭였다.
"내 자리에 캔커피가 있는데 포스트잇에 하트가 그려져 있더라고요.."
"아... 그거.."
"날 좋아하는 사람이 있나 봐.."
"??"
"태균 씨 봤어?"
기대로 초롱초롱해진 강대리님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부응하고 싶었다.
"아.. 한 소녀가 두고 갔어요.."
"누군데? 제발 가르쳐줘..."
"안돼요.. 절대 말하지 말아 달랬어요. 이 마음을 들키면 부끄러워 죽어버릴 것 같다고요."
"아... 태균 씨 제발..."
난 그날부터 매일 오전 몰래 캔커피를 두었고, 소녀를 찾기 위한 강대리님의 필사적인 노력은 물론 헛수고였다. 5일 정도 지났을까. 강대리님이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
"태균 씨.. 그 소녀 도대체 누군거야?"
"아시다시피 전 말 못합니다."
"아니... 오늘 커피 쪽지에 <간장 2스푼, 다진 마늘 4쪽, 설탕 참기름 한 스푼씩, 소금 한 꼬집>이라고 적혀 있더라고.. 도대체 뭔 소린지... "
"아... 그거 육회 레시피인데 오늘 저녁에 해 먹으려고 적어둔 거예요."
"..?? 태균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음... 그 커피 사실은 제가 매일 가져다 둔 거였거든요.. 오늘에서야 고백하네요."
"태균 씨가 소녀라고 했잖아.." 강대리님은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말했다.
"구치만.. 강대리님을 향한 저의 마음은 소녀란 말이에요.. 후후훗 데헷~"
그날 잔뜩 토라진 강대리님을 달래기 위해 고기를 대접해야 했다. 즐거워..
12. 심각한 표정으로 "코로나 바이러스가 코로 들어온다는 라임이 과연 우연일까요?" 라고 말하는 나를보며 과장님이 지었던 기묘한 표정이란..
10.회사에는 언제나 기이할 정도로 안맞는 인간한 둘은 있기 마련이다. 물론 나도 예외는 아니라, 행동 하나하나가 밉상인 사람을 보면서 '저런 쌉벌래 콩벌래 같은 존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정말 인간의 사랑엔 끝이 없고 그 종류도 무한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11. 이연주 시집을 읽은 날은 '내가 나를 인질로 또 하루를 살았다'는 문장이 꼬챙이가 되어 내 심장에 쿡쿡 찔리는 느낌이다. 그날은 파란 하늘에 하연 달이 떴고, 세상은 너무 아름다워서 초라한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삶이 돼지코의 진주가 되어가는 부끄럽고 처량한 기분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