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을 기다리다 - 봄밤, 서촌




서촌이라고 하면 보통 경복궁 서쪽에 위치해 있어서 서촌이라고 하잖아요. 북촌은 권세 있는 양반들이 살았던 곳이라면 서촌은 현직에서 물러난 양반들과 중인들이 살았다고 해요. 처음엔 서촌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이곳에 왔는데 이상하게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뭐랄까 예술의 향내도 느꼈고요 알고 보니 이 일대에 천재 작가 이상, 윤동주 시인, 천경자 화가, 노천명 시인, 이상범 화가, 박노수 화가 등이 살았더라고요.


조선 시대 때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곳은 다양한 계층의 지식인이자 문화예술인들이 한 데 어울려 살았던 곳이었더라고요. 그런 분위기가 지금까지도 이어져 공간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의동이나 장동이라고 불렀고 요즘에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고 하여 세종마을이라고도 불러요. 저는 서촌이 중인들의 마을이었는가? 하고 알고 있었는데 공부를 해 보니 그렇지는 않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거주민들의 신분이 점차 다양화되었더라고요.


조선초기에는 궁궐 옆이라서 일반인들은 살 수 없고 왕족들이 살던 곳이었다고 해요. 광해군 시절이 끝이 나면서 일반 백성들이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고 서촌 북쪽 지역에는 안동 김씨 일가들이 살았다고 해요. 조선 후기 안동 김씨들의 세도가 엄청났었지요. 이들은 서촌, 즉 장동일대에 모여 살면서 자신들은 장동 김씨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장동 김씨들의 세도가 엄청났던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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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은 한양이 생기고 나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오래된 세월만큼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 만큼 가볼 만한 곳도 많지요.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시작하여 대림미술관을 지나 통의동 백송터를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통의동 백송터에는 신비로운 흰색을 지닌 하얀 소나무가 있습니다. 이곳은 영조임금께서 연잉군이던 시절 살았던 곳이고 추사 김정희가 살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되기에 같은 곳에 살았을까요? 그것은 영조임금의 딸인 화순옹주의 남편이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였기 때문이지요.


백송터 일대를 둘러보신 후에는 이상의 집에 가보세요. 이 일대는 ‘맛 집’들이 많이 있으니 여러분의 취향대로 골라 드실 수 있답니다. 이상의 집은 철거될 뻔 했는데 2009년에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시민의 모금과 후원으로 매입하여 관리하고 있답니다. 전면은 통유리로 되어있고, 열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니 한 번쯤 방문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이상의집은 골목길에 평범하게 위치하고 있어서 서촌에 이사 오고 여러 번 지나쳤음에도 특별한 곳인지 몰랐답니다. 그 만큼 서촌이라는 곳은 곳곳에 뜻하지 않게 여러 가지 보물들을 마주하는 순간이 많아요. 그것이 매력이지요.

이상의집에 들른 후에는 이상범가옥에 가보는 것을 추천해요. 동양화가 이상범 화백이 살았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옥모습을 하고 있어 역사적 가치도 있답니다. 이 곳 역시 평범한 골목길에 평범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어서 가정집 인줄 알았답니다. 이쯤 오면 배가 고파져요, 그러면 저는 여기서 가까운 서촌 스코프나 효자베이커리에서 빵을 사먹는답니다. 스코프는 스콘이 유명 한데 저는 레몬케이크를 자주 사먹어요. 시면서도 달달한 맛이 입맛을 확 사로잡거든요. 효자베이커리는 콘브레드가 유명해요. 유명한 만큼 이곳에 살고 있음에도 여러 번 발걸음 후에 겨우 살 수 있었는데, 옥수수 알갱이가 들어가서 담백하고도 고소하면서 달달한 맛이었답니다.


효자베이커리에서 통인시장으로 가지 말고 윗동네로 올라 가다보면 자수궁터가 나와요. 지금은 군인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이곳은 조선 태조의 일곱 번째 아들 무안대군이 살던 집터로 문종 때 세종대왕 후궁들의 거처로 삼은 이후 궁궐에서 나온 후궁들이 살았다고 해요. 이것만 보아도 서촌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알 수 있죠. 하지만 오래된 만큼 아픈 역사도 간직하고 있어 공간의 역사는 그저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와 어우러져 의미를 자아내는 것 같습니다.

조선 초에는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기도 하고 왕족들만 주로 살았다면 조선 후기에는 외척인 안동김씨, 여흥민씨, 파평윤씨등이 서촌 일대를 주름잡았지요. 순종의 왕비, 순정효황후의 아버지 윤택영, 형제 되는 윤덕영은 황후의 큰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한일합병 때 순정효황후의 치마폭을 뒤져 옥새를 찾아 한일합병이 이루어지는데 협조한 인물입니다. 한때 서촌일대는 모두 그의 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은 불타 없어진 벽수산장이 그의 집이었답니다. 중세 귀족들이 사는 성처럼 휘황찬란한 뾰족탑이 있는 건물이었다고 해요. 백성들의 눈물로 지어진 집이라서 그럴까요, 1966년 화재로 소실되었습니다. 박노수 가옥도 윤덕영의 딸을 위해 지어진 집으로, 벽수산장 부지 내에 지어졌다고 하죠. 벽수산장 입구에 있던 돌문은아직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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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 왔으면 수성동계곡을 빼 놓을 수가 없겠죠. 하지만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가는 길에 시인 윤동주의 하숙집도 둘러보세요. 물론 안에까지 들어갈 순 없지만, 그가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에 머물렀던 곳이니까요. 고향인 용정을 떠나 1938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한 윤동주는 1940년 하숙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사실, 시인 윤동주의 집안에서는 그가 연희전문 문과에 다니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고 해요. 의대나 법대를 가기를 원했지만 윤동주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연희전문의 자유롭고도 민족주의적인 분위기를 동경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연희전문에서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조선어를 가르쳤고, 국학연구의 중심이었던 학교이기도 했답니다. 그 후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삶을 살았고 죽었는지는 여러 책에서도 언급하기에 여기서는 이정도로만 할게요.


수성동 계곡은 기린교가 유명하지요. 겸재정선(1676-1759)이 그린 <수성동> 이라는 작품에 나오는 다리로 추정되고 있어요. 기린교는 원위치에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통돌’이라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하죠. 저도 기린교를 볼 때마다 ‘옛날 사람도 나도 미래의 사람도 같은 것을 보았고 보겠지?’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사람을 바뀌어도 같은 것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조선시대에는 수성동 일대에 흐르는 계곡의 소리가 맑아서 수성동(水聲洞)이라고 불렀다는데, 그만큼 물도 시원하게 떨어졌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주 적은양의 물만 쪼르르 흐를 뿐인걸요. 기린교는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이었던 안평대군(1418-1453)의 집이었던 인왕산 기슭 수성동에 있었다고 합니다. 안평대군은 글씨에 뛰어나 당대 명필로 손꼽힙니다. 하지만 후에 형 수양대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지요.


간단하게 서촌의 역사를 굵직한 역사적 장소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어요. 이 정도의 내용은 서촌에 대해 조사하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서촌을 산책하기 전에 대략 알고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 소개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서촌을 산책하면서 찍었던 사진과 걸으면서 들었던 생각을 나누 싶어 펴낸 책이라 역사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할게요.

서촌 거주 3년차라서 서촌의 매력에 대해 섣불리 말하는 것은 이를지도 몰라요. 그래도 한 마디 하자면 걸을 때 마다 달라지는 풍경이라고 생각해요. 골목길이 많고 구석구석 숨겨진 명소나 맛 집이 많아서 여러 번 지나갔어도 새로운 곳을 발견할 때가 있고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도 여러 개가 있어서 걷는 맛이 나는 곳이라 할까요. 게다가 아침, 점심, 저녁 풍경이 다르고 날씨에 따라 거리의 풍경이 다르답니다. 서울에서 서촌만큼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맑은 하늘을 함께 볼 수 있는 곳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작지만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고 생각합니다. 서촌을 거닐면서 여러 감정들을 맛보기도 하고 마음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답니다. 이제, 제가 걸었던 길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출처: 봄밤 서촌, 부크크


서촌 걷기투어 문의는 서촌 쉬운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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