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아홉수도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다

by 김유례

악재가 겹친다는 아홉수, 이 반갑지 않은 절기 이야기로 나를 겁주던 이들은 서른 살이 됐고 나는 스물아홉 살 9월을 맞았다. 한창 아홉수인 나는 실제로 몇 가지 심각한 어려움을 느낀다. 노래 한 곡이 끝날 때까지 플랭크(Plank) 자세를 유지하는 일이라든지 밀가루를 끊는 것. 또 어려지는 일은 내게 좌절감만 더할 뿐이다. 이보다 더 어려운 건 내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얼마 전 일도 그렇다. 그는 내게 커피를 마시자고 데이트 신청만 반복했을 뿐 커피 10잔을 넘게 비워내도록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의 속마음이 몹시 궁금했지만 나는 질문 자체를 포기했다. 초조하고 궁금한 내 마음을 드러내는 순간 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음의 표현 없이 끝난 우리의 미지근한 사이와 달리 홍대 곳곳에 그려진 벽화는 여름날 태양처럼 뜨거웠다. 벽은 누군가 글과 그림으로 대신한 마음을 담았고 건물, 거리 등과 어우러져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친구들에게 “넌 한 번도 표현한 적 없으면서 왜 그 사람이 너의 생각을 알아주길 원해?”라고 냉정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나인데. 내 진심을 담은 고백이 누군가에게 상처로 남거나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일들을 겪으며 나는 표정 없는 차가운 회색 담벼락처럼 입을 다물었다. 마음속 뜨거운 이야기를 누르며 아프지만 어른이 되는 과정이라고 되뇌었다. 사실은 타인의 시선을 핑계 삼아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으면서.



표현은 끼니와 같다. 프랑스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말처럼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물이나 세계가 우리를 부르고 표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표현하지 않을 수 없고 그렇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뜨끈한 쌀밥을 마다하고 메마른 사막의 텁텁한 모래만 억지로 삼키던 아홉수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홉수보단 차라리 서른이 낫다는 어떤 사람의 말이 생각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