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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완 Jan 30. 2021

토요일의 인사


 늘 흔적을 지우고 싶어했다. 누구보다도 세상에 짙은 흔적을 남기고 싶으면서도, 내가 서성인 발자국들을 보는 게 힘들어서 다 지우려 했다. 역시 나는 시큰한 어금니의 버려진 신경줄 같은 것, 모르는 새 썩고 만 너무너무 소중한 내 살점의 일부야. 나를 버리고 싶으면서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고 싶다. 먼저 팔 벌려 안아줄 사람, 상투적이지 않은 말로 나를 들여다볼 사람, 그게 내가 되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것도, 어쩌면 한참 이른 것도 같아서, 더더욱 진해지는 서글픔. 때이른 마음과 때늦은 후회 때문에 나는 25년 내 삶을 얼마나 괴롭혀왔던가. 그래도 나를 사랑해야지.


2020년 12월 30일 22시 26분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날마다 나아지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대부분 퇴보하고 있는 것 같다. 의지나 능력이나. 금전적인 요소를 활용해 강제로라도 꾸준히 진행하는 병원 상담 같은 부분만 그나마 제자리걸음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난 어떻게 될까. 예전엔 분명 적어도 마흔 살에는 죽을 거라고 장담하며 살았는데 그때보다 마흔에 빠르게 가까워지는 요즘은 아무것도 모르겠다. 삶에서 단언할 수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왜였을까. 내가 마흔에 죽으려고 했던 건. 그때 마음 편하게 죽기 위해 이런 저런 것들을 조금씩 이뤄놓자고 생각했던 게 계획대로 안 되어서 플랜을 고쳤나. 아니면 나는 아직도 이십 대 초반의 단상들에 머물러 있나. 조금 전 언니와 생각 없이 사는 방법에 관해 깊이 탐구했는데, 그 자체로 이미 실패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도 그렇다.

 뭘 하나 원하는 대로 이뤄본 적이 없다. 누구나 그럴지도 모른다. 아주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면. 그러면 나는 왜 특별해지고 싶었던 걸까. 행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왜 행복하려고 했나. 더 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왜 더 살고 싶어지려고 했을까. 세상에는 사랑하는 것들이 너무 많고 그들을 놓아버리기에 내 마음이 너무도 약했던 탓이다...

 뱀발. 오늘 진료 받으면서 근황을 이야기했더니 너무 압박감을 느끼지 말고 푹 쉬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런데 나는 완전히 쉬는 법도 완전히 열렬하게 노동하는 법도 모른다. 모르는 게 너무 많고 그 방법을 다 배우기엔 힘이 든다.


 나는 나를 늘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늘 알 수 없는 방해자가 나와 나를 떨어뜨려놓고 발걸음 한 폭 남짓한 꼭대기에서 나와 나의 줄다리기를 시키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 그것이 나의 마음 속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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