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족을 꿈꾸는 30대 부부의 은퇴 설계 리포트
작년 봄, 어느 일요일 저녁 아내와 나는 동네 카페에 앉았다.
우리는 함께 노트북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 1년간의 가계부 데이터와 은퇴 플랜 시트가 엑셀에 빼곡했다. '2028년 4월 = 경제적 자립'이라는 목표까지 남은 시간은 3년 남짓인 시점이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생활비는 과연 현실적인지 따져보기로 했다. 당시 나의 계산은 어느 정도 세팅이 되어 있다고 생각했으나 오판이었다.
일단 물가는 고려했다. 매년 3% 상승을 전제로 했다. 평균 투자 수익률도 보수적으로 잡아놓았다. 당연히 이 투자 수익률에는 재산세, 배당세, 양도세 등 세금도 반영되어 있었다. 매년 납부해야 하는 국민연금도 최소납입 신청을 기준으로 적용했다. 아내와 나의 보험료와 2년마다 한 번씩 있을 건강검진료도 계산해 넣었다. 이쯤 하면 되지 않았을까?
재작년 우리는 이 구체적인 목표를 향해 성실히 달렸다. 그런데 내 브리핑을 듣던 아내가 불쑥 뼈 때리는 질문을 던졌다.
오빠~ 이 예산에 건강보험료는 포함된 거야?
브리핑에 바쁘던 내 입이 순간 멈췄다. 건보료? 아 참 그렇지.. 건강보험료가 있었다.
사실 직장인인 지금은 월급에서 건강보험료가 알아서 빠져나가니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나오면? 은퇴자에게 건보료는 어떤 기준으로, 얼마나 부과되는 걸까? 나는 이 건강보험료의 정체는 알고 있었지만, 사실 가벼운 수준이라 여겼던 것만 같다.
그날 밤, 나는 파이어족 네이버 카페에 들어가 '건강보험료' 관련 글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엄청나게 많은 글들이 검색이 되었고, 건보료는 경제적 자립을 이룬 이들에게도 어쩌면 고른 길바닥에 툭 튀어나온 돌멩이 마냥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존재'였다.
건강보험료의 진실
1. '직장인'은 건강보험료의 절반은 회사가, 나머지 절반은 본인이 내며, 그 몫은 월급에서 차감되어 나온다.
대략적으로 직장인 월급 300만 원인 경우 개인이 부담하는 건보료는 월 15만 원 수준이며, 500만 원인 경우 건보료는 월 20만 원 수준이다. 월 1000만 원인 경우에는 월 40만 원 수준이다.
* 직장가입자: 보수월액(월급) × 7.09% (절반은 회사가 부담)
2. 회사를 그만두는 순간, 우리는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자동적으로 신분이 바뀐다.
가장 큰 차이는 건보료 전부를 개인이 부담해야 하며, 이를 산정하는 기준도 바뀐다. 직장인은 오로지 소득(월급)에만 비례해 보험료를 낸다. 하지만 지역가입자는 다르다. 소득은 물론이고, 우리가 깔고 앉은 재산(집, 자동차)까지 점수화되어 보험료가 부과된다.
* 지역가입자: 소득 점수 + 재산 점수(주택, 토지 등) × 점수당 단가 (전액 본인 부담)
3. 파이어족을 포함해 은퇴자에게 소득에 따라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것도 건보료일 수 있다.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해 보자. 일반계좌에서 배당을 수령하는 데 따른 건보료는 어느 정도 나올까?
현재 지역가입자 소득 부과 방식(건강보험료 7.09% + 장기요양보험료 포함, 총합 약 8%)을 적용하여 월 예상 납부액을 직관적으로 산출해 보자.
배당금 수령액에 따른 건보료 부과 시뮬레이션
연 1천만 원: 월 약 2만 원 (금융소득 1천만 원 이하는 건보료 산정 소득 제외되나 최저보험료 적용)
연 2천만 원: 월 약 13만 3,000원
연 3천만 원: 월 약 20만 원
연 4천만 원: 월 약 26만 7,000원
연 5천만 원: 월 약 33만 4,000원
연 6천만 원: 월 약 40만 원
연 7천만 원: 월 약 46만 7,000원
연 8천만 원: 월 약 53만 4,000원
연 8천5백만 원: 월 약 56만 7,000원
연 9천만 원: 월 약 60만 1,000원
연 1억 원: 월 약 66만 7,000원
그렇다면 성장주 중심으로 투자를 해 이를 처분하는 방식, 즉 자가배당을 한다면 어떨까?
해외주식의 경우 양도소득세는 22%, 배당소득세는 15.4%인데, 기본적인 사항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본다면 양도소득세의 경우는 '시세 차익'에 대해서만 부과가 되고, '배당소득세'는 배당금에 부과가 된다. 이 개념은 파이어족에게 중요한 차이다. 만약 월 현금흐름 1,000만 원을 시세차익형 주식을 처분해 마련한다면, 이 사람은 이 1,000만 원 중 차익에 해당하는 몫에만 22%의 세금, 즉 20프로 수익률을 전제한다면 44만 원을 납부하면 되는 것이며, 1,000만 원을 배당금으로 수령하는 사람은 1,000만 원 전체에 대해 15.4프로인 154만 원의 배당소득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양도소득 수령액에 따른 건보료 부과 시뮬레이션
연 1천만 원: 월 약 2만 원 (최저보험료 적용)
연 2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3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4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5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6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7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8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8천5백만 원: 월 약 2만 원
연 9천만 원: 월 약 2만 원
연 1억 원: 월 약 2만 원
다만, 주의할 점이 한 가지 있다. ETF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짠다면 이 차이를 모르면 낭패를 본다.
① 국내 주식 (예: 삼성전자, KOSPI200 추종 ETF) 매매차익 = 양도소득세
주식을 팔아서 번 돈은 대주주가 아닌 이상 양도소득으로 분류된다. 이건 건보료 부과 대상이 아니다. (비과세) 배당금: 보유해서 받은 배당금은 배당소득이다. 이건 건보료 부과 점수에 들어간다.
② 국내 상장 미국 지수 ETF (예: TIGER 미국S&P500) = 배당소득세
이게 가장 무서운 함정이다. 국내에 상장되어 있지만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주식을 팔아서 얻은 매매차익도 세법상 배당소득으로 간주한다. 즉, 생활비를 쓰려고 ETF를 팔아 1,000만 원을 남겼다면, 건보료 공단은 이를 배당금 1,000만 원 받은 것과 똑같이 취급한다. 매매차익이 쌓일수록 내 건보료 점수도 같이 올라가는 구조다.
③ 미국 상장 주식, 미국 지수 ETF (예: SCHD, VOO) 매매차익 = 양도소득세
주식을 팔아서 번 돈은 온전히 '양도소득'으로 분류된다. 연 250만 원 공제 후 22%라는 다소 무거운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지만, 양도소득은 건보료 산정에 아예 포함되지 않는다. 즉, 생활비를 쓰려고 주식을 팔아 큰 수익을 남겨도 내 건보료 점수에는 전혀 타격을 주지 않는 안전지대인 셈이다. 배당금: 단, 보유하면서 받는 배당금은 똑같이 배당소득으로 잡혀 건보료 부과 점수에 들어간다.
4. 퇴사 직후 임의계속가입 제도 신청
하지만 정부가 무작정 퇴사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지는 않는다. 임의계속가입이라는 안전벨트가 있다.
퇴사 후 2개월 이내에 신청하면, 최대 36개월(3년) 동안 직장 다닐 때 내던 보험료 수준으로 납부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다.
이 제도가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니다. 직장 시절 보험료와 지역가입자 전환 시 보험료를 저울질해봐야 한다.
자산가형 : 소득은 없는데 강남 아파트 등 고가 자산을 보유한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건보료 폭탄을 맞으므로, 임의계속가입을 신청해 예전 직장 기준의 낮은 보험료를 내는 게 훨씬 유리하다.
고연봉자형 : 자산은 적은데(전세 등) 직전 연봉이 높았던 경우.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면 소득 점수가 사라져 보험료가 확 줄어든다. 이 경우엔 그냥 지역가입자로 전환되는 게 낫다.
결국 답은 비교다. 퇴직 통보를 받자마자 건강보험공단(1577-1000)에 전화해서 두 가지 예상 금액을 뽑아달라고 해야 한다.
지금까지 건강보험료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기본 사항들에 대해 정리해 보았다.
공부를 더 깊게 파고들다 보니, 진짜 고수들은 단순히 임의계속가입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소득의 성격을 바꾸거나, 신분을 바꾸는 방식으로 건보료 시스템의 빈틈을 활용하고 있었다.
건보료를 아끼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
① 소득의 성격을 바꿔라: IRP, 연금저축, ISA 활용
이것이 현재로선 가장 강력한 치트키다. 앞서 언급했듯 이자나 배당소득은 건보료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IRP나 연금저축 같은 사적연금 계좌에서 수령하는 연금 소득은 현재 건보료 부과 소득에 잡히지 않는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은 50% 반영) 즉, 똑같이 월 200만 원을 받아도, 일반 계좌에서 배당금으로 받으면 건보료 폭탄을 맞지만, 연금 계좌를 헐어서 받으면 건보료가 0원이다. 그래서 우리는 ISA 계좌가 3년 납기 기간을 채우면 원금과 이익분을 연금저축펀드로 꽉 채워 자산을 이주시킬 계획을 세웠다. (여기에 연금저축펀드 계좌를 과세용과 비과세용 두 가지로 나눠서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다)
② 신분을 바꿔라: 투자법인 설립
지역가입자가 되는 게 두렵다면, 다시 직장가입자가 되면 된다. 남의 회사가 아닌 내 회사에서. 자산 규모가 커지면 1인 법인(가족 법인)을 설립하고, 나를 대표이사로 고용한 뒤 적정 수준의 월급을 책정한다. 이렇게 되면 건보료는 내 월급(보수월액) 기준으로만 부과된다. 개인 명의로 된 부동산이나 주식은 법인 소유로 돌려 재산 점수 부과를 피하고, 나는 직장가입자로서 예측 가능한 수준의 보험료만 내는 전략이다.
③ 떠나면 0원이다: 해외 체류 납부 예외
파이어족의 로망 중 하나는 해외 한 달 살기가 아닌가. 그런데 만약 그 기간이 길어진다면? 해외에 3개월 이상 체류하게 될 경우, 공단에 신고하면 그 기간 동안 건보료 납부가 정지(면제)된다. (단, 국내에 피부양자가 남아있다면 면제가 안 될 수도 있으니 확인이 필요하다.) 우리가 은퇴 후 포르투갈이나 일본에서 1년 살기를 한다면, 적어도 그 1년 동안은 한국에 건보료를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입국하면 다시 살아나고, 출국하면 정지되는 이 심플한 규칙도 은퇴자에겐 큰 혜택이다.
➃ 개인별 배당금은 2천만 원 이내로, 나머지는 자가배당(현금 or 주식처분)으로 현금흐름 만들기
나 또한 처음에는 부부가 각각 배당금을 생활비의 절반씩 부담하도록 세팅하려고 했다. 하지만 위에서 정리했듯, 배당소득에 따른 건보료 부담은 생각보다 크다. 가장 현실적으로는 경제적 자립 이전에 1년 치 생활비를 현금으로 마련해 두고, 적절한 타이밍을 보아가며 성장주나 배당성장주를 처분해 생활비를 여유 있게 마련해 두는 방식이다. 특히 일반계좌에서 매년 250만 원의 양도소득은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기에 이를 잘 활용하고, 나머지는 연금저축펀드(비과세 혜택을 받지 않은 계좌)와 ISA 계좌의 원금을 조금씩 빼서 쓰는 방법도 옵션으로 둘 수 있다.
➄ 바리스타 파이어: 주 15시간의 마법
꼭 완전한 은퇴일 필요는 없다. 스타벅스 바리스타처럼 주 15시간(월 60시간) 이상 일하는 단기 근로자가 되면, 다시 직장가입자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소득은 적더라도 회사에서 건보료 절반을 내주고, 무엇보다 내 재산(집, 차)에 건보료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것이 많은 파이어족들이 소일거리 삼아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1억 원 현금흐름 시뮬레이션
1. 남편과 아내의 일반 계좌에서 배당금 받기 (총 2,000만 원)
금융소득(이자+배당)이 1인당 연 1,000만 원을 넘어가면 건강보험료 산정에 반영된다. 따라서 건보료 인상을 완벽히 방어하려면 부부가 각각 연 990만 원 수준으로 배당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
- 배당소득세 (15.4%): 2,000만 원 × 15.4% = 308만 원
- 종합소득세: 연간 금융소득이 딱 2,000만 원 이하이므로 분리과세(15.4%)로 종결. 누진세율이 붙는 종합과세 대상에서 안전하게 제외.
2. 일반 계좌에서 미국 주식(미국상장 ETF 포함)을 매도하여 비과세 한도 꽉 채우기 (총 5,000만 원) 해외 주식은 1인당 연 250만 원의 수익까지는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게다가 이 매매차익은 건보료 산정에도 전혀 포함되지 않기에 적극 활용한다.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10%로 가정했을 때, 비과세 한도인 250만 원의 차익을 남기려면 2,500만 원어치의 원금을 팔면 된다. 부부가 각각 원금 2,250만 원과 차익 250만 원을 합쳐 2,500만 원씩 인출하면, 세금 없이 연 5,000만 원의 현금흐름이 생긴다.
- 양도소득세 (22%): 수익 250만 원 - 기본공제 250만 원 = 0원. 즉, 세금 0원
3. 연금저축펀드에서 세액공제받지 않은 원금 인출하기 (총 3,000만 원)
직장 생활을 하며 연말정산 세액공제 한도(연 600만 원)를 초과해 납입했거나, 혜택을 받지 않은 순수 원금은 언제든 페널티 없이 빼 쓸 수 있다. 매년 리밸런싱 차원에서 일부 주식을 팔고, 이 돈을 인출하면 세금과 건보료의 안전지대가 될 수 있다. 부부가 합쳐서 연 3,000만 원씩 인출해 생활비에 보탤 수 있다.
- 기타 소득세: 세액공제를 받지 않은 순수 원금을 인출하는 것이므로 세금 0원.
아내의 간단한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내는 과정은 생각보다 꽤 길고 복잡했다. 유튜브나 블로그, 카페글을 찾아봐도 단편적이거나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정보들이 많았다. 결국 남들이 많이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내가 주도적으로 길을 만들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우리가 막연한 환상이 아닌, 단단한 현실 위에서 미래를 짓고 있다는 증거일 테니까. 오늘은 오늘 해야 할 몫을 하고, 내일은 또 내일의 숫자를 직시하자. 우리는 여전히 겸허히 경제적 자립을 준비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 있다.