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박지원 선생에게 듣는 삶의 지혜 3
명색이 글쟁이인 나는 가끔 연암선생님을 만난다.
그와 대화하면서 답답한 마음도 풀어내고 새로운 영감도 얻고 또 글쓰기에 대해 배운다.
오늘은, 우정에 관해 여쭈어 보았다.
멀리 봇짐을 매고 연암협에 계신 스승님을 찾아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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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항상 여러분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을 즐기셨다지요. 심지어 임종 직전에도 친구들을 곁에 불러놓고 대화하는 것을 들으셨다고요.
연암: 그래.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단다. 친구들이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내 모든 것을 아는 존재들이었지.
내가 생각하는 바는 주로 이용후생에 관한 것이었고 당시 조선의 양반들은 거의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내가 강조한 것은 상공업의 발달을 주장했다. 상공업을 발달시키면서 세상과의 교류가 발달하고 당시 세계의 흐름이 그쪽으로 돌고 있는데 조선은 정주하는 삶에 멈추어 오히려 과거로 가고 있었다. 우리가 큰 흐름에 동참하지 못한다면 언제 건 청나라에 흡수될 지도 모를 일이었지. 자체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계는 서로 확장하는 시기였기에 조선도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여 도약을 할 때였지.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 갇혀 다른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은 조선이 참으로 답답했다.
겉으로는 우리들이 풍류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심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었다. 임금께서도 그런 변화의 물결을 알아채시고 수도를 수원으로 옮겨 상공업을 발달시켜 세계와의 교류를 확장시키려고 하셨지.
친구들을 통해 세상의 소식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었지.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친구들을 만나 나라를 구할 방도를 마련하면서 나의 학문에 친구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고 서로의 생각의 교환을 통해 나의 학문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졌다. 세상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오는 일은 늘 어려움이 따르지. 하지만 역사란 새로운 생각에 의해 바꿀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생각이 세상의 발전을 이루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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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과 친구들을 보면 친구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친구 잘 못 만나 폐가 망신하는 수가 있고
강남가는 수도 있고
연암과 친구들은 새로운 문화를 기획했다.
출처: 행복한 백수학교 (연암에게서 배우는 자유의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