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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 직장도 사람이 모인 곳인걸

고민녀: 선생님,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일이 중첩될 때가 있습니다. 업무를 구분 짓기 어렵다고 할까요. 동료들은 그런 때 적당히 눈치를 보며 다른 사람에게 슬쩍 일을 넘기곤 하는데 저는 미련하게 그 일을 받아서 일을 합니다. 문제는 이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저한테만 일이 몰리는 겁니다. 갑자기 못하겠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 것 같고 계속 받자니 힘에 부치고 어떡하면 좋을까요?      


연암선생: 젊은이는 착한사람이군. 근데 그것도 일종의 자기기만이야. 본마음은 나도 편하고 싶잖아. 그런데 순수한 마음에 괜한 의무감 같은 걸 지고 있구만.      


연암선생의 직설적인 표현에 고민녀 얼굴 붉어지고, 연암 선생 상관 않고 말, 이어간다.      

연암선생: (따뜻하게) 그럴 필요 없어. 자네가 정말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또 자네가 해야 할 역할을 잘 하고 있다면 불필요하게 여러 가지 일을 떠맡을 필요는 없다네. 자신감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 생각되는데. 혹시 회사에 들어간지 몇 년이나 되었나?


고민녀: 이제 일 년 되었어요.     


연암선생: (고개를 끄덕여주며 어루만지듯) 회사에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되면 주변 사람들 눈치도 보게 되고 나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고 그렇잖아? 그래서 괜히 ‘난 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데 그거 피곤해. 회사에서 자네를 고용할 때 하라고 한 일이 있지. 그것만 열심히 해도 안 잘려. 문제는 그것 외에 여러 가지 기웃거리다가 결과가 안 좋지? 그러면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하지. 자네가 좋은 마음으로 여러 가지 일을 떠맡았는데 잘 처리를 못했다? 그러면 그것만 기억한다 말일세.      


고민녀: 맞아요. 그래서 섭섭 합니다.      


연암선생: 다들 자기 일에 바쁘니까. 조직은 그런 곳이야. 기계의 부속품처럼 각자가 한 부분을 맡아 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유기적으로 볼 줄 모른다구. 유기적으로 보면 어디에 과부하가 걸려있고 누가 힘들어하고 이런 게 보여야 하는데 어디 윗사람이 그런 것을 잘 봐주나 그래?      


원래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이 흐름을 조절하는 것이지. 하지만 현실은 내가 쓰러지면 그대로 나가떨어지는 야생의 세상 아닌가. 그래서 우선은 냉정하게 조직이라는 곳이 어떤 데인지를 파악하고 내 몸을 지키란 말일세. 그렇다고 다른 사람한테 기대고 술수를 쓰더라도, 주변이 황폐해지더라도 기필코 살아남아라! 이런 말은 절대 아니고. 내 일에 충실하고 그런 다음 여유가 생기면 그때는 좋은 마음으로 ‘그래 이 형님이 너희들 꼼수 부리는 거 아는데 내가 그냥 한다.’ 이렇게 하는 거야. 지금은 불안해보여. 여유롭게 저 위에 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게 아니라 놀란 토끼마냥 겁을 집어먹은 상태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다가 불안한 마음에 일을 떠맡는 거니까.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내 일도 못 지키게 되는 수가 있어.     


고민녀: 맞아요, 지금 제가 하는 일에 차질이 가게 생겼어요.       


연암선생: (난데없이 배를 툭툭 친다) 자네에게 필요한 것은 배째라 정신이야. 내가 목숨을 내 놓고 배째라 정신을 보인 때가 있어. 그것도 임금 앞에. 홍국영이가 나를 위협하려고 들 때에는 연암협으로 은거했는데 임금한테는 오히려 배짱을 부린 거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내심 왕을 믿었기 때문이지. 홍국영이 같은 경우는 어린애와 같은 사람이어서 무슨 짓을 어떻게 부릴지 모르지만 임금은 인재를 소중히 생각하시는 분이니까. 노론세력이 새롭게 부상하는 남인세력을 공격하고 있을 때였지. 그 빌미로 남인세력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던 천주학을 문제시 삼았던 거야. 채제공, 정약용등 금상께서 아끼던 인재들이 남인세력이었어. 이대로 있다간 안 되겠다 싶었던 금상께서는 문체반정이라는 수를 썼다네. 남인 계열 학자들이 서학에 몰두하는 풍조를 비판하고 노론과 소론계열의 학자들에게는 패관 소품체(각주넣기)를 문제 삼아 반성문을 지어 올리라고 했지. 임금이 반성문을 쓰라는 데 안 쓰고 못 배기겠지?      


그런데 난 끝까지 안 썼어. 나만 안 썼나? 내 벗들도 안 쓰더군. 당시 초계문신이었던 이서구는 대책을 써서 정조의 문체반정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제자였던 박제가는 반성문인 것처럼 글을 올렸지만 알고 보면 문체반정 비판하는 내용이었고, 이옥은 문체반정 때문에 귀양까지 가면서도 끝끝내 자기 문체를 포기하지 않았지. 작가에게 문체라는 건 자신을 나타내는 거거든. 그걸 포기하라는 건 개성을 죽이는 일이지. 글 쓰지 말라는 것과 똑 같아. 남들과 같은 글 쓸 바에 뭐 하러 글 쓰나? 베끼면 되지. 하여튼 나는 끝까지 반성문 제출 안했다네.


 그 후 어떻게 된 줄 아나? 금상께선 오히려 나라에 필요한 제문을 짓게 하고 면천군수자리까지 주더군. 당시에 임금이 시키는 데 안 하면 그건 반역이었지. (목 잘리는 시늉을 해 보인다) 목이 날아가는 상황이었네.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 글쟁이들은 끝까지 문체를 사수했지. 자네가 그 일 안한다고 해서 회사에 어떻게 되는 게 절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고 이제라도 못하겠다고 말해. 그 순간은 창피할 수도 있어 하지만 지나면 괜찮거든. 분명하게 본인의 선을 그으면 상대도 헷갈리지 않으니까. (다정하게)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자네가 힘들어하는지 모르네.      


고민녀: 예에, 힘들어 하는 걸 표시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연암선생: (고개 끄덕이고) 잔소리 하나 더 하면 마음에 상처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자넬 생각해서 하겠네. 착하고 싶은 마음의 깊은 곳엔 사실 착하지 않은 마음이 있어. 그게 무슨 소리냐고? 나는 이렇게 좋은 사람이다. 자네들이 그걸 알아줬으면 한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은 욕망이 있는 거니까. 굳이 나서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쩌면 자네보다 한 수 위 일지도 몰라. 그런 욕망 따윈 예전에 버린 거지. 처음엔 자네처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시도를 했을 수도 있어. 그러다가 어느 순간 터득한 거지, ‘아 소용 없구나’ 그러면서 마음으로 비운거야. 누군가에게 잘 보이겠다는 욕심을 버린 대신 내가 하고 있는 일이나 잘 사수하자. 귀찮은 일이 생기면 최대한 밀어내자. 이런 사람들 꼴사납지. 


자기가 힘든 일 맡아서 해도 될 만큼 노련한 사람들이거든. 그래서 결국 귀찮은 일은 조직에서 제일 약한 애, 착한 애한테 가는 거라네.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 그 일을 떠맡게 된 이유를. 마음속에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으로 하게 되었다면 상대는 귀신같이 그걸 알고 이용하려 들지. 그러니까 그 마음을 버리게. 그 마음을 버린 다음에는 그 일을 떠맡는 다고해도 예전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지는 않을 거야. 이미 슬금슬금 눈치 보는 애들을 넘어선 거니까.       


고민녀: 선생님 말씀이 맞아요. 잘 보이고 싶단 생각이 있었어요.      


연암선생: (안타까워하며) 못하겠으면 못하겠다고 해. 단, 감정을 섞지는 말게. 걔 중엔 자네 상황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사람도 있을 걸세. 사람 사는 덴데 안 그래? 아까는 자네한테 힘을 실어주려고 과격하게 말했지만 넓게 생각하면 사람 다 불쌍하거든. 일 안 떠맡으려고 하는 사람들도 상처 입은 경험이 있으니까 안 떠맡는 것이고 자네는 아직 학생시절의 순수함이 남아 있어서 능력 밖의 일임에도 하겠다는 건데 그게 다 불쌍한 거지. 한쪽은 경험이 너무 많아서 앞으로 못 나아가고 다른 쪽은 없어서 안 나가도 되는데 굳이 앞으로 나아가는 거고. 허허, 그런 식으로 사람은 성장하는 거라네. 성장하고 나면 자네를 괴롭혔던 사람, 알고 보면 짠하지. 미운사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네. 


하늘의 뜻이 인간의 입을 통해 전달된 것이더군. ‘쯔쯔 저게 뭐라고 저렇게 몸을 사릴까?’ 이런 생각이 들지. 처음에는 밉다가도 안됐기도 해, 그러면 대신 맞아줄 수도 있는 거지. 그걸 또 사람이라면 누가 알아주길 바라. 그러진 말고 그냥 보시하는 마음으로 해. 그럼 네 덕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까.     


사회자: 답변 감사합니다, 선생님. 뭔가를 할 때는 빈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고민거리 있으신 분 손들어 주세요.     



출처: 이것이 조선브로맨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8989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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