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었다면 도쿄를 갈 일도, 엽서를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충동
충동은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욕망처럼 아무렇게나 뻗치는 가지도 아니다. 그러지 않아도 되는 일. 한참 동안 엽서 한 장을 고르는 동안,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구나 느끼면서, 내가 유독 시간에 대한 표현을 많이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따금씩, 오랜만에, 모처럼, 늘 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여전히,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설명하기 위해서라면, 내가 가지고 싶어 하는,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충동적으로 홍대에서 지하철을 내려 합정까지 거리를 걷는다. 11월 중순의 차가운 공기, 계속 걷다 보면 따뜻해질 것이다. 하지만 실은 마주오는 햇살이 눈부셔 용기 내어 걷는다. 만약 햇살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서둘러 걸으며 이미 걷기를 마쳤을 것이다. 느긋하게 걸으며 용기라는 것을 갖다 붙이기에 딱 어울릴 만큼 강한 햇살은 잠깐의 충동 덕분이다.
2월 말의 도쿄는 걷기에 좋았다. 2주 동안 머물던 친구의 집은 ‘나카메구로’라는 걷기 좋은 동네였고. 그렇기에 매일같이 비슷한 동네를 비슷한 시간에 걸었다. 그중에서도 멀지 않은 신주쿠에 복잡한 횡단보도 위를 걸으며 마주치는 햇볕이 좋았다. 빌딩 사이로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는 그림자가 긴 빛이 기복이 심한 내 삶처럼 아름다웠다. 기가 막히게 그 타이밍에 흘러나온 노래 Al green의 Tired being alone.
할 일을 쫓아 바삐 지나는 사람들 속에서 하릴없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걸으며 ‘좋아. 해마다 2월 말이 되면 도쿄에 돌아올래. 햇볕을 받으며 걸어야지’라고 다짐했음에도 한일관계 악화로 관광비자가 없어지고, 코로나로 일본을 갈 수 없게 된 지 2년. Now or never.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충동이 아니었다면 도쿄를 갈 일도, 엽서를 살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결국 기억나는 것은 맥락 없이 우연한 충동이 이루었던 것뿐이라는 게 신기하다. 충동이란 흔하지 않기에 충동이 생기면 늘 그쪽으로 갔고 여기까지 왔다. 나의 이상향은 충동에 따라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 이상형은 나와 함께라면 언제든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사람. 몇 걸음 지나 고개를 돌린다고 해도 확신을 가지고 먼 외딴곳으로 떠날 수 있는 충동은 얼마나 로맨틱 한가.
충동이라는 것은 대게 무책임하고 스쳐 지나야 할 것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만 내게는 그 무엇보다 귀한 잠깐의 좋은 향기와 지표 같은 것이고 나는 그 향을 쫓아 지구의 끝까지 가고 있다.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미용실에 들렀다가 늦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자다가 배가 고파져 저녁을 먹으러 가며 쓰는 충동적인 글.
질문) 글쓴이의 MBTI와 그 이유를 서술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