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너의 안녕을 바라고 싶다
최근 이별했다는 친구와 족발에 소주를 마셨다. 이른 저녁부터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틈을 겨우 뚫고 나오는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그가 들려준 그들의 마지막을 듣고는.
“너를 욕심내서 미안해.” 가진 건 없었지만 친구에게 워낙 다정했던, 몇 번 본 적은 없지만 큰 키가 인상적이었던 남자. 하얗고 뽀얀 피부를 가졌던 모습이 겹쳐 그가 건넸다는 마지막 인사가 더 애절하게 와 닿았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지는 일도 힘들지만 이별도 쉽지만은 않다. 누군가에게 빠져드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확률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말 그대로 뜯어내야 하는 일인지라 반드시 고통을 동반한다.
둘의 공통점도 있다. 마치 사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혹여 이별을 통보하는 쪽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고 해도 필히 만남이란 두 사람이 함께 쌓아 올린 것이기에 헤어짐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 사고와 같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물론 사고를 내는 사람도 썩 편치만은 않을 것이라.
나 또한 아픈 말을 건네봤고 반대로 맞닥뜨린 적도 있다.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엉엉 운남자도 있었고 끈질기게 붙잡아본 적도 있다. 몇 가지 에피소드들이 스쳐가지만 굳이 설명할 만큼 좋은 기억들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 돌아서 생각해보면 어쨌든 그것은 모두 마침표가 되었다. 이별 후 분노나 슬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면서도 이후에 또 여러 번 사랑에 빠졌다는 게 이를 증명한다. 끝맺음 그리고 또 다른 시작, 이별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잘 지내” “행복해” “고마웠어” “건강해.” 끝이 없을 거라 믿었던 사랑을 마치는 마지막 인사는 그간의 추억을 담기엔 다소 간결해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이 시간제한적 단어임에도 안녕을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인사’가 붙었다는 점이 왠지 묵직하게 와 닿는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 아픈 말을 마주해야 할까. 겁먹기엔 헤어질 일이 너무나도 많다. ‘마지막’이라는 게 연인에게만 국한되진 않기 때문이다. 또 이런 아픔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리고 심장이 뛴다.
그럼에도 나는 더 치열하게 사랑하고 위로하고 인내하고 용서받고 싶다. 그 마침표의 순간까지 어떤 희망을 놓고 싶지 않다. 끝난 문장 다음엔 다음장을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