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는 '불친절한 용어들'

PM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by Wayne

가상자산 거래소 PM으로 일하며 가장 많이 마주한 고민은 '바꿀 수 없는 용어'와의 싸움이었습니다. '트래블룰(Travel Rule)', 'FDS(이상거래탐지시스템)', 'UID(User Identification)'.


이 단어들은 법적 규제나 시스템의 핵심 로직과 맞닿아 있어, 기획자가 임의로 "쉬운 말"로 바꿀 수 없는 성역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처음 사보는 60대 고객에게 이 단어들은 공포스러운 '외계어'나 다름없습니다. 용어를 바꿀 수 없다면, PM은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요?


1. 트래블룰: '규제'가 아닌 '과정'을 시각화

'트래블룰'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송금자와 수취인의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용어 자체를 바꿀 순 없었지만, 고객이 겪는 막막함은 해결해야 했습니다. 고객들이 힘들어하는 진짜 이유는 '트래블룰'이라는 단어 때문이 아니라, "그래서 지금 내 돈이 어디에 있고, 내가 뭘 해야 하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화면에 트래블룰이라는 단어만 띄우는 대신, 진행 상태(Progress)를 시각화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현재 트래블룰 심사가 진행 중입니다"라는 문구 아래에, 거래소 전송 중 -> 수취인 정보 확인 -> 입금 완료와 같은 단계별 프로세스 바를 추가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각 단계마다 "지금 상대 거래소에서 고객님의 이름을 확인하고 있어요"라는 보조 설명(Tooltip)을 달면 상황이 투명하게 보이자 고객들의 불안감과 CS 문의는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2. FDS: '차단'이 아닌 '보호'의 메시지로

"FDS에 의해 출금이 차단되었습니다." 이 팝업을 본 고객은 자신이 범죄자가 된 듯한 불쾌감을 느낍니다. FDS라는 시스템 용어는 바꿀 수 없지만, 그 상황을 전달하는 톤 앤 매너(Tone & Manner)는 바꿀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 차단함"이 아니라 "우리가 보호함"으로요. "고객님의 소중한 자산 보호를 위해, FDS가 잠시 출금을 멈췄습니다. 본인이 맞다면 아래 버튼으로 안전하게 인증해 주세요." 기계적인 통보가 아니라, "누군가 해킹을 시도하는 것 같아 우리가 막아주었다"는 뉘앙스를 전달하자, 고객들은 FDS를 '장애물'이 아닌 든든한 '안전장치'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용어는 그대로 FDS였지만, 고객이 느끼는 감정은 '분노'에서 '안도'로 바뀌지 않을까요?



3. UID: 외우게 하지 말고, 복사하게 하라

상담이나 이벤트 참여 시 꼭 필요한 'UID'는 길고 복잡한 숫자라 외우기가 불가능합니다. 많은 앱들이 이 정보를 마이페이지 구석에 숨겨두곤 합니다. 저는 여기서 '접근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UID라는 낯선 용어를 고객이 굳이 이해하거나 외우려 노력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대신 UID가 필요한 순간, 가장 찾기 쉬운 곳에 '복사 버튼'을 배치한다면 어떨까요? 마이페이지 최상단, 내 이름 바로 옆에 UID를 배치하고 클릭 한 번이면 복사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고객이 "UID가 뭐예요?"라고 묻기 전에, "아, 이거 누르면 되는구나"라고 행동하게 만든 것입니다. 어려운 용어를 설명하는 최고의 방법은, 설명할 필요도 없이 직관적인 UX를 만드는 것이었으니까요.



PM은 기술과 사람 사이의 '완충재'

가상자산 거래소에서의 경험을 통해 제가 배운 것은, PM이 항상 모든 것을 뜯어고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어려운 용어, 복잡한 로직)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사용자가 넘어지지 않도록 친절한 발판(Interface)을 깔아주는 것이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규제와 기술이라는 딱딱한 뼈대 위에, 사용자를 배려하는 말랑말랑한 살을 붙이는 것. 그것이 제가 정의하는 핀테크 PM의 진짜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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