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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만나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달인' 2탄


제목이 너무 길어서 4단어로 요약한다, 일평평사 2탄!!

본론 되겠습니다.

그와의 일문일답 실어본다.  

    친구들 중에 소위 SKY 학교를 졸업하고 교수, 변호사, 유수기업 부장, 신문사 국장 등등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런 것들에 별로 꿀려하지 않고 동창회도 잘 참석하고, 심지어 친구들에게도 자주 전화가 오는 것으로 안다.  

먼저, 그런 친구들 보면 열등감 같은 감정은 들지 않느냐?

그 친구들은 노동일을 하는 그대를 보며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가?

답변: 별로 열등감 같은 감정은 없다. 그런 감정이 있었으면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부터 한 반에서 어울렸고, 내가 학창시절에 어땠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온 내력을 아는 녀석들이라 나를 무시하는 친구들은 없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지금 노동일을 한다고 해서 무시한다기 보다는 신기해하는 친구도 있고, 나의 나름대로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녀석들이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절반 정도는 이해하는 것 같다.

다만, 경제적으로 내가 여유있는 편은 아니다보니, 친구들을 만날 때 그들이 돈을 훨씬 많이 쓰는데, 내가 한 번 씩 밥을 사고 싶기는 하지만 친구들이 내 몫까지 쓴다. 그때는 조금 미안한다.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훨씬 잘 버는데. 그들도 나 보고 사라는 소리는 안 한다.

근본적으로 열등감이 없는 이유는, 사실 고등학교 때 까지는 야심이 있었다. 전교 1,2등을 한 데다가 주변의 기대가 있어서 항상 모범생으로 살았다. 그리고 그 기대를 버리지 않기 위해서 상대방의 시선에 나를 맞추려고 노력하면서 살았고 또 내가 집안의 자랑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께서 하숙비를 주시면서 우셨다. 그 돈을 마련 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집안의 걱정거리 구나!' 그 전에는 내가 집안의 자랑거리여서, 부모님의 기쁨이 되는 존재라고만 생각했지, 나로 인해서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걱정을 끼친다는 생각은 미처 해 보지 못했다. 그래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 가' 라는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마침 크리슈나무르티의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라는 책을 접했다.

그 책에는 돈, 명예, 권력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질문들이 있었는데

그 동안은 이런 것들이 가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공부를 하면 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고 또 다른 세계, 정신적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양심에 맞는 행동을 하면 나는 스스로에 대해 부끄러워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때 바로 깨달았기 보다는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가지 공부를 하고 경험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이런 결론에 이른 것 같다.

그리고 모범생의 옷을 벗어버리니까 자유롭더라. 그 후에는 타인이 나에 대해 기대하는 것 때문에 괴로운 적은 있었지만 내 스스로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별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이 점이 외려 타인과의 관계갈등에 일조를 했지만. 이제는 오히려 타인의 눈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공부가 있는 것 같다.

질문: 교수 친구에게 거의 매일 전화가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는 왜 선배님께 매일 전화를 하는 것 같으냐?

답변: 그는 어릴 때 부터 명예를 중요시 하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사는 나를 신기해 하는 것 같다.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지만 내심으로는 부러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2. 대학시절 특이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던데, '요정' 이라고....거기서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줄 수 있는가?

여자란 무엇인가. 여자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너무 궁금해서 그 곳에서 일을 했다. 일한 기간은 한 달 정도 밖에 안 되었지만 그 경험으로 인해 여자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다. 결론은 여자들은 남자들과 신체적인 구조와 의식구조가 약간 다를 뿐 그들도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소리지만, 그때에는 환상이 있었다.

손님들이 있을 때는 아주 아름답고 애교있는 모습의 그녀들이었지만 뒤에서는 머리 뜯고 싸우고, 그 밖에 여러 가지 면들을 보았지만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처럼 비춰질까봐 생략하겠다.

3. 백수도 되었다가 노동일도 했다가 회계일도 하고, 일을 경계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가리지 않고

하더라. 그리고 오랫동안 백수였던 적도 있는데 별로 걱정하는 눈치가 없더라.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냐?

답변: 물론 걱정은 된다. 그런데 어렸을 때 '사람은 태어나면 자기 숟가락은 자기가 가지고 태어난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어린 마음에 그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무의식에 박혔다.

어린 시절 (그때는 다들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선배는 6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유년기를 보낸 분이다.) 대학교수 였던 삼촌이 있었다. 일년에 두 번 정도 용돈을 주셨는데 동생은 그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했고, 나는 받자마자 쓰는 쪽이었다. 그런데 동생은 그 돈을 항상 다른 사람에게 뺏겼다. 그때 어머니가, 쓰는 쪽이 잘 사는지, 모으는 쪽이 잘 사는지 보자고 하셨다. 그때 나는 돈이라는 것은 쓰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 돈에 대한 꿈을 자주 꾸었는데, 욕심만큼 돈을 모으다 보면 그 돈이 낙엽이 되어 있는 꿈을 꾸었따. 한 번이 아니고 여러 번 꾸었다. 그래서 돈이라는 것에 대해서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돈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을 안 한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래에 대해 내가 너무 대책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또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이 귀찮아서 또 먹고 싶은 것은 사고, 쓰고 싶은 것은 쓴다. 그렇다고 낭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돈이 없으면 희한하게 또 어디서 먹을 것이 들어왔다. 직장에 잘려도 곧 또 어디선가 일거리가 나타나곤 했다. 그 후로는 별로 걱정을 안하고 산다.

4. 풍족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유기견을 키우고, UNICEF 기금을 내는데, 그게 부자라도 마음내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떻게 그러는가?

그냥 예전에는 수입이 너무 없어서 도울 수가 없었는데 이전 부터 수입이 있으면 나눠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별로 나눈다는 생각도 없다.

5. 보면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원천이 무엇인가? 신기하다.

나는 조물주님의 아들이다라고 생각한다.

질문: 그렇게 따지면 모두 조물주님의 아들 아닌가?

답변: 그렇다. 그런데 그것을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자신감의 깊이가 다르다.

질문: 음, 보통 사람들은 나만이 그 분의 아들이어야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데, 선배님은 모두가 조물주님의 아들이고 나도 그러한데, 자신감이 생기는가?

답변: 근본적으로 나는 조물주님의 아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감이 생긴다. 일종의 맡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조물주님 아들이다. 나를 당신께 맡김니다. (태어났으니 먹여는 살려주시겠지....) 그러면 정말로 먹고는 산다. 또 꽤 행복하게 산다.

질문: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보통 사람들 눈에는 좀 뻔뻔하게 보이기도 한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너무 당당해 보이니까. 보통 사람들은 자잘한 문제로 괴로워하는데 마! 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 하면서....그 모습이 오해를 사는 것 처럼 보인다.

답변: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은 내가 몰랐다. 사실 나는 자잘한 감정은 없는 편이다. 큰 줄기에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면 그대로 행동하는 편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감정을 잘 몰라서 일상에서 부딪침이 있는 편이다. 인정한다.

질문: 자신감의 원천이 조물주님의 아들이다라는 것 말로 또 있을까? 우리들한테 좀 와닿을 만한 걸로

답변: 음, 옷을 많이 벗었다. 어릴 때는 모범생이라는 옷을, 또 괜찮은 가장이 되어야 한다는 옷을,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우리에게 준 옷들을 나는 많이 벗었다. 그래서 사회적인 눈으로 보면 나는 참 못났다. 그런데 그 옷을 던지니까 자유롭더라. 걸림이 없다.

질문: 그것도 신기하다. 옷을 던져버려서 자유롭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를 보호해 주는 옷이 되기도 하는데 선배님은 자유로움에 비중이 훨씬 높은 것 같다. 부럽다.

6. 요즘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답변: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일을 해라.

질문: 너무 교훈적인 이야기 아닙니까?

답변: 나는 사회적으로 봤을 때 보잘 것 없는 사람이다. 노동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사실은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 일 밖에 없어서 시작하게 된 것도 있는데, 처음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몸을 잘 쓰지 못하니까 실수를 할 까봐. 그런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별로 없는 편이다. 원래. 그리고 머리 쓰는 일을 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비슷한 돈을 준다면 나는 노동일을 선택하겠다.

왜냐하면 사람이 땀을 흘려 일을 하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회사에서 사무일을 보면, 목적(주로 돈)을 위해 때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때가 있다. 그리고 회사 내에서의 암투 질투, 패나눔 이런 것들이 스트레스를 주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몸쓰는 일은 정직하고 마음이 편하고 몸도 건강 해 지더라.

요즘 청년들은 보면 안타까운 것이

물질이 너무 풍요로워져서 더 이상 올라갈 것이 없다보니까

목표의식을 상실한 것 같다.

우리가 젊었을 때에는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 목표의식이 있었고, 의욕이 있었다.

요즘 젊은 이들은 '허무'한 감정에 빠진 것 같다.

너무 사회가 발전을 하다보니까

또 타인이 모든 것을 대신 해 주다보니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자존감이

우리 때 보다 떨어진 것 같다.

내가 아주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생 선배로서 그 동안의 경험을

반추해 보면,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몸을 가진 존재이니까 몸으로 체득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몸이라는 것은 단순히 육체노동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고 실제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운동이든, 취미활동이든 자신이 스스로 이루어낼 수 있는 무언가를 잡고 꾸준히 해 보기를 바란다.

그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또 몸 자체를 움직이는 것도 중요하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내가 명상을 하며 배운 것은 10% 생각에, 20%는 감각에 30%는 감정조절에 40%는 행동하는 데

쓰라고 들었다.

질문: 그러면 작가들은 어떡하냐? 생각하고 글 쓰는게 직업인데.

답변; 그러니까 글 써야 하는데....하고 생각하는 것은 10%로 하고 실제로 쓰는 것은 행동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머리를 쓰는 것도 사실이니까 걷기도 많이 하시라!

인터뷰를 끝내면서, 자신은 나눌 이야기가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이 쑥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분야에서는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확인하며, 그의 이야기가 요즘 MZ 세대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시대를 앞서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다 가는 평범한 길을 선택하지 않고, 과감하게 그 노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길을 살아갔던 선배이다.

지금은 노가다, 사무직, 백수의 경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자유자재로 왔다갔다 하며

걸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 처럼 보였다.

그를 '달인'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나는 그의 집에서 '밥'을 자주 얻어 먹는다.

고미숙님의 말이 맞다.

공부를 하는 것 만으로도 어디선가 먹을 것이 생긴다고.

나도 그것을 체험하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 문제는 '순환'이 문제이지 절대적인 빈곤이 문제인 것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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