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의 관계가 어려울 때
"벗은 제2의 나다"

연암 선생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3


벗을 통해 나를 알아간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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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녀: 폭넓은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랍니다. 아무래도 친한 사람들하고 계속 논다고 할까요? 그런데 선생께서는 당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친구들부터 서얼, 상인, 거름 장수 등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었지요. 그렇게 친구를 중요시했던 이유가 있나요?


연암 선생: 물론, 친구는 제2의 나라고 할 정도로 나의 분신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고민녀: 아무리 그래도 분신까지는 아니지 않을까요? 부모형제도 아닌데.


연암 선생: 그건 반쪽만 아는 것이지. 사람은 각자 개성이 다양하지 않느냐, 그중에서도 나를 중심으로 둘러싼 친구들은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나와의 인연이 닿아 흘러온 사람들 아니더냐. 세상에는 우연인 듯 보여도 우연인 것이 없는 바, 그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내면에 숨겨진 다양한 면모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친구와 나, 이렇게 개별 된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깊이 따져보면 친구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걸 세. 내가 미처 몰랐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친구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어떻게? 친구와 함께 지내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지 않느냐? 꼭 함께 즐거운 시간만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 토론을 하다 보면 때로는 다른 의견 때문에 대립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러나 뜻이 통하면 애인처럼 내 것을 통째로 내주고 싶은 때도 있고, 친구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때로는 부인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친구에게 할 때도 있지 않느냐?


여하튼 그렇게 다양한 상황을 함께 맞닥뜨리면서 나타나는 나의 반응과 친구들의 반응을 보며 서로 다르지 않음을 깨닫지. 결국, 사람은 다 비슷하다가는 것을 친구를 통해 알 수 있으니 어찌 친구가 제2의 나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착해서 당기고 나빠서 버리는 것이 아닌 철저히 너와 나 사이의 관계. 친구가 제 아무리 범죄인이라고 해서 나와의 관계에 우정을 이어진다면 그 사람은 나의 친구지. 어떤 친구가 제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해도 나와의 관계에 우정이 없다면 그건 객체일 뿐이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 철저히 나와의 1:1의 관계성 속에서 지속되는 우정, 그것을 나누는 사람이 친구란다. 그래서 나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민녀: 그래도 관계를 맺으면서 부딪침도 일어나잖아요.


연암 선생: 당연하지.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났는데 부딪침이 일어나는 것은 필연적이지.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어떻게 관계를 진전시키느냐에 달렸지. 사람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면으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다른 면 때문에 서로를 깎아 내기라도 하지. 그러면서 상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잖아? 하지만 실은 깎아지는 면은 내가 튀어나오는 부분이라 상대의 모난 면으로 나의 모난 면이 깎이는 거라네. 나의 모난 면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나의 일부분이었으니까 깎여지는 과정에서 고통이 따르는 법이야. 그래서 누군가는 상대를 비방하는 것으로 그 상처를 메꿔보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아예 그런 부딪침 자체를 피하고 사라지지.


벗과의 사귐 속에 깨달은 것은 좋은 면을 보고 친구가 된 경우에는 반드시 그것을 상쇄시킬 만큼의 안 좋은 면도 있기에 환상이 깨지는 절차를 거치게 되고, 안 좋은 면을 보고 처음에는 꺼려했던 자라도 사귀다 보면 장점이 드러나게 마련이더군. 그런데 친구가 되는 과정은 그런 탐색의 시기를 지나 서로의 이런 점도 저런 점도 이해하여 알아서 피하기도 하고 보태 주기도 하는 과정에 도달해야 어느 정도 관계가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지. 요즘 시대에 인간관계가 발전하기 어려운 것은 사람의 달콤한 면만 취하고 더러운 면이나 어려운 면은 나 몰라라 하니까 그 정도에서 그치는 것일세. 나 같은 경우는 친구들에게 참 고맙지.


나 같은 경우 친구가 많을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 덕분이지. 내가 농담도 잘하고 유쾌한 면이 있긴 하지만 고집에 있어서는 누구도 나를 꺾을 자가 없지 않으냐? 게다가 성격도 그리 좋은 편은 아니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얼굴에 금방 표시 나거든. 이야기를 하다가도 탐탁지 않아하는 사람이 내 얘기에 끼어들면 말을 하다가도 그만두거든. 심지어 돌아앉기도 하는 게 나니까. 그래서 나를 떠난 친구들도 많지. 나라고 관계를 잘한 것은 아니었어. 다만, 한 번 깊게 관계를 맺으면 그것이 평생 간 경우이지.

고민녀: 말씀이 나와서 말인데 친구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사귀는 데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을 아까워한다고 할까요?


물론 선생님처럼 깊이 사람을 사귀는 것을 보면 부럽기는 하지만 그렇게 까지 인간과의 관계를 깊이 맺는 것에 대해 두렵기도 하고, 귀찮기도 합니다.


연암 선생: 사람이라는 것은 작아 보여도 하나의 소우주라 할 수 있는 데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려면 우주를 움직이는 것과 같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사람 만나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외롭다고 말하고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시키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우울하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철없는 소리란 말일세. 하물며 동물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는 꾸준히 먹이를 가져다주고, 쓰다듬어 주고 보살펴 주어야 하거늘 인간과의 관계는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요즘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친구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구를 해소시킬 상대 그러니까 나의 이기심을 해소시킬 상대로 상대를 찾는 것이더군. 물론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관계에 있어 어느 정도 교환의 성격을 띠는 것은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그 기본은 우정이 깔려 있어야 하는 바, 기본이 나의 이기심을 배출구인지 아니면 우정이 깔려 있는 가운데 내가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관계인지 잘 생각해보기 바라네.


인간과 인간의 만남은 참으로 거대한 만남인데 언제부터 이 만남이 귀찮은 것이 되어 버렸을까? 만남을 통해서 세상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다양한 창조가 일어나는 법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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