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논할 순 없지만 불행하지 않은 이유를 꼽을 수 있는 나이인가 보다
스무 살 때인가 내 어린 두 눈에 비친 서른한 살의 그는 이 세상을 어느 정도 살아본, 그래서 조금은 거친, 그러나 이성적인 모습이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서른두 살의 어느 날 난 소식을 알 길 없는 그에게 뒤늦게 미안한 마음을 고백하고 싶어 졌다. 그 시절 나는 함부로 서른이 넘으면 누구나 어른이 되는 거라 짐작했다. 하지만 서른둘의 난 여전히 십 대 때처럼 불안하고 이십 대처럼 두렵다.
교제하는 이성도 없고 그러다 보니 결혼 계획 또한 있을 리 전무한 서른두 살의 여성은 이따금 '불편한 시선'을 감내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내가 다니는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이성에 대한 무관심의 정도가 극히 비정상적이다’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기대와 달리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또래에 비해 꽤 신성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접해보지 못한 신비한 영역에 대한 호기심이 대부분이겠지만 어쨌든 지금의 나로선 그들의 하나 될 용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최근에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라던데 요 근래 내가 참석했던 결혼식도 그랬다. 입장부터 축가로 시작된 남다른 결혼식은 색다른 이벤트들로 정말 축제 분위기가 났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주례 대신 부모님이 직접 두 자녀를 향해 간절한 마음으로 적은 편지를 읽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날 신랑 측 부모님의 말씀을 모두 나열할 순 없지만 ‘자연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기를’이라는 간단한 문장은 신랑, 신부뿐 아니라 나에게도 와 닿아 큰 울림이 됐다.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는 버스 창밖 너머로 속이 텅 빈 까만색 비닐봉지가 바람을 머금고 도로를 어지럽게 헤매는 모습을 지켜봤다. 행적을 알 수 없는 그 까만색 봉지는 양방향을 오가던 자동차들에 수도 없이 치였고 붕 위로 떠올랐다가도 이내 풀이 죽어 고꾸라졌다. 누군가의 손에 걸려 있어야 했을 게 어쩌다 도로 위에 올랐을꼬 싶으면서도 신호등도 횡단보도도 표지판도 무시하고도 누구 하나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정류장에서 내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 길가 곳곳에 꽃망울이 눈에 띄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눈에 띄게 간편해졌다. 나는 여전히 두꺼운 패딩을 입고 등 뒤로 뜨거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생각했다. 자연이 가르치는 것에 대해. 오고 가는 계절에 대해. 나는 그것들을 막을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행했던 적도 없다. 별다른 노력 없이 키가 자랐고, 꽃을 만졌고, 비를 맞았고, 바람을 느꼈고, 설경에 취했다. 마음과 몸까지 무겁게 만드는 욕심 같은 것일랑 모두 던지고 흘러가 보자. 혹여 누군가 그 모습을 한심하다 말한들 못 들은 척 행방이 묘연해진 그 까만색 봉지인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